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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공동체

[여성해방 길찾기①] "여성혐오", 여성에 대한 문화적 부정의(injustice)의 다른 이름

[여성해방 길찾기①]

여성혐오”, 여성에 대한 문화적 부정의(injustice)의 다른 이름

 

 

  우에노 치즈코는 그녀의 저서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에서 여성혐오(misogyny)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성적 주체로 결코 인정하지 않는 여성의 객체화, 타자화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여성 멸시이며, ‘이는 여성에게서는 자기혐오로 나타난다고 적었다. 이 개념적 정의에 따르면, 여성혐오는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여성을 남성에 비해서 열등하거나 부차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차별적인 시선은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이다. 단적인 예로, 한국사회에 10년 전에는 위와 같은 의미에서의 여성혐오가 없었는가. 30년 전에는? 식민지기에는? 조선시대에는? 그때에는 남성의 여성 멸시와 여성의 자기혐오가 없거나 적었다고 답할 수는 있는가? 답은 정해져 있다. 더 심했으면 심했지, 없거나 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혐오가 핫해진 것은 우에노 치즈코 책의 한국어 번역판이 출간된 2010년보다도 더 최근의 일이다. 혹자는 2015년을 여성혐오 원년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이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여성혐오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단어의 개념적 정의를 살피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혐오라는 기표가 어떤 방식으로 등장해서 유통되고 공유되었는지 그 맥락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성차별이나 남성중심성/가부장성등 기존에 통용되던 개념들이 아니라 굳이 여성혐오라는 생소한 개념을 도입하여 지칭하고자 했던 여성억압의 문제적 지점은 무엇인가? , 2015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하여, 논란의 메갈리아를 탄생시키고, 현재까지도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화제의 중심으로서의 여성혐오란 무엇인가? 나아가 이 여성혐오에 문제제기하고 저항한 목소리는 무엇을 말했고 우리 사회는 그 목소리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2015년을 기점으로 한 주목할 만한 변화는 여성에 대한 공격성 표출이 본격화되었다는 점이다. 페이스북의 김치녀혹은 상남자페이지가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변덕스럽고, 허영심 많고, 이기적인 김치녀와 그들을 폭행하거나 응징하는 상남자의 모습이 유머의 형식을 빌려 끊임없이 게시되었으며, 이러한 페이지들은 수만 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여성 개개인에 대한 직접적 공격도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상당수의 여성들이 신상털이와 마녀사냥의 표적이 되었다. 그 이전에도 일베를 중심으로 여성에 대한 혐오적인 정서구조가 형성되어 있었다고는 하나, 이처럼 온라인 전반에 만연하고 개인의 삶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로 위력을 떨친 것은 아니었다. 김수아(2016)의 표현에 따르면, 2015년 이후 여성혐오는 클릭하지 않으면 모르는 곳(일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생활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여성혐오는 주로 이 새로운 현상에 문제제기하기 위한 용어로 시작되었다. 더 이상 굳이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 여성에 대한 노골적인 비하와 조롱,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의 희화화, ‘김치녀로 지목된 여성에 대한 집단적 린치, 그리고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봉쇄하려는 시도들. 이후에 메갈리아의 활동과 강남역 살인사건을 여성혐오 살인이자 여성살해(femicide)’로 이슈화하는 과정을 통해 여성혐오의 외연은 우에노 치즈코의 개념 정의에 보다 부합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감수해야 하는 무시, 경멸, 조롱, 비하를 중점적으로 짚어냈다.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남성들의 여성비하적인 인식과 언행,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 등을 역전시켜 되돌려준다는 목적으로 행해졌으며,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 여자라서 죽었다는 구호는 여성을 남성에 비해 부차적이고 열등한 존재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이 살인자로 하여금 ‘(감히)여자가 날 무시해서목숨까지도 빼앗을 수 있다고 믿게 만들었음을 외친 것이었다.

  이는 여성혐오가 여성에 대한 문화적 부정의(injustice)의 다른 이름임을 뜻한다. 문화적 부정의는 특정 집단의 문화나 정체성이 비하, 왜곡, 경멸당함으로써 낙인찍히는 것을 말한다. 찰스 테일러와 악셀 호네트는 이와 같은 무시가 낙인찍힌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왜곡되고 자신의 정체성이 손상되는 고통을 안기게 된다고 적었다. 여성에 대한 문화적 부정의는 남성성과 연계되어 있는 특징들에 특권을 부여하면서 여성적인 것은 평가절하하고 비방하는 규범의 구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남성 중심적 규범은 일상의 희롱과 비방, 여성을 왜소화대상화전형화하는 미디어의 묘사, 공적 영역과 심의체에서의 배제주변화, 온전한 법적 권리나 동등한 보호의 부정 등으로 나타난다. 단적인 예는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등 친밀한 파트너 학대(IPA: Intimate Partner Abuse), 성폭력 혹은 성적 착취, 그리고 여성살해(femicide)가 될 것이다. ‘무시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것과 달리 문화적 부정의는 전혀 개인적이지도 사소하지도 않다. 체계적이고 촘촘한 그물망을 여성의 삶 곳곳에 드리우고 있으며, 여성의 자아존중감을 손상함으로써 지속적인 피해를 낳고,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된 경우에는 목숨까지 앗아가기도 한다.

  문화적 무시가 여성이 피억압 집단으로서 경험하는 유일한 부정의는 아니다. 여성은 또한 사회경제적으로 잘못된 분배로 인해 고통받는다. 젠더가 생산적 임금노동과 재생산 및 가사 노동과 같은 부불 노동을 구분후자를 담당할 책임은 일차적으로 여성이 떠안게 된다하고, 임금노동 내에서도 남성 지배적인 제조업 및 전문직 고소득 노동과 여성이 대다수인 핑크칼라및 돌봄 노동 같은 저임금 직종을 구분하는 구조적 원리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이러한 젠더의 정치경제적 차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여성의 경제활동참여 비율이 낮고 소위 ‘M자 곡선이 악화된 형태로 나타나며, 여성의 시간당 임금이 남성의 63.6%에 머물러 남녀간 임금격차’ 14년 연속 OECD 1위를 점했고, 직종별 성별화가 뚜렷하다. 이로 인해 여성은 착취경제적 주변화박탈이라는 경제적 부정의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여성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기는 하지만 잘못된 분배로 환원될 수 없는, 문화적 무시경멸비하로부터 구조적인 차별을 경험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강남역 살인사건 직후 한 트위터리안은 스스로를 지정성별이 여성인 젠더퀴어라고 밝히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고 적었다. 그 시각에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살인남에게 여성으로 인식된 한, 그 누구도심지어 스스로가 인지하는 젠더 정체성과도 무관하게죽음을 면할 수 없었다. 살인의 동기가 여성을 경제적으로 착취하기 위함이 아니라 여성을 향한 혐오와 분노 때문일 뿐 아니라, 살해할 대상의 선정은 철저히 여성성의 기호에 반응하여 결정된 것이었다. 이처럼 무의식적인 배제로부터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폭력에 이르기까지, 문화적 부정의로 인한 피해는 어떤 계급에 속해있는 여성이라고 할지라도 피해갈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여성을 경제적 부정의뿐 아니라 문화적 부정의로 인해 피해를 입는 이가적(bivalent) 집단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만이 배타적으로 적용될 만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 문화적 무시와 잘못된 분배는 하나의 사건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동시에 나타나고, 상호 연관되어 작동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두 가지가 개념적으로 구분될 수 있으며 이 구분이 이념형으로써 유용하다는 점이다. 문화적 무시는 여성의 경제적 빈곤을 통해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독자적인 규범체계를 구축해서 스스로의 작동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 여성억압의 문화적 차원은 정치경제적 차원과 크게 상관이 없으며 단순한 상부구조가 아니다. 따라서 경제적 부정의문화적 부정의는 여성억압의 핵심적이고도 서로 다른 두 측면을 보다 명료하게 인식하도록 해준다.

 

 

  정리하자면, 그동안 공기처럼 퍼져있어서 상존하면서도 문제로 인식되지 못했던 남성 중심적 문화 규범이 2015년을 기점으로 온라인에서 과격하고 공격적인 방식으로 표출되었고, 이를 계기로 여성에 대한 문화적 부정의에 대한 문제제기가 여성혐오라는 기표를 사용하여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를 계기로 점화된 논쟁의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생리에 대해서, 가정폭력 가해자의 접견권을 인정함으로써 피해여성이 결국 살해되도록 만든 경찰에 대해서, 여성시대가 제작한 공익광고를 서울메트로가 게재 거부한 것에 대해서, ‘프로듀스101’PD건전한 야동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 발언에 대해서, 넥슨 성우 김자연씨가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목소리가 삭제된 일에 대해서, 그녀에게 지지를 표명한 게임업계 종사자웹툰 작가들에 대해서, 이들의 이름을 나열한 나무위키 살생부에 대해서, 해당 사건에서 김자연씨의 노동권이 침해되었다는 논평을 냈다가 탈당선언이 줄을 잇자 논평을 철회한 정의당에 대해서, 메갈리아를 옹호하는 창작자들을 검열하자는 YES CUT 운동에 대해서, 강간약물(소위 골뱅이 만드는 약’) 광고를 실은 국민일보에 대해서, 넥슨 사옥 앞에서 진행된 메갈리아의 시위를 햄버거 350라며 조롱한 조선일보에 대해서...... 근래 온라인 공간에서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주제들이다. 모두 여성에 대한 문화적 부정의의 사례들이자, 문화적 부정의에 문제제기하며 저항을 시도한 사례들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