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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신카이 마코토, 너의 이름은 어쩐지 영화관에서 많이 울어버렸다. 처음에는 너무나 명료하고 당연해보였던 것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호하고 흐릿해지는 일, 그래서 내가 싸우거나 맞서야 할 대상이 다름아닌 망각해가는 나 자신이 되는 일. 그 과정에서의 혼란과 자기분열적 욕구들. 동일본 대지진을 배경으로 만든 작품이라는 점, 그리고 최근에 세월호 1000일이었다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나에게 중요한 이슈라서 감정이입을 많이 한 탓이었을 것이다. 사실 망각은 얼마나 달콤한가. 특히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의 피해자가 죽은이일 경우에, 망각에의 필사적인 저항이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지는 확신하기 어려운 반면 망각이 가져다줄 평온함-급작스럽게 흐르는 눈물로부터, 이유 모를 상실감으로부터의 벗어남-은 대단히 유혹적이다... 더보기
우리 선희 누구도 타인에게 가 닿지 못하는가, 아니, 사람들은 그러기를 원하기는 하는가. 선희를 표현하려고 동원된 말들은 그녀의 실체를 포착하지 못하고 어김없이 미끄러지기만 한다. 그녀가 왔다 간 자리에 남는 것은 여기저기 옮겨다니다가 얼기설기 뭉쳐져버린 언어뭉치뿐. 세 남자의 좋아한다는 말에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관심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타인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큰 오류인가.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타인 위에 덧씌운, 내가 보고싶은 이미지이지 않은가. 더보기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섣부르게 과장하지 않는다. 일상 속의 작고 사소한 계기에 사람의 마음은 비가역적으로 움직여버리고, 그 변화가 삶의 방향마저 바꾼다는 점. 그 소박한 진리를 충실히 담아낸 영화였다. 료헤이에게 아들은 더이상 나를 충족시켜줄 대상이 아니라, 내가 행복하게 해주고 그럼으로써 그로부터 사랑받고 싶은 존재가 되었다. 그 변화에 '아버지가 된다'는 이름이 붙었다. 비단 아버지만이 아니라 인격적 관계라는 것이 모두 그럴 것이다. 더보기
아무르 나는 이 영화가 병환과 죽음 앞에서 스러져가는 사랑의 보잘것없음을 그리려고 했다고도, 윤리까지 뛰어넘어 상대방을 죽일만큼 강력한 사랑에 대해 말하려고 했다고도 보지 않는다. 사랑은 두 사람 사이에 상대방과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으나 완벽하게 일체도 아닌, 특정한 심리적 거리를 형성한다. 혹은 그 상태가 사랑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쪽이 고통받고 그로 인해 다른쪽에게 현실적인 부담이 생겼을 때, 두 사람은 이중의 고통을 겪는다. 상대방의 고통으로 인한 고통과 내가 겪는 고통. 영화가 묵묵히 담으려고 했던 것은 이 지점이 아닌가 한다. 질병에 대한, 죽음에 대한 영화라고 해도 좋을 이 작품에 감독이 붙인 제목이 Amour, '사랑'인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더보기
클로저 사랑에 대한 가장 큰 냉소.진실과 사랑이 무관할 뿐 아니라 방해가 될 뿐이라면, 사랑하는 두 사람이 교환하고 공유했던 세계는 무엇이란 말인가. 섹스 이상의 사랑을 모르는 단순무식한 래리만이 유일하게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었다. 사랑의 환상이 현실에 존재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한 그것을 양 당사자가 열렬히 원하고 그 결과 믿을 때이다. 그러나 간신히 지탱되는 위태로운 것이기에 어떤 순간이 찾아오면 쉽게 깨진다, 아프게. 더보기
나, 다니엘 블레이크 불황과 선택적 복지의 틈바구니에서 서류더미와 관공서의 절차, 규정 따위가 무정하고 건조하게 사람을 죽여내는 부조리를 짚어내면서도, 전형적인 피해자 상으로 인물들을 그려내지 않았다. 많은 사회비판/폭로형 영화가 비판과 폭로를 위해서 사회적 소수자를 다시금 타자화 희생자화하는 점을 경계한 것. 다니엘 블레이크는 자신의 존엄을 귀히 여기고 당당함을 잃지 않으며, 극한의 상황에서도 나눔의 가치를 실천하며, 세상의 곳곳에 숨어있는 아름다움이나 따뜻함을 놓치지 않고 느낄 줄 아는 사람이다. 이토록 강건하고 인간다운 자에게 품는 감정이 동정이나 연민일 수는 없다. 존경과 존엄에의 공명으로, 그의 마지막 말이 실현되는 사회를 열망한다. 2016. 12. 25. 더보기
리틀 포레스트 (한국판) 극중 혜원엄마(문소리 분)는 혜원(김태리 분)에게 남긴 편지에 적었다. “혜원이가 힘들 때마다 이 곳의 흙 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걸 엄마는 믿어.” 편지에 정작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은 하나도 없었노라고 골을 냈던 혜원이지만, 영화 말미에 이르면 엄마가 무슨뜻이었는지 이제 조금은 알겠다고 시인하게 된다. 영화는 서울서는 채워지질 않던 허기가, 계절의 흐름에 따라 말끔히 마르고 촉촉하게 차오르는 모습을 담아냈다. 따뜻한 힐링 영화라는 찬사의 다른 한 편에선, 실제 농촌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코멘트도 자주 보였다. 그래서 이 영화를 농촌판타지라고도 했고 농촌뽕이라고도 했다. 고향이랄 것 없이 여기저기 살았으나 그 와중에도 시골살이는 해본 적 없는 나.. 더보기
내 사랑(Maudie) 영화를 본 직후의 감상은 매우 혼란스럽다는 것이었다. 첫째로 에단호크가 주인공이거나 적어도 둘의 비중이 비슷할 줄 알았는데 샐리호킨스가 주인공이었기 때문이고, 둘째로 극중에서 모드가 삶을 일궈나가는 방식을 바라보는 시선은 분명 인상적인 데가 있음에도, 때리고 막말하고 부려먹는 남편이 그와중에 간간히 잘해줬다거나 아내가 죽기전에 후회했다는 이유로 그 모든걸 로맨스로 덮는건 지나치게 진부하고 전형적인 남성서사라서 한 영화 속 상반된 젠더감수성에 어리둥절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원제목인 Maudie가 주인공 모드 루이스(Mode Lewis)의 애칭인 모디였다는 것을 알고나서 어느정도 편안해졌다(첨에는 Mau die가 내가 모르는 어느 외국어로 my love나 my dear쯤 되는 것인 줄 알았고, 그래서 직.. 더보기
이상일, 분노 분노라는 감정의 재생산 기제에 대한 지극히 사회적인 접근.이 영화는 통상적으로 죄책감, 우울, 자책 등으로 불릴 감정까지를 분노로 포괄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사용하였는데, 아버지에게 "아이코라서?"라고 되묻는 아이코의 얼굴은 그러한 감정들이 갈곳 잃은 분노의 여러 이름들임을 증명하는 듯했다.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버지조차-어쩌면 누구보다 사랑하기 때문에, 왜냐면 불신하여 모든 가능한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싶은 것이 부모 마음일 수 있으니- '그런'일을 겪은 딸이 평범하게 행복해지리라고 믿지 못한다는 것. 사실은 자기자신도 그것을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 어떠한 표정도 띄우지 못한 텅 빈 얼굴과 보이지 않으나 느껴지는 그 이면의 넘실거림. 등장인물들 중 누구도 소위 '정상가족'의 테두리 안에 있지 않으며.. 더보기
메기스 플랜 보면서 홍상수감독의 북촌방향이 자주 떠올랐다. 존 역의 에단호크가 쓰레빠로 뺨 때리고싶은 먹물찌질남을 소름돋게 잘 소화해냈기 때문. 먹물찌질남과 엮인 두 여자가 까칠예민한 먹물여성과 헌신적이지만 (남주인공이)존경할만하지는 않은 여성이라는 것도 기존 영화들에서 자주 반복되었던 패턴이다. 그렇지만 북촌방향에서 여성들이 소재로 배치된 것에 비해, 매기스플랜은 여성인 매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을 뿐 아니라 존을 둘러싼 두 여자-매기와 조넷의 관계를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남주인공의 연애담이 곧 그의 인생행로의 비유로 쓰이는 영화들에서, 남주인공과 관계맺는 여성들은 각각 세계의 한 영역을 상징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한존재들이며 때로는 숭상되기도 하지만, 그들은 고정된 기표이자 장소처럼 재현된다. 북촌방향의 성준(유준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