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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영화

어느 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즈

제도권 바깥의 삶들이 한 집에 모여 의지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면서도 마냥 따뜻하게만 낭만화하지 않았다. 도박에 빠진 부모의 차에 유기되어 있던 쇼타, 부모의 신체적 정서적 학대에 노출되어 있던 쥬리. 이들을 거두어 기르면서, 어른들은 나름의 기대를 품는다. “스스로 선택하는 편이 강하지 않을까요, 정이라든가 유대라든가” 하는 노부요의 말은 남편 오사무와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경험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부디 그리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기도 하다. 쥬리에게 사랑하니까 때린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사랑하면 이렇게 하는 것이라며 꽉 안아주는 데에서도 노부요의 그러한 염원이 전달되는 듯 싶다. 아이 낳지 못하는 여자의 모성 욕망으로는 환원될 수 없는, 너를 여기서 더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 하지만 포옹이나 말로는 불충분했기 때문일까. 일어 원제인 ‘만비키 가족’이 보여주듯이, 이들의 유대의 중심에는 좀도둑질이 있다. 기존에 오사무와 쇼타 2인조로 행해졌던 마트/슈퍼털이에 쥬리가 합류하게 되자 오사무에게 서운해하며 툴툴거리는 쇼타, 쥬리도 일원으로서 뭔가 하지 않으면 마음 불편하지 않겠냐는 오사무의 대화는, 좀도둑질이 온전히 생계를 위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실제로 부족하게나마 다른 수입원들도 있고, 카메라에는 고로케를 사먹고 모르는 여자애-쥬리-에게 나눠주기도 하는 모습이 담긴다.) 그리고 연결 매듭인 바로 이 지점에서 균열이 시작된다. 동네 슈퍼 할아버지가 쥬리와 둘이서 좀도둑질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쇼타를 불러세워 다 보고있었다는 듯 여동생에게는 시키지 말라고 했을 때, 그래서 도둑질이 나쁜 것이냐 묻지만 가족 어른들 아무도 제대로 된 답을 주지 못했을 때, 할머니의 죽음 이후에 할머니가 숨겨두었던 지폐를 세면서 킬킬대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 쇼타는 성장했으나 자라난 마음의 감정들-죄책감, 부끄러움-은 가족 내부에서 응답받지 못한다. 결국 쇼타가 좀도둑질을 하다가 ‘일부러 잡힘’으로써, 이 가족은 내파된다. 경찰들이 찾아와 이들을 찢어놓고 심문하는 것은 오히려 내파된 관계를 낱낱히 해부한 것에 가깝다. 자비에 돌란 감독의 <단지 세상의 끝>이 불가피하고도 끈덕진 가족이란 것으로 바짝 묶인 자들의 비극이라면, <어느 가족>은 제도권 바깥에 있기 때문에 서로 이어졌음에도 같은 이유로 쉽게 깨어질 수밖에 없는 비혈연 가구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들이 함께 보낸 시간과 공유한 기억들, 품었던 감정과 유대감이 거짓이 아니기 때문에, 이 이야기 또한 비극이다. 그럼에도 홀로 서지 못해 가족을 찾아나서는 것이 인간 삶의 근본모순이 아닐까.

2018.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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