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망/내면

건강을 위해서라는 변명

비교적 외모에 관한 스트레스가 적은 환경에서 지내왔다고 생각한다. 통통한 것이 예쁘다고 여기는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자랐고, 대학에 입학하자 운이 좋게도 내가 소속된 학과/반은 페미니즘을 포함한 인권감수성을 높이고자 내규를 만들고 교양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누군가 직접적으로 내 외모를 비하하거나 조롱거리, 성적 농담거리로 삼는 일은 적었다. 나 또한 모든 욕망을 대입 이후로 유예하길 요구받는 여느 고등학생들과 같이, 수능이 끝나고선 다이어트와 화장, 쇼핑에 여념이 없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에도 엄마 아빠는 외모에 지나치게 신경쓰는 것을 나무랐다. 이미 충분히 예쁘다, 그리고 예쁘지 않으면 뭐 어떠니.

그래서 내가 정말로 외모에 아무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었냐 하면, 불행히도 그렇지가 않았다. 미디어는 마르고 날씬하고 예쁜 여자 연예인들만을 비추었고, 내 주변 사람들도 그런 연예인들을 좋아했다. 난 입으로는 외모로 평가하고 차별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결국 예쁘고 날씬한 사람들에게 애정을 품게 되는구나, 하고선 아무리 사람들이 좋은 말을 하더라도 곧이곧대로 믿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버렸다. 페미니즘을 점차 깊이 있게 접하게 되면서 서서히 그러한 굴레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완전히 떨쳐버리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마른 몸에 대한 욕망이 그랬다. 글 쓰고 사유하는 분야에 몸 담는 일은 하얀 얼굴, 사근사근한 미소, 긴 속눈썹 같은 것으로 대변되는 전형적인 여성미로부터는 한 걸음 비껴나게 해주었지만, 멋진 지성인이 되려면 왠지 마르고 강단있는 모습이어야 할 거 같았다. 뚱뚱한 이 시대의 지성, 은 본 적도 없고 상상도 안 됐다. 여성, 아시안으로 좁히면 더 그랬다. 나는 저체중에 가까웠을 때 만족스러웠고 체중이 늘었을 때 자신감이 떨어졌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이상 다이어트는 꺼려지는 일이었다. 비일관성을 꼬집는 빈정거림이 두렵기도 했고, 다이어트 열풍에 페미니스트인 나조차 동참해버리면 그걸 지켜보는 여성들의 압박이 더 커질 것이 걱정되기도 했다. 뭣보다 그런 일에 질질 끌려다니는 게 너무 안 멋있다고 생각했다. 거창한 말들을 이러쿵저러쿵해대면서 사실은 해결해야 할 세상의 문제들보다 체중계 위의 숫자에 연연하는 여자애라니. 그렇게 하찮아지기 싫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 자꾸만 나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했다. 이건 건강을 위해 운동하는 거야, 이건 건강을 위해 안 먹는 거야, 하는 식으로. 실제로 그다지 튼튼한 편은 아니었으므로 좋은 변명거리였다.

나이를 조금씩 먹으면서 진짜로 체력의 한계를 느끼는 일이 잦아지자, 이번에야 말로 다이어트가 아니라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고 건강한 식단을 지키자고 다짐하는 일이 늘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요가며 홈트레이닝 영상이며 건강식 요리법 블로그 포스팅까지, 하나 같이 '건강'과 '다이어트'를 짬뽕시켜 두었고, 나는 어김없이 그 속에서 길을 잃었다.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튼튼한 체력보다는 예쁜 몸매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러다 바쁘고 한숨 나오는 생활 위에 운동이며 식단이 신경쓸거리를 얹는게 못 견디겠다 싶은 순간이 오면(그리고 대학원생으로 살다보면 그런 순간을 자주 맞이하게 됐다), 으아아 몰라몰라 하고서 다 때려치웠다. 건간-다아아아이어트-와아아아아아아아식생활 패턴이 반복되는 동안 체력은 늘리 없었고 정신건강만 나빠졌다. 얼마 전에는 몸에 안 좋은 백색가루를 피해보자며 시작했던 식이요법의 끝이 곤약젤리 많이 먹어서 설사하는 나인 것을 보고서 대한탄했다. 대체 언제 어떻게 탈-현대인 건강식단이 설현 5kcal 곤약젤리로 바뀌었느냔 말이다...

내가 의지력이 없고, 이상한 방식으로 체면을 차리려고 하고, 이중적이기 때문에 경험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마음 속을 잘 들여다보면, 나는 비슷한 일을 경험 중인 사람들이 많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경험을 나누는 것이 발화자와 청자 모두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사실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굳이 내가 내 치부를 드러내가면서까지 나설 필요는 없다고 웅크리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 소극성과 비겁함이 더 부끄럽다고,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의 글을 보며 생각하게 됐다. 며칠 전 필라테스를 새로 끊었고, 여기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인바디 측정을 해준다. 나는 이번에 필라테스를 하면서 체중은 신경 쓰지 않고 근육량 증가추이만을 보려고 한다. 체중계도 줄자도 다 말고, 오래토록 숨차지 않는 체력과 몸을 든든하게 받쳐줄 근육을 목표로 할 것이다.


2019.3.25.


easypeasy_goal

'전망 > 내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전히 모르겠어요, 시와  (0) 2020.06.18
요조, 보는 사람  (0) 2018.03.20
한강, 유월  (0) 2018.03.20
한강, 서시  (0) 2018.03.19
피해자의 윤리적 고통  (0) 2016.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