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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 (...) 그러나 이 도시의 사람들이 그 벽 앞에 초를 밝히고 꽃을 바치는 것이 넋들을 위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안다. 살육당했던 것은 수치가 아니라고 믿는 것이다. 가능한 오래 애도를 연장하려 하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두고 온 고국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생각했고, 죽은 자들이 온전히 받지 못한 애도에 대해 생각했다. 그 넋들이 이곳에서처럼 거리 한복판에서 기려질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고, 자신의 고국이 단 한 번도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보다 사소하게, 그녀는 자신의 재건에 빠진 과정이 무엇이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물론 그녀의 몸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녀의 넋은 아직 육체에 깃들어 있다. 폭격에 완전히 부서지지 않아 새 건물 앞에 옮겨 세운 벽돌 벽의 .. 더보기
지형 변화 이쯤 되면 강남역 살인사건이 진짜로 혐오범죄인지 여부를 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보인다.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여성살해(femicide)라 느끼며 추모와 분노를 표했고, 자신의 폭력 피해경험을 발화했고, 젠더 권력구조에 대해 말했다. 논의는 여성혐오(misogyny), 메갈리아, 페미니즘 운동, 남성혐오의 존부, 심지어는 감정표출과 논리적 토론이 배치되는 것인지 여부에 이르기까지 확장되었다.여성혐오, 성차별, 젠더 폭력은 2016년 5월 17일 새벽1시에 갑자기 등장한 독특한 현상이 아니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많은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맞고 죽어왔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특기할 만한 점은 오히려 사건 이후의 반응에 있다.기존의 여성운동은 여성단체나 소수의 페미니즘 운동가들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