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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영화

신카이 마코토, 너의 이름은

어쩐지 영화관에서 많이 울어버렸다. 처음에는 너무나 명료하고 당연해보였던 것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호하고 흐릿해지는 일, 그래서 내가 싸우거나 맞서야 할 대상이 다름아닌 망각해가는 나 자신이 되는 일. 그 과정에서의 혼란과 자기분열적 욕구들. 동일본 대지진을 배경으로 만든 작품이라는 점, 그리고 최근에 세월호 1000일이었다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나에게 중요한 이슈라서 감정이입을 많이 한 탓이었을 것이다.


사실 망각은 얼마나 달콤한가. 특히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의 피해자가 죽은이일 경우에, 망각에의 필사적인 저항이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지는 확신하기 어려운 반면 망각이 가져다줄 평온함-급작스럽게 흐르는 눈물로부터, 이유 모를 상실감으로부터의 벗어남-은 대단히 유혹적이다. 게다가 무정한 사회는 빈번히 잊지 않으려는 노력을 무시하거나, 비웃거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그러한 저항을 뚫고 나오는 힘으로 제시한 것은 무스비이며, 잊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이 끝을 맺게 되는 지점으로 상정한 것은 이름을 기억해내는 것이다. 기억하는 과업은 인연, 혹은 공유하는 역사로 이어가고 고유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완성된다는 것일까. 다소 마술적 세계관으로 낭만적 회귀를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인연의 소중함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섣불리 개별적인 관계의 문제로 환원시키지 않았다는 점-즉 먹고 마시는 것, 전통의 전승, 시간의 문제까지를 무스비라는 개념으로 얽어냈다는 점이 좋았다. 영상미는 말할 것도 없었고.


2017.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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