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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영화

메기스 플랜

보면서 홍상수감독의 북촌방향이 자주 떠올랐다. 존 역의 에단호크가 쓰레빠로 뺨 때리고싶은 먹물찌질남을 소름돋게 잘 소화해냈기 때문. 먹물찌질남과 엮인 두 여자가 까칠예민한 먹물여성과 헌신적이지만 (남주인공이)존경할만하지는 않은 여성이라는 것도 기존 영화들에서 자주 반복되었던 패턴이다. 그렇지만 북촌방향에서 여성들이 소재로 배치된 것에 비해, 매기스플랜은 여성인 매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을 뿐 아니라 존을 둘러싼 두 여자-매기와 조넷의 관계를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남주인공의 연애담이 곧 그의 인생행로의 비유로 쓰이는 영화들에서, 남주인공과 관계맺는 여성들은 각각 세계의 한 영역을 상징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한존재들이며 때로는 숭상되기도 하지만, 그들은 고정된 기표이자 장소처럼 재현된다. 북촌방향의 성준(유준상)이 서울여정을 와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동안 경진은 경진의 집에, 술집주인은 소설에 붙박혀있는 것처럼. 그리고 당연한 귀결로써 여성들은 서로 만나지 않거나 만나더라도 남주인공이 곤경에 빠졌음을 보여주기 위해 으레 예상되는 정도의 갈등을 빚을 뿐이다. (ex. 오빠, 이 여자 뭐야? 하.. 지금까지 날 갖고 논 거였어? 실망이야! 쾅-)
그러나 매기는 종횡무진 뉴욕거리를 누비고 있으며, 조넷과 만날뿐 아니라 그녀에게 당돌-순진하게 '계획'을 제안하고, 결국엔 둘이서 작당하여 존의 마음을 자신에게서 조넷에게로 다시 옮기는 데에 성공한다. 자신이 꼭두각시처럼 놀아났음을 알게된 존이 분노하여 두 여자 모두를 떠났을 때에는 둘이서 서로 의지하고 함께 아이들을 키우기까지 한다. (사실 둘은 서로에게 훨씬 더 합당한 인정을 주고받고 있다. 매기는 조넷의 북콘서트에 갔다와서 그녀가 따뜻하고 강하고 매력적이라고 했고, 조넷은 매기가 천진난만한 데가 있지만 그걸 본인이 자각하지 못해서 도리없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한다. 반면 존은 "당신은 나보다 날 더 잘 알아서" 조넷을, "길 잃은 나를 구원해서" 매기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와의 관계 속에서만 인정과 애정이 부여된다.)
마무리는 계획실패로 매기가 완전히 낙담한 후에야 존과 조넷이 재결합하는 것. 이렇게 영화는 놀랍도록 직선적인 방식으로 자기삶의 주체이고자 했던 매기의 시도가 성공한 것일지 실패한 것일지 알수 없는 모양새로 끝을 맺는다. 그 과정을 겪으며 매기는 성장했고, 조금은 성숙해진 삶의 태도를 얻게 되지만, 카메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릴리와 스케이트 타러 온 피클맨을 비춘다. 그렇게, 결코 고정되어 있지 못한 매기의 삶이 덜컹덜컹 이어져나간다.


2017.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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