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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전시]국경을 넘-어 경계를 넘-어 : 독일로 간 한국간호여성들의 이야기 (Women Who Transcended Boundaries) 국경을 넘-어 경계를 넘-어 : 독일로 간 한국간호여성들의 이야기 (Women Who Transcended Boundaries)서울역사미술관 _ "노동력을 불렀더니 사람이 왔네." 노동이주와 관련한 문구로는 아마도 가장 잘 알려진, 유명한 문구일 것이다. 한 사람이 올때는 그 사람의 인생 전체가 온다는 것, 그러니 그 복잡하고도 묵직한 삶들을 경제 요인 두어개로 환원시켜 셈하려는 계획은 어김없이 실패하리란 것. 그러나 파독 간호사들의 군화가 뿜고 있는 메시지는 세계적 자본주의 하 노동이주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경제학적 환원주의를 비판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이데올로기 효과로도 다 소진되지 않는, 알알이 빛나는 개인의 서사, 욕망, 목소리, 몸.. 그 진동과 무게에 대하여. 경계를 오갔던 '특수'.. 더보기
소년이 온다, 수상소식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이다. 수상 내력이 중요한 것은 아니겠으나, 널리 읽혀야 할 글이 널리 읽히게 되는 일이라면야. 게다가 아끼는 작품을 만나면 주변에 영업하기 바쁜 나로서는, 소감을 공유할 사람이 늘어날 것이 더 없이 기쁘다. 문장 부호가 드문 글이다. 따옴표나 느낌표가 없고 의문문이어도 물음표로 끝맺지 않는 문장이 많았다. 여러 차례 속으로 곱씹고 되뇌다보니 네 것인지 내 것인지 알 수 없어진 말들 같아서, 나는 마음에 들었다. 향해서 말하면서 동시에 스스로에게 묻는 것 같아서 그것이 좋았다. 쓴 이가 그토록 눌러 적은 것이라 읽는 나에게 이렇게나 묵직한가, 읽힌다기보다는 새겨지는 것 같은가, 했다. 그렇지만 이 글 전체에 대해서 무어라 말을 얹는 것은 .. 더보기
내 사랑(Maudie) 영화를 본 직후의 감상은 매우 혼란스럽다는 것이었다. 첫째로 에단호크가 주인공이거나 적어도 둘의 비중이 비슷할 줄 알았는데 샐리호킨스가 주인공이었기 때문이고, 둘째로 극중에서 모드가 삶을 일궈나가는 방식을 바라보는 시선은 분명 인상적인 데가 있음에도, 때리고 막말하고 부려먹는 남편이 그와중에 간간히 잘해줬다거나 아내가 죽기전에 후회했다는 이유로 그 모든걸 로맨스로 덮는건 지나치게 진부하고 전형적인 남성서사라서 한 영화 속 상반된 젠더감수성에 어리둥절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원제목인 Maudie가 주인공 모드 루이스(Mode Lewis)의 애칭인 모디였다는 것을 알고나서 어느정도 편안해졌다(첨에는 Mau die가 내가 모르는 어느 외국어로 my love나 my dear쯤 되는 것인 줄 알았고, 그래서 직.. 더보기
이상일, 분노 분노라는 감정의 재생산 기제에 대한 지극히 사회적인 접근.이 영화는 통상적으로 죄책감, 우울, 자책 등으로 불릴 감정까지를 분노로 포괄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사용하였는데, 아버지에게 "아이코라서?"라고 되묻는 아이코의 얼굴은 그러한 감정들이 갈곳 잃은 분노의 여러 이름들임을 증명하는 듯했다.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버지조차-어쩌면 누구보다 사랑하기 때문에, 왜냐면 불신하여 모든 가능한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싶은 것이 부모 마음일 수 있으니- '그런'일을 겪은 딸이 평범하게 행복해지리라고 믿지 못한다는 것. 사실은 자기자신도 그것을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 어떠한 표정도 띄우지 못한 텅 빈 얼굴과 보이지 않으나 느껴지는 그 이면의 넘실거림. 등장인물들 중 누구도 소위 '정상가족'의 테두리 안에 있지 않으며.. 더보기
메기스 플랜 보면서 홍상수감독의 북촌방향이 자주 떠올랐다. 존 역의 에단호크가 쓰레빠로 뺨 때리고싶은 먹물찌질남을 소름돋게 잘 소화해냈기 때문. 먹물찌질남과 엮인 두 여자가 까칠예민한 먹물여성과 헌신적이지만 (남주인공이)존경할만하지는 않은 여성이라는 것도 기존 영화들에서 자주 반복되었던 패턴이다. 그렇지만 북촌방향에서 여성들이 소재로 배치된 것에 비해, 매기스플랜은 여성인 매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을 뿐 아니라 존을 둘러싼 두 여자-매기와 조넷의 관계를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남주인공의 연애담이 곧 그의 인생행로의 비유로 쓰이는 영화들에서, 남주인공과 관계맺는 여성들은 각각 세계의 한 영역을 상징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한존재들이며 때로는 숭상되기도 하지만, 그들은 고정된 기표이자 장소처럼 재현된다. 북촌방향의 성준(유준상.. 더보기
구교환, 꿈의 제인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경계 바깥의 삶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안정된 기반, 세상에의 신뢰라든지 미래에의 전망 따위 것들은 그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말라붙어 가는 자신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영화 속 주인공 소현이 붙잡은 것은 이야기였다. 꿈 같은 이야기. 사실과는 다르지만 진실을 담고 있는 논/픽션. 그러나 나는 소현이 만든 꿈에 가슴이 시리었다. 스쳐지나갔을 뿐인 인연들을 중요한 등장인물로 배치시키고, 이야기의 서문과 결말을 모두 타인에게 들은 말로 채워낸 그 공허함이. 삶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환상 안에서조차 제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내는 깊이 모를 절망이. 아마도 유서였을 소현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들리게 되었다면. 이 서툰 아이는, 시신 유기한 장소를 다그침받는 상황에서조차 "니 이야기 말고.. 더보기
82년생 김지영 마감과 마감 사이, 아주 잠시의 틈을 타서 을 읽었다. 빠른 속도로 읽어내려 갔다. 그럴 수 있었다. 처음 읽지만 아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였다. 소설인지 르포인지 자기서사인지, 명료하게 구획된 장르에는 들어맞지 않는 글이었다. 많은 여성 독자들이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김연수의 에서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남겼던 대서사시가 떠올랐다. 몰아치는 역사의 질곡이 당대를 살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을 똑같은 모양으로 빚어내었기에, 모두가 공감하지만 동시에 지루해했다는 그 글. 다양성과 개성의 시대라는데, 여자라고 뭔갈 할수없단 거 다 옛날 일이라는 말도 많은데, 어째서 여성의 삶은 이토록 서로 닮아있는가 예외가 허락되지 않는가. 동형적인 삶을 조형해내는 파도가 여전히 세차게 때리운다. 내가 하는 작업에 대해 생각했다.. 더보기
동화책 『사자왕 형제의 모험』 "낭기열라 골짜기에서 이들 형제가 벌이는 모험은 평화주의자가 어디까지 악과 맞설 수 있는가에 대한 치열한 실험이면서 힘없는 사람들 사이에 강물처럼 흐르는 역사의 선한 의지에 대한 입증의 과정이기도 하다. 선한 자는 실패할 리 없고 잠시 주저 앉더라도 그 뒤에는 낭길리마의 햇빛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작가가 책 속에 담은 희망이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이 책을 처음 내놓았을 때 다양한 비판이 등장했다. 부당한 억압으로 가득한 세계를 바로잡는 어려운 일을 굳이 어린 형제의 손에 맡긴 이유가 무엇인가, 현실에서 낭기열라로, 낭기열라에서 낭길리마로 이어지는 죽음을 각오한 여행은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영향인가 등 어른 평론가들의 날선 질문이 꼬리를 물었지만 그보다 더욱 많이 답지했던 것은 어린이 독자들의 편지.. 더보기
언니네 이발관 6집 TEASER#2 난 세상이 바라던 사람은 아냐 그렇지만 이 세상도 나에게 바라던 곳은 아니었지 나는 그걸 너무 빨리 알게 됐어, 너무 빨리 _ 6집 선공개곡 오픈을 앞두고 언니네이발관을 반복재생 중인 요즘. 나는 5집의 노랫말을 볼 때면 가사의 화자에게 시와의 당부를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거리에 자신의 몫은 조금도 없음을 깨닫고 소중한 것이 이렇게 버려졌음을 갑갑해하는, 참 더럽게 외로운 나그네라 자조하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건 세상 어디에도 없었지만 잊을 수 없는 게 어딘가 남아 있을 거라며 길을 가는, 그 사람이. 영원성의 부재를 쓸쓸해 어쩔 줄 몰라한다고 생각되었으므로. 오죽하면 함부로 태어나지도 말고 사랑에 쉽게 빠져들지도 말라지 않는가. 그 사람에게 동일시되었던 나의 자아의 한 측면에게, 변함없이 그 자.. 더보기
우리들 인사, 칭찬, 선물. 그리고 웃음. '네가 좋아, 우리 친해지자' 하는 이 투박한 손 내밀기에, 나이가 든 만큼 매끈해진 소셜스킬-그 원활하고 점잖은 상호작용 망 속에서 영위되던 내 일상에 파문이 일었다. 결핍에, 부러움에, 불안함에 휘청거리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호감과 사랑받고 싶단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나이가 이토록 예뻤던가. 지나오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무엇보다 이 영화의 압권은 윤이의 "그럼 언제 놀아?"라는 명대사일 것이다. 옳고그름과 형평을 따지는 정의justice의 논리를 잠시 억압해두고 상대방이 나에게 가지는 주관적 의미를 생각할 때, 관계relationship가 시작된다는 것. 내가 성인이 되고도 좀처럼 깨닫지 못했던 이 명제를 세 단어로 압축해낸 촌철살인. 2017.5.5.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