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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문학

82년생 김지영

마감과 마감 사이, 아주 잠시의 틈을 타서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빠른 속도로 읽어내려 갔다. 그럴 수 있었다. 처음 읽지만 아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였다. 소설인지 르포인지 자기서사인지, 명료하게 구획된 장르에는 들어맞지 않는 글이었다. 많은 여성 독자들이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남겼던 대서사시가 떠올랐다. 몰아치는 역사의 질곡이 당대를 살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을 똑같은 모양으로 빚어내었기에, 모두가 공감하지만 동시에 지루해했다는 그 글. 다양성과 개성의 시대라는데, 여자라고 뭔갈 할수없단 거 다 옛날 일이라는 말도 많은데, 어째서 여성의 삶은 이토록 서로 닮아있는가 예외가 허락되지 않는가. 동형적인 삶을 조형해내는 파도가 여전히 세차게 때리운다.
내가 하는 작업에 대해 생각했다. 파도를 맞으며, 떠내려가며 버둥거리지만 또 속절없이 떠내려가면서, 그래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나는 어떤 지푸라기를 움켜쥐고 있는가. 방파제를 쌓겠다 무모하게 달려들었다가, 지금은 잔물결들의 수채화나 그리고 있나. 거대하게 치솟아 그림자를 드리우는 파도는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고. 나는 물결이 아닌 파도를 포착할 수 있을까


2017.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