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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말 얹는 자의 윤리 연대와 지지의 말인지 비판의 말인지, 결론의 방향은 오히려 덜 중요해보이는 때가 있다. 말이 너무 쉬운 사회에서 말로 먹고 사는 사람들의 윤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침묵하거나 방관하지 말고 개입하세요, 라는 요구의 반대 끄트머리에서 함부로 내뱉기보단 말을 아끼는 것의 미덕에 대해서. 나는 가보지 않은 현장에 대해 말할 때 머뭇거림이 없는 사람,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해 말할 때 심경이 복잡해지지 않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30년 위안부 운동’ 마치 끝난 듯 평가 말자김영희 "'할머니’의 말을 들어라, 그의 말을 존중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대리 발화’에 나섰다. ‘할머니’의 뜻이 무엇인지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고, 평가하고, 그 속에 담긴 진의가 무엇인지 가르치려 들었다. 오직 자신만.. 더보기
죄 많은 소녀(After My Death), 김의석 "내가 먼저 죽었어야 했어." 이 영화가 그려내는 10대 여성 집단의 역학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대사.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자살한다는 의 역설적인 상황이 상처와 나약함은 폭력을 행사해서라도 감춰야 한다는 남성 호모소셜 집단의 규칙을 반영한다면, 는 여성 청소년이 또래 집단에서 권력을 갖기 위해선 자신이 무고한 희생양임을 증명해야 함을 보여준다. 최고 권력자가 일진이 아니라 예수인 곳에서, 자기파괴는 사회적 요청이고 가장 성숙한 인물이 그것을 실행으로 옮긴다. 2020.2.24. 더보기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상대의 고통을 인지하지 못할만큼 무지한 채 저지른 일로 상대가 크게 상처받았을 때, 그일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이들의 인간군상. 망각, 합리화와도 자기연민과도 싸우는 사람들. 이 시대의 윤리적 태도에 대한 묘사. 2018.12.06. 더보기
어느 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즈 제도권 바깥의 삶들이 한 집에 모여 의지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면서도 마냥 따뜻하게만 낭만화하지 않았다. 도박에 빠진 부모의 차에 유기되어 있던 쇼타, 부모의 신체적 정서적 학대에 노출되어 있던 쥬리. 이들을 거두어 기르면서, 어른들은 나름의 기대를 품는다. “스스로 선택하는 편이 강하지 않을까요, 정이라든가 유대라든가” 하는 노부요의 말은 남편 오사무와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경험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부디 그리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기도 하다. 쥬리에게 사랑하니까 때린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사랑하면 이렇게 하는 것이라며 꽉 안아주는 데에서도 노부요의 그러한 염원이 전달되는 듯 싶다. 아이 낳지 못하는 여자의 모성 욕망으로는 환원될 수 없는, 너를 여기서 더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 하지만 포옹.. 더보기
소공녀, 임고운 소확행 권하는 사회에 대한 현실 직시. 동화 소공녀(a little princess)의 세라는 다시금 많은 재산을 상속받게 되고 그간의 가난함은 그녀의 곧은 심성을 증명해줄 고난과 역경이 되지만, 영화 소공녀(microhabitat)의 미소는 가난에서 벗어날 전망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매일의 위스키 한 잔, 담배 한 갑을 위해 월세 내기를 포기하고 친구 집을 전전하기로 한 비현실적일 정도로 꿋꿋한 성격은 바람 든 것, 민폐, 염치 없음이 될 뿐이다. 면전에서는 박한 말로 미소를 쫓아냈던 옛 친구들이 모여 그애 여전히 멋있게 살더라, 고 추억하는 사이, 영화는 핸드폰이 끊기고 머리가 백발이 된 채 빌딩숲 사이에 텐트를 치고 간신히 서식하고 있는 미소의 모습을 비춘다. 잠깐 들르는 정류장으로서의 소.. 더보기
[전시] 기록 기억 :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다 듣지 못한 말들 (사진 : '미치나')기억은 진실을 담고 있으나 선명하지도 정확하지도 않다. 그 증명은 피해자가 아닌 사회의 몫, 특히 기록을 더듬어 연결해나가는 것은 연구자들의 몫. 2019.03.08. 더보기
벌새, 김보라 맞다. 청소년기란 이런 것이었다. 청춘이란 말에 덧씌워진 환상처럼 빛나지도, 동화 같은 노스텔지어가 어울리지도 않는, 불안하고 서늘했던 시간. 학창 시절을 회고하면 '소녀감성'보다는 세상에 대한 환멸감이 먼저 떠오른다는 감독의 말이 길게 남는다. 2019.09.05. 더보기
허스토리(herstory), 또 하나의 일본군 ‘위안부’ 영화 ​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한, 또 하나의 영화가 개봉했다. 위안부 영화로는 첫 상업적 흥행을 거둔 이, 제작진의 선한 의도와 갖은 노고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을 전시했다는 비판을 받아서일까. 그 이후의 영화들에는 윤리적 재현에 대한 고민이 녹아들기 시작했다. , 로 올수록 과거보다 현재에 초점을 맞추더니, 이번에 는 ‘위안부’였던 시절에 대한 회상 씬이 아예 없어졌다는 점이 눈에 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은 오로지 당사자들의 음성을 통해서만 과거사실에 접속할 수 있다.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 대신 목소리를 매체로 선택한 것은, ‘기억’의 정치성, 구성성, 모호성을 드러내기 위한 효과적인 장치이기도 하다. 또렷하고 명백한 증언이 미리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들을 귀가 있어야 비로소 말.. 더보기
이창동, 버닝(Burning) 낡았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때 이 영화에 대한 나의 첫감상은 그러했다. 비단 젠더관에 그치는 평은 아니고, 15년쯤 전에는 전위적이었으나 이제는 식상해져버린 예술영화 같았달까. 플롯도 구도도, 좋게 말하면 클래식하고 실은 진부했다. 하루키의 83년도 소설을 옮겼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으나. 이창동에게 기대했던 바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도 며칠 간 계속 잔상이 따라다니는 걸 보면, 연출만은 대단했다고 인정하는 수밖에 없겠다. 대남방송이 항시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공간, 파주. 해질녘에 나와앉아 대마초 피우는 셋, 저마다의 표정. 가장 압권으로 꼽힐, 노을을 배경으로 그레잇헝거의 춤을 추는 해미. 종수가 조급하게 뛰어다니는 자욱히 안개낀 농촌길과 격렬하게 불타는 비닐하우스 이미지의 .. 더보기
[드라마] '나의 아저씨' : '키다리 아저씨'를 비틀어내다 '나의 아저씨'는 논란이 많은 작품이었다. 방영 전부터 주인공 커플의 나이차가 부각되어 뭇매를 맞았고, 제작사가 인물관계도를 수정하여 둘 사이 애정선을 지운 뒤에도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개별적인 씬의 연출이나 대사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지만, 주된 비판의 초점은 '처지가 훨씬 나은 40대 아저씨 옆에 최악의 현실에 처해있는 20대 여성을 붙여서 아재들이 자기위로하게 하는 드라마'라는 점인 듯 하다. "기득권 아재들의 피해자 코스프레"(황진미), "아재들을 위한 위무곡, 아재에게도 결례"(이승한), "'영포티' 판타지 재생산하는 게 예술?"(김종성) 등. 김종성은 한 발 더 나아가, "왜 굳이 45세 남성과 21세 여성이 서로의 삶을 치유해야 하나"라며 "SBS 에서 손무한과 안순진, 두 중년 남녀의 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