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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영화

이상일, 분노

분노라는 감정의 재생산 기제에 대한 지극히 사회적인 접근.

이 영화는 통상적으로 죄책감, 우울, 자책 등으로 불릴 감정까지를 분노로 포괄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사용하였는데, 아버지에게 "아이코라서?"라고 되묻는 아이코의 얼굴은 그러한 감정들이 갈곳 잃은 분노의 여러 이름들임을 증명하는 듯했다.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버지조차-어쩌면 누구보다 사랑하기 때문에, 왜냐면 불신하여 모든 가능한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싶은 것이 부모 마음일 수 있으니- '그런'일을 겪은 딸이 평범하게 행복해지리라고 믿지 못한다는 것. 사실은 자기자신도 그것을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 어떠한 표정도 띄우지 못한 텅 빈 얼굴과 보이지 않으나 느껴지는 그 이면의 넘실거림.
등장인물들 중 누구도 소위 '정상가족'의 테두리 안에 있지 않으며, 사회는 시위 같은걸로는 "그래봤자 변하는것도 없"는 곳. 즉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가족도 사회도 안전망이 되어주지 못하는 곳이다. 그들은 응답받지 못한 피해와 고통을 삼킨 채 가슴 한 구석에 독을 품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일차적으로 잔잔하게 넘실대는 분노의 감각.
또한, 각자도생의 영역으로 내던져진 삶들, 그로 인해 온갖 권력작용 앞에 훤히 노출된 이들에게 불신은 생존전략에 가깝다. 직접적 편견을 거부하고자 할 때에도 그렇다. 인신매매적 성매매의 피해자라는 것, 게이라는 것, 미군 성범죄의 피해자라는 것을 비난할 맘을 가지지 않은 등장인물들 사이에도, 사회라는 것은 깊숙히 차양을 드리운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니까'라는 간주관적 현실에 기반하여, 약한 고리-신원이 보장되지 않은 타인에 대한 경계, 떠도는 소문, 딸에 대한 못미더움, 심지어는 스스로에 대한 신뢰 부족-를 타고 의심은 빠르게 번져든다. 두려움을 양식삼아, 갈등의 씨앗이 뿌리내린다. 사회가 만들고 여러 사회적 장치를 매개하여 확산된 불신과 분노는 마침내 하나의 사회적 현실이 된다.
그에 따라 어른들은 불신하고 그 결과 자책하고 후회한다(내향적 분노). 어린이 둘은 신뢰하고 그 결과 어마어마한 분노를 경험한다. 믿음에 대한 혹독한 결과는 무엇을 가르쳤을 것인가. 이 두 아이가 성장하면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이들 세대가 사는 사회는 어떤 곳이게 될 것인가.


201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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