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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도서

성인-아동 간 친족 성폭력의 역동: 주디스 허먼의 「근친 성폭력, 감춰진 진실」

주디스 루이스 허먼 지음, 박은미, 김은영 옮김, 근친 성폭력 감춰진 진실, 삼인, 2010


           



-그러나 이런 견해['유혹하는 어린여자아이' 환상, 명시적 강제성을 요구하는 자유주의적 프레임 등]는 힘의 문제(the question of power)를 무시한다. 그것은 성인과의 관계에서 아동이 자유로운 선택을 하거나 통제할 방법이 없다는 현실을 파악하려 들지 않는다. (...) 아동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고자 부모나 다른 어른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본질적으로 성인의 손아귀에 놓인 존재이다. 따라서 아동은 그들을 보살펴 주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것이다. 만일 성인이 자신에게 의존하는 아동에게 성관계를 요구한다면, 아이는 응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동의라는 개념에 호소하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동의와 선택은 동등한 동료 관계에서나 적용되는 개념이다. 동의와 선택의 개념이 자유인과 노예의 관계에 적용될 수 없듯이, 성인과 아동 사이의 관계에서도 아무 의미를 가질 수 없다.(60p)

-성인과 아동 사이의 성관계는 강압적인 힘이 아니라, 대개의 경우에서처럼 적극적인 유혹 방법을 사용했다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강간이라는 강제성을 띠기 마련이다. 이는 특히 부모와 자녀 사이의 근친 성 학대에 적용된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이루어지는 성관계는 강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의미에서 강간이다. 대개 힘이 사용되었는지 어떤지의 문제를 따지기는 어려운데, 왜냐하면 아이를 고분고분하게 만드는 데 굳이 힘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동에 대한 부모의 권위는 순종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막강한 힘을 지닌다. 마찬가지로 자녀의 동의문제를 따지는 일도 당치 않다.

-상처의 문제에 대해 요약하자면, 거의 대부분의 증거는, 아동에게 성인, 특히 믿었던 친척과의 성적인 접촉이 장기간에 걸쳐 악영향을 끼칠지도 모르는 심각한 정신적 외상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 대부분의 피해자는 자신의 경험을 혼란스럽고 불쾌한 것으로 떠올리며, 절대로 낫지 않는 흉터를 지녔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강탈 행위에 의해 너무 이른 나이에 성에 눈을 뜬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여성이 겪는 갖가지 종류의 불운에 특히 더 쉽게 상처를 받는 것 같다. (71p)

 


-근친 성 학대에 어머니의 공모가 있었다면, 그것은 어머니의 무능력을 가늠하는 척도이다. (94p)

-그러나 환경이 어떻다 하더라도 아버지가 여성의 시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용인하지 않는 한, 어머니의 부재나 방임 정도가 어떻든 그것이 아버지의 근친 성 학대에 대한 구실이 되지는 못한다. 근친 성 학대를 하는 아버지는 은연중에 집에서 시중을 받는 것이 자신의 특권이라고 생각하며, 아내가 자신을 만족시켜 주지 못하면 딸을 대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과 봉사와 성관계의 권리에 대한 이런 태도야말로 궁극적으로 근친 성 학대를 하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특성이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아버지가 가족 내 여자들, 특히 딸들을 이용할 권리가 있다는 관념은 근친 성 학대를 금기시하는 구조 속에서조차도 내재했기 때문이다. (95p)

 


-요컨대 근친상간 금기의 심리적 기능 가운데 어떤 것도 왜 남성과 여성이 금기를 준수하는 태도가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오히려 남성과 여성이 금기를 아주 다르게 내면화하는 태도를 결정하는 것은 자녀 양육을 순종적인 여성에게 위탁시킨 가부장적 사회 구조이다. 아버지는 지배하고 어머니는 양육하는 가족 안에서, 가장 엄격히 지켜지는 근친상간 금기는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성적인 관계를 금지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반면 가장 자주 깨어지는 금기는 아버지와 딸 사이의 관계임에 틀림없다. (110p)

-생물학적 또는 사회학적 관점에서는 처녀성을 잃게 하거나 임신에 이르게 한, 곧 질 삽입 접촉만을 근친 성 학대라는 이름으로 정의하기에 걸맞다고 본다. 이런 협의의 정의는 대부분의 주에서 시행하는 형법이나 이 문제에 대한 일반 대중의 사고에 반영되어 있다. 성인 남성의 관점에서 보면, 음경 삽입 없이 끝난 성행위는 마치 별로 대수롭지않은 것인 양 흔히 완전하지 못한것으로 기술된다. 그러나 심리학적 관점, 특히 아동의 관점에서 보면, 성적으로 접근하려는 동기가 비밀에 부쳐져야 한다는 사실이, 행위 그 자체의 세세한 본질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아버지가 아동에게 자신의 성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행위를 가르치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숨기도록 한 바로 그 순간부터, 아버지와 아동의 유대는 이미 타락한 것이다.(124p)

-유혹하는 아버지의 딸이든 근친 성 학대 피해자든, 그들의 가정에는 두드러지게 유사한 점들이 있었다. 두 집단의 여성들 모두 다 전통적인 가부장 가족 출신이었으며, 가족의 신체적인 면과 경제적인 면을 모두 아버지가 지배했다. 성 역할은 전통에 따랐으며 엄격하게 제한되었다. 성행위에 대한 엄격한 이중 잣대를 포함하여, 보수적인 종교적 태도와 성도덕이 우세하였다. 이 두 유형에 속하는 가정의 차이는 종류의 차이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였다.(209p)

-근친 성 학대 피해자들과 유혹하는 아버지의 딸들 사이의 유사점들은 근친 성 학대가 전통적인 여성 사회화의 일반적인 패턴을 병리적인 극단으로까지 몰고 간다는 주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준다. 은밀한 근친 성 학대는 여성으로 하여금 남성을 과대평가하고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여성을 평가 절하하게 만든다. 그러나 노골적인 근친 성 학대는 순교자나 성적인 노예와 같은 생활에 굴종하는 여성들을 양산한다. 피학대 음란증(masochism), 자기를 돌보지 않음, 남성에 대한 복종을 성숙한 여성의 바람직한 특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근친 성 학대의 해로움을 깨닫지 못하거나, 심지어 아버지가 약간 유혹하는 것이 여성의 적절한 발전에 바람직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유로운 여성상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근친 성 학대는 여성의 생식기를 절단하거나 두 발을 꽁꽁 묶는 것만큼이나 여성에게 파괴적이다.(210p)

 


-숙련된 실무자들은 모두 근친 성 학대의 비밀을 폭로하는 일이 가족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대개 비밀이 드러날 때쯤 학대는 수년간 지속되었을 것이고, 이미 가족생활에 꼭 필요한 요소가 되어 버린 상태일 것이다. 깨지기 쉬운 균형이 무엇이든지 간에 비밀의 폭로는 가족들을 혼란스럽게 할 것이며, 가족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하고, 폭력적이고 무모한 행동을 할 가능성을 증가시키며, 모든 사람들, 특히 딸을 보복의 위험에 노출시킨다.(217p)

-더 이상 견디기 불가능한 상태로 치달으면서 이루어지는 딸의 폭로는 근친 성 학대 관계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온다. 딸이 성숙하면서 아버지는 성교를 시도하려 들 수 있다. 이 새로운 침입은 임신 위험을 느끼게 해서 딸로 하여금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관계를 끝내려는 시도를 하게 만든다. 비밀을 끝내려는 또 다른 일반적인 시도는 아버지가 사춘기 딸을 격리시키고 그녀의 사회적 관계에 제한을 가할 때 일어난다. 아버지의 질투가 점점 더 도를 넘어서면, 딸은 마침내 운명을 감수하기보다는 위협적이기는 하지만 보복 위험에 맞서기로 결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도움조차 구할 수 없는 어린 자매들을 보호하고자 딸이 비밀을 깨기로 결정하기도 한다.(217p)

-비밀을 누설하고 나면, 딸은 상당한 재확인을 필요로 한다. 먼저 그녀의 말을 믿는다는 것, 둘째로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셋째로 앞으로 성학대로부터나, 비밀을 깼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자행할지도 모르는 앙갚음으로부터, 보호될 것이라는 내용을 그녀에게 확실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그녀가 비밀을 털어놓은 일은 칭찬받아야 하며, 길게 보면 가족 전체를 도우리라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그대로 집에 머무르는 것이 얼마나 안전한지 그녀에게 확신시켜야 하고, 그녀를 보호하려고 선택할 수 있는 모든 방안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어야 한다.

어머니에게 이 끔찍한 뉴스가 폭로된 이상, 오히려 딸보다 어머니에게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할지 모른다. 남편과 딸 사이에서 상처받고 결혼 생활이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두려움에 떨면서, 어머니는 사실상 무력화되어 혼자서는 아무 행동도 취할 수 없다. 족 외부로부터 공감과 효과적인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녀는 남편의 지시와 영향에 굴복하여 딸로부터는 물러설 것이다. (...) 어머니를 위한 집중적 지원이란, 비밀이 폭로된 뒤 첫 주 동안에는 날마다 어머니를 만나고, 둘째 주에도 거의 비슷한 정도로 자주 만나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기간 동안에는 가족들을 아버지로부터 떨어뜨리는 결정, 곧 형사 고발 결정과 재정적인 지원이나 보육 지원 같은 실제적인 문제들을 가능하면 빨리 처리해야 한다. 이런 문제가 신속하게 해결되면 될수록 위기는 감소하고 치료와 회복 과정도 더 빨리 시작될 수 있다.(227p)

-여러 가지 이유에서, 딸보다는 아버지가 집을 떠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228p)

-하지만 남성을 자기 집에서 분리하는 일은 남성 지배에 대한 엄청난 도전이다. 그 자체로, 이런 절차는 대개 아버지 자신들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기존 사회 조직의 저항에 부딪힌다.(229p)

-설득은 힘의 행사가 뒷받침될 때 가장 성공적이다. 여기에는 경찰의 적극적인 협조가 긴요하다.(231p)

-위기에 대한 개입이 철저하고 적합하게 진행되었는데도, 비밀이 발각되었을 때 이미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너무 심하게 멀어져 그들 사이 유대는 회복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분리시키고 딸을 집에 남겨 두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이미 정서적으로 딸은 가족으로부터 추방된 상태이다. 오히려 어머니로부터 양육권을 박탈하는 것이 그 가족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일이 된다. 많은 기관들은 이런 사례들을 비극이라 지칭한다. 아동보호 기관 실무자가 밝힌 다음 사례 기록은 아동을 가정에서 분리시키는 일이 가장 합리적인 조치였음을 보여 준다.(232p)

-폭로의 위기에서 드러난 결과는 결국 이 모든 일이 모녀 관계의 상태에 달렸다는 사실이다. 만약 발생한 모든 사태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딸에 대해 애정을 지녔다면, 어머니와 아동을 함께 있게 하고 그들 사이의 유대를 회복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러나 만일 두 사람의 관계가 이미 파괴되었다면 어머니와 딸을 분리하는 것이 마땅하다.(235p)

 


-아버지: 아내와 자녀들에 대해 지녔던 통제력과 딸에게 성적으로 접근할 수 있던 힘을 상실한 뒤의 생활을 어떻게 견뎌 낼 수 있을지 상상하기조차 엄청나게 힘들어 함.

-어머니: 혼자라는 생각에 빠진다. 아버지의 압력과 협박에 대처해야 하는 일에 더해, 어머니는 그러고 싶지도 않고,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는, 가족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혼자 짊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자녀라기보다 경쟁자로 보였던 딸을 보호하려고, 혼인 관계가 보장했던 재정적, 정서적인 안정감을 희생해야 한다.

-: 그토록 바라던 안도감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성적인 학대는 멈추었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부모는 여전히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그녀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고통스런 상태에 머물러 있다. 가족 관계를 유지해 주던 성적인 유대가 파괴되면, 자녀와 부모 사이에 가로 놓였던 엄청난 간극을 메울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237-238p)



-가족 관계를 다시 추스르는 일은 어머니와 딸의 유대를 회복하는 데서 시작한다. (...) 예전과는 달리 딸을 보호하고 지지하려면, 어머니 역시 전에는 한 번도 누려 보지 못했던 일종의 지지를 필요로 한다. 어머니에게는 순교자가 되기를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힘이 되는 사람이 필요하다. 사회복지사 or 비슷한 경험을 한 다른 어머니. 둘 다 있다면 이상적. (239p)

-산호세의 부모연대(Parents United)나 타코마의 가족재결합(Families Re-United)

-어머니가 치료를 받는 동안, 딸에게도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어머니들의 사례에서와 마찬가지로, 개별적인 연대가 필수적이며, 가능하다면 동료 집단의 지원이 바람직하다.(242p)

-햇빛소녀들(the Sunshine Girls): 타코마의 아동보호 서비스와 강간 구호 프로그램의 연대

 


-이런 입장을 취하는 전문가들은 치료 결과가 의문시되거나, 아버지들을 가족으로부터 배제하는 것이 아버지들을 교정시키고 재통합시키려 노력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안전한 전략인 것처럼 보일 때는,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자원을 가해자 치료에 쏟아 붓는 것에 반대한다. 여성주의 사회복지사인 플로렌스 러시(Florence Rush)는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를 없앤다는 환상과도 같은 생각을 누가 하겠습니까?” 이 질문에 담긴 요지는 아버지를 제거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 끊임없이 새로운 피해자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244p)

-전통적인 치료 방법은 환자가 내적인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 자발적으로 치료를 받으려 하며, 치료자를 최고의 능력을 지닌 사람으로 신뢰하고, 숨기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길 가정한다. 반대로 치료자는 아무 판단 없이 환자의 말을 경청하고 환자의 문제에 개입하며, 환자가 한 말을 비밀에 부치는 것에 동의한다. 환자에게 기대하는 최대 목표치는 자기 인식의 증대와 내적인 변화이다. 그러나 이런 모델을 성범죄 가해자에게 적용하면 완전히 무용지물이 된다. 근친 성 학대 범죄를 저지른 아버지들은 대체로 딸에게 성적으로 접근하면서 심적인 고통으로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발적으로는 거의 치료에 응하지 않으며, 대체로 자기가 저지른 범죄 일체를 털어놓지도 않는다. 그들이 치료에 응하는 목표는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란하게 말을 꾸며 내 치료자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어서는 기소에 도움이 되게 하고, 심지어 다시 피해자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게 만드는 데 있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통찰에 기반을 둔 심리 치료(insight-oriented psychotherapy)는 완전히 부적절하다.(247p)

-머리 보엔(Murray Bowen)과 살바도르 미누친(Salvador Minuchin) 같은 이론가가 개발한 전통적인 가족 치료 역시 근친 성폭행 범죄자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이 학파는 수많은 죄악이, ‘지배하려는어머니와 수동적인아버지의 결합 때문이라고 보는 경향을 드러낸다. 따라서 치료 개입은 주로 남성의 지배성을 회복하려는 형태를 취하는데, 남성의 지배성은 근친 성폭행이 이루어지는 가정에서 전혀 회복할 필요가 없는 요소이다. (...) 핵가족을 회복시키려는 이상에 최우선 순위를 둔 프로그램들조차 가장 바람직한 결과를 얻으려면 가정 내 힘의 균형에 급격한 변화, 특히 어머니 편에서 힘을 회복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점을 전제했다. (250p)

-성 범죄자를 위한 가장 성공적인 치료 프로그램은 치료에 응하지 않으면 법적인 제재라는 채찍이 부가된 중독 치료 프로그램과 유사하다. 프로그램들은, 범죄자가 변화하려는 내적 동기나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확고한 제한선을 두되 손에 잡히는 보상을 부여하는 매우 구조화된 집단적 과정을 통해 범죄자에게 동기 부여와 내적 통제력을 제공한다. (252p)

-집단에는 패거리 성향이 내재했기 때문에, 치료 과정이나 부모들의 자조 집단에서는 결코 가해자가 지도자가 되는 일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카리스마와 리더십 기질을 지닌 가해자는 참여자들을 지배하여 모임을 망치기 쉽고, 모임을 자신의 지속적인 약탈 행위를 가리는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형태로 발전되는 것을 막는 유일한 보호 장치는 가해자에게 힘을 부여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치료 집단은 치료자가 지도하도록 하고, 부모연대와 같은 자조 집단은 가해자가 아니라 어린 시절에 피해를 당한 적이 있는 어머니나 성인 여성이 책임자를 맡도록 해야 한다. (257p)



-재발은 문서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치료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주요 기준이어선 안 된다. 오히려 성 학대를 저지른 아버지들의 사회 복귀에 진전이 있느냐는 그들의 아내나 자녀들의 복지 상태로 측정해야 한다. 가족 구성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아버지로부터 위협이나 강요, 협박을 당하는 느낌을 갖지 않을 때, 아버지가 있는 데서도 딸이 편안해 할 때, 어머니가 아버지를 부담스러운 존재가 아니라 배우자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때, 치료를 성공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가해자의 상태가 개선되는지를 평가하기에 적절한 사람은 가해자 자신이 아니라 그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이어야 한다. (259-260p)

-아버지와 적절하게 재결합할지 말지는 어머니가 결정한다. 어머니는 그녀 혼자 살아나갈 수 있는지를 발견할 기회를 가져서, 딸과 유대를 회복했기 때문이다. 부모인 부부를 재결합하도록 성급하게 압박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 어머니들은 가족을 더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법을 배워야 하며, 반면 아버지들은 더 유순하고 자녀를 양육할 능력을 지닌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이런 변화들은 오랫동안 굳어져 온 가족의 관행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사회규범을 부수는 역할을 한다.(262p)

-부모의 재결합을 결코 치료의 최종 지점이나 성공의 규준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가족 관계 회복을 나타내는 가장 의미 있는 지표는 어머니-딸 관계의 건강성이다. 만일 아버지가 가족에게 다시 돌아가려면, 어머니와 딸은 지속적인 보호와 지원을 보장받을 필요가 있다. 따라서 가족에게 돌아간 아버지들은 그들의 딸이 집에 거주하는 동안에는 보호관찰 상태여야 한다. 아무렇게나 정한 6개월이나 1년간의 사후 작업은 전혀 소용이 없다.(262p)

 


-딸은 아버지가 벌을 받길 원하지 않는다. 그녀는 아버지가 학대를 멈추고 신뢰할 수 있는 부모로 행동하면서 지난 잘못을 고치기를 원할 뿐이다. 만약 그녀가 아버지와 소원해지거나 아버지가 변화할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딸들은 아버지가 가족으로부터 떠나가기를 바랄 뿐 감옥에 갇히는 건 거의 원하지 않는다. 결국 근친 성 학대 관계를 견뎌 내기 힘들어져서 그 관계를 끝내고자 어떤 위험이라도 감수하기로 작정하고서야, 비로소 딸들은 필사적으로 법에 호소한다. (268p)

-요컨대 재판 제도는 근친 성 학대 피해자들에게 거의 아무 위안도 주지 못한다. 성문화된 법은 거의 집행되지 않고, 집행된다 하더라도 아동에겐 거의 아무 이득이 없다. 처벌하겠다는 위협은 근친 성 학대를 저지른 아버지를 억제하는 데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처벌이라는 사실 자체가 그들을 사회로 복귀시키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상 법체계는 그가 얼마나 학대적인 사람인가와는 상관없이 아버지의 권위를 지탱하고 보호하는 기능을 할 뿐이다.(276p)

-비록 법체계가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가부장적 권위를 남용하는 행위에 대해 잠재적인 제한을 가할 수 있다. 성 학대에 반대하는 법에는 적어도 아동보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라는 기본 원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부모의 권한에 대한 요구가 아동이 보호되어야 할 권리와 갈등을 빚을 때, 법체계에서 힘의 균형은 아버지로 기울며, 따라서 법은 집행되지 못한다. 그러나 법체계에서 힘의 균형은 아동의 권익이 더 잘 표현될 수 있도록, 그리고 부모의 권한이 자동적으로 법으로부터 면책을 받을 권한을 부여하지 않도록 잠재적으로 수정될 수 있다.(276p)

-근친 성 학대 가해자에 대한 유죄판결은 아동과 가족에게 심오하고도 유익한 효과를 미친다. 아버지가 유죄를 인정하거나, 그의 행위가 유죄로 입증되면 아동 피해자는 엄청난 심리적 부담에서 벗어난다. 아동은, 성숙한 사회일수록 근친 성 학대를 묵인하지 않으며, 자기 신체를 지킬 개인의 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갖는다. 또 아동은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녀의 진정성을 믿으며 성적인 관계에 대한 책임은 아버지가 져야 한다는 사실도 배운다.

유죄판결을 내리거나, 유죄판결을 내리겠다는 위협은 가해자의 치료와 재활에 가장 큰 희망을 부여할 수 있다. (...)

법적인 개입이 아동에게 전적으로 파괴적인 것은 아니다. 피해자를 배려와 존중으로 대하고, 고발 내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경찰의 개입과 재판 절차가 아동을 위해 적절하게 조절된다면, 아동이 법적 절차로 인해 받을 수 있는 심리적 상처(trauma)를 상당히 감소시킬 수 있다. 이것은 아동 피해자를 위한 변호 프로그램의 발전과 더불어 입증되어 왔다.(277p)

 


-치료자는 환자들이 자신의 동기와 목표를 철저하게 탐색할 때까지, 또 그것들과 직면함으로써 유발되는 반응을 충분히 예상하고 감정적인 준비를 잘 할 때까지는, 그들을 가족들과 대면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특별한 기술의 도움, 곧 일부 치료자들이 사용하듯이, 대면에 대비하여 미리 연습하거나 그것을 대체할 만한 역할 연습(role-play) 또는 사이코드라마 같은 도구의 도움 없이는 반응을 예측하는 작업은 잘 이루어질 수 없다. 적절한 준비가 이루어지면, 대면은 환자가 근친 성 학대의 정신적 외상을 적절하게 통제하는 데 하나의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일종의 의식(rite)이 되어, 환자는 그 과정을 통해 마녀, 나쁜 년, 창녀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떨쳐 버리고, 가족의 비밀 수호자 역할을 벗어던진다. 오히려 그녀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을 용서한다. 만일 가족 구성원들이 부인, 당혹감, 적대감 또는 위협 등으로 반응한다면, 그녀는 이런 반응들을 지켜보고, 그런 반응을 통해 그녀가 어린 아이였을 때 가족들이 그녀에게 부여한 억압이 얼마나 강력한 것이었는지를 판단하도록 고무된다.(318p)

-공개적으로 연설을 하거나 조직가가 되려는 결심에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치료를 통해 그 문제를 아무리 철저하게 다뤘다 하더라도, 피해자는 여전히 자기 비밀을 털어놓을 때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그런 용기는 전염성이 강하다. 한 여성이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불러일으킨다.(322p)

 


-근친 성 학대가 사실상 가부장적 가족 구조에서 비롯한 불가피한 결과라면, 성 학대 예방은 궁극적으로는 가족 구조의 근본적인 변혁을 요구한다. 아버지의 규율이 부모 양측의 협조적인 규율로 바뀌어야 하고, 노동의 성적인 분화는 자녀를 돌보는 일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똑같이 참여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물론 이 야심찬 가시적인 변화가 한 세대만에 이루어질 수 있는 작업은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천년이 도래하기 전에, 즉각적으로 성취될 수 있는 일이 몇 가지가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아마도 성 학대를 예방할 수 있는 최대의 희망은 잠재적인 피해자들의 의식 고양(consciousness raising)에 있다. (...) 성관계와 성폭행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일에 덧붙여, 아동들은 자신의 신체적인 통합성을 지킬 권리를 지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샌드러 버틀러(Sandra Butler)어린 피해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느 누구도, 심지어 네 부모라 하더라도 네 마음과 몸 상태를 불쾌하게 하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어떤 행위를 할 권리는 없다. 그리고 네가 그런 행위를 못하게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정당하다. 네 몸이므로, 너는 죄의식을 느낄 필요 없이 싫다고 말할 수 있다.” 자기 몸에 대한 아동의 권리(성적 자기 결정권)라는 이런 이념은 뿌리를 뒤흔드는 혁신적인 이념이다.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정에서 자녀는 아버지의 법적인 소유물이므로 그런 가정에는 이런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 끝으로 아동들이 가정에서 학대당한다면 가정 밖에서 의지할 만한 자원은 무엇인지 알아 둘 필요가 있다. (334-335p)

-특히 어머니의 사회적 신분이 조금이나마 진보하는 일은 어머니-자녀 관계 증진에 훨씬 더 좋은 환경을 조성한다. 근친 성 학대가 일어나는 가정에서 어머니와 딸 사이에 고통스러울 정도의 적대감이 자주 관찰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여성들 사이에서 동 세대 여성 간의 적대감이 더 크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과장일 뿐이다. 어머니가 힘이 없으면, 딸은 불가피하게 어머니에게서 소외된다. 현재 너무나도 많은 소녀들이 가정에서 관찰을 통해 억압은 자신의 운명이며, 남성을 사랑하는 일은 노예가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학습한다. 딸들이 보호받으려면, 딸들 자신이 싸울 능력이 있으며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어머니의 선례로부터 배워야만 한다. (...) 근친 성 학대가 일어난 가정에서 치유는 어머니-딸 사이의 유대 회복으로부터 시작하듯이, 근친 성 학대의 예방은 궁극적으로 딸이 절대로 근친 성 학대 비밀을 지켜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지점으로까지 어머니와 딸의 관계가 강화될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렸다. (339-340p)

 


-일부 논평자들은 근친 성 학대가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자주 발생한다는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그 문제를 남성 지배라는 맥락으로부터 분리하여 이해하려 했다. 성 학대를 저지른 범죄자들이 모두 남성인 것은 아니며(그들 가운데 90퍼센트 정도다.), 모든 피해자가 소녀들인 것도 아니라고(성 학대를 당하는 소년들의 수도 상당하지만, 이들은 대개 더 나이가 많은 소년이나 성인 남성에 의해 학대당한다.) 지적하는데, 물론 틀린 지적은 아니다. 하지만 한 성이 다른 성에 대해 저지른 학대가 그렇게 만연했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부인되고 간과되어 왔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여성주의 분석뿐이다. 여성주의 분석만이 근친 성 학대 범죄자들이 왜 겉으로는 보통 사람들처럼 보이는지, 아니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힘을 지닌 남성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를 설명해 준다. 오직 여성주의 분석만이, 학대당한 아동과 성인 생존자들을 위해 가장 열심히 나서는 옹호자들은 왜 언제나 여성들이었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여성주의 분석만이 근친 성 학대 범죄자들이 자신의 범죄 사실을 변명하려고 진지한 노력을 기울일 때마다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 갈등 상황이 벌어지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361p)

 


-그러나 학대 피해자들을 돕거나 치료하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고 해서 아버지의 규율이 다시 수립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폭력을 당한 여성들은 어떻게 해서든 견디어 왔고, 우리는 강간, 폭력, 그리고 근친 성 학대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일을 방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의 생식상 권리를 찾는 일도 지연되지 않을 것이다. 학대는 너무도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그리고 너무도 많은 피해자들이 자신의 비밀을 폭로했다. 이제 침묵으로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41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