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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이창동, 시 "사람들은 시에 대해 양가감정을 느낀다. "왜요, 시 쓰시게요?" 대견하지만 한심하다는 뉘앙스. 아름다움을 다루는 고상한 일이지만 그곳은 삶의 참혹한 실상과는 무관한 세계가 아닌가 하는 감정. 그리고 저 학생[주인공 미자]과 교사는 그런 통념에 착실히 부합한다. 아직까지 그녀에게 시를 배운다는 것은 거실에 그럴듯한 화분 하나 갖다놓는 일과 다르지 않다. 시 한 편 써오르는 숙제를 받고는 사과를 만져보고 나무 그늘에 앉아보지만 그것은 오로지 자기 삶을 들여다보지 않기 위해서 할 만한 일들이다. 손자가 집단 성폭행에 가담해 한 소녀를 죽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다른 학부형들을 통해 알게 되는 자리에서도 아직은 그랬다. 충격적인 사실을 듣고 그녀는 그 자리를 피하고 꽃의 아름다움으로 숨어버렸으니까. 그러나 상황은.. 더보기
대안으로서의 농담과 축제: 밀란 쿤데라 『무의미의 축제』 대안으로서의 농담과 축제: 밀란 쿤데라 『무의미의 축제』 무의미 “쇼펜하우어의 위대한 사상은 말이오, 동지들, 세계는 표상과 의지일 뿐이라는 거요. 이 말은 즉, 우리가 보는 세계 뒤에는 어떠한 실재도 없다, Ding an sich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이 표상을 존재하게 하려면, 그것이 실재가 되게 하려면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런 말입니다. 그것을 부과하는 막대한 의지 말이오.” “(...) 진짜 문제는 이거예요. 지구에 있는 사람만큼 세계의 표상이 있다는 것. 그건 필연적으로 혼돈을 만들지요, 이 혼돈에 어떻게 질서를 부여할까요? 답은 분명해요. 모든 사람에게 단 하나의 표상만을 부과하는 것. 그리고 그것은 오로지 의지에 의해서만, 단 하나의 막대한 의지, 모든 의지 위의 의지에 의해서만 부과될 .. 더보기
[전시]삶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프리다 칼로 <생명의 꽃> ​ 좌: 프리다 칼로 (1944) / 우: '생명'의 전형적인 이미지 생명은 푸르고 빛나며 삶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누가 정했던가. '생명'이라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들-새로운 것, 푸른 것, 여린 것, 환하고 빛나는 것, 그리하여 모든것을 집어삼키는 포악스럽고 무시무시한 죽음의 무질서와는 대비되는 것-과 달리, 프리다 칼로의 은 갓 적출한 나팔관과 아열대의 식충식물을 연성해놓은 듯한 모습이다. 이 괴기스러운 이미지로 생명을 표상하면서, 그녀는 삶의 아름다움에 심취해있는 예찬론자들과 분명한 거리를 둔다. 오히려 그녀는 그린다: 고통으로 가득한 열대우림 속에서 붉게 꿈틀거리며 연명하기 위해 매순간 발버둥쳐야 하는 것이 삶이다, 라고. 적어도 나의 삶은 그러했다, 고. ​ 좌: 프리다 칼로 (1935).. 더보기
허니와 클로버 honey & clover 1. 2. 3. 4. 5. 더보기
[지지] 피억압자의 말로 피억압자를 공격하기: <제국의 위안부> 비판 박유하의 가 논란의 중심에 있을 때에 나는 해당 책이 직접 증언연구를 한 바도 없으면서, 명백하게 자의적인 방식으로 기존의 증언들을 짜깁기하고, 논리적 비약이 많다는 점을 확인하고는 흥미를 잃었다. 굳이 반박을 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본 박유하는 (아래 글의 표현에 따르자면)'순진한 실증주의자'도 못 되었으므로. 단지, 이 책을 둘러싼 논쟁을 지켜보면서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민족주의적 시각이 아닌 방식으로 바라보고자 했던 많은 시도들이 여전히 대중들에게는 전달되지 못했단 것을 깊이 자각했을 뿐이었다.그 게으른 마음가짐을 부끄러워지게 만드는 글이다. **글 전문을 보려면: http://anotherworld.kr/306 (사진: 최초의 증언자, 故김학순) 피억압자의 말로 피억..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