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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영화

리틀 포레스트 (한국판)

극중 혜원엄마(문소리 분)는 혜원(김태리 분)에게 남긴 편지에 적었다. “혜원이가 힘들 때마다 이 곳의 흙 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걸 엄마는 믿어.” 편지에 정작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은 하나도 없었노라고 골을 냈던 혜원이지만, 영화 말미에 이르면 엄마가 무슨뜻이었는지 이제 조금은 알겠다고 시인하게 된다. 영화는 서울서는 채워지질 않던 허기가, 계절의 흐름에 따라 말끔히 마르고 촉촉하게 차오르는 모습을 담아냈다.
따뜻한 힐링 영화라는 찬사의 다른 한 편에선, 실제 농촌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코멘트도 자주 보였다. 그래서 이 영화를 농촌판타지라고도 했고 농촌뽕이라고도 했다. 고향이랄 것 없이 여기저기 살았으나 그 와중에도 시골살이는 해본 적 없는 나야 알 수 없으나, 영화 속 모습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건 아마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나와 유년기가 엇비슷할 많은 도시사람들이, 뭣도 모르면서 귀농에 대한 장밋빛 환상을 사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변호 아닌 변호를 해보자면, 사람이 지금과는 다른 삶을 꿈꾸는 데에는 준비물이 필요하기 마련이고, 새로운 공간은 그것들 중에서도 중요한 하나라는 점이다. 변곡점이 필요한 팍팍한 청년 인생들이 지금까지 주로 택해왔던 방법은 여행이었다. 해외의 어느 도시가, 고향 없는 요즘 청년들에게는 그와 크게 다를 것도 없을 국내의 농촌 마을로 바뀐 것이라면. 여행보다는 장기적인 인생의 전망을 도모할 수 있는 꿈이니 한결 나아진 것일까, 해외여행을 떠날 여유조차 없어진 세대의 쪼그라든 꿈일까, 그건 모르겠다.


2018.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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