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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영화

내 사랑(Maudie)


영화를 본 직후의 감상은 매우 혼란스럽다는 것이었다. 첫째로 에단호크가 주인공이거나 적어도 둘의 비중이 비슷할 줄 알았는데 샐리호킨스가 주인공이었기 때문이고, 둘째로 극중에서 모드가 삶을 일궈나가는 방식을 바라보는 시선은 분명 인상적인 데가 있음에도, 때리고 막말하고 부려먹는 남편이 그와중에 간간히 잘해줬다거나 아내가 죽기전에 후회했다는 이유로 그 모든걸 로맨스로 덮는건 지나치게 진부하고 전형적인 남성서사라서 한 영화 속 상반된 젠더감수성에 어리둥절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원제목인 Maudie가 주인공 모드 루이스(Mode Lewis)의 애칭인 모디였다는 것을 알고나서 어느정도 편안해졌다(첨에는 Mau die가 내가 모르는 어느 외국어로 my love나 my dear쯤 되는 것인 줄 알았고, 그래서 직역하니 내 사랑이라는 한국어제목이 탄생했으리라고 여겼다). 번역의 정치학에 한국사회 젠더인식이 작동한 것이겠거니, 하니 한숨 나왔다. 제목뿐 아니라 포스터나 아트나인 홍보문구는 올해 최고의 아름다운 로맨스물인 것처럼 포장해두었는데, 심지어 그런 마케팅이 적절했다는걸 방증하는 듯 현대사회의 집착적이고 이상화된 사랑이 아닌 소박하고 느린 사랑의 모습에 감명받았다느니 하는 영화후기가 올라오는 건 씁쓸한 일이다.
그렇지만 모드라는 인물의 내면 세계와 일대기를 그려낸 것이라고 하여도 예술에 대한 창작욕과 더불어 특히 그녀의 사랑에 방점을 둔 것임에는 틀림이 없었고, 그 지점에서 던져진 질문에 나는 온전히 답하지 못하겠다. 가부장적 가족체계에 편입되지 못한 여성이 홀로 경제활동을 해나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던 시기에, 원가족인 이모와 오빠에게 기댈 수도 없었던 그녀가 괴팍하고 철없는 남자와라도 관계를 맺으려 한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뿐만 아니라 모드는 그과정에서 주체적이고 성숙한 태도를 보여준다. 김혜리 기자가 "요컨대 <내 사랑>은 사회적 약자인 인물이 배려하는 반려자를 만나 잠재력을 실현한다는 인간 승리 미담이 아니라, 원래 강인한 여성이 본인의 자아를 실현하는 도중에 겉으로만 터프해 보였던 미성숙한 남자까지 돕는 이야기"라고 평한 것은 이런 맥락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경제적 결합으로서의 결혼을 넘어선 그녀의 남편에 대한 사랑을, 또한 죽기 직전 내뱉은 "나는 사랑받았아요"라는 말에서 드러나는 남편으로부터 사랑받았다는 확신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은가, 하는 문제. 합리적 선택이라는 정당화로 해소되지 않고, 시대적 한계를 품은 허위의식으로 치부될 수 없을만큼 묵직한 이것을 나는 무어라 불러야 하는가.



2017.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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