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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영어제목: I got married as a job) - 가사노동에 대한 유쾌한 사고실험 유쾌한 드라마였다. 고학력임에도 불안정고용과 위계적 조직문화로 소진되어 가기만 했던 미쿠리가 우연히 하게 된 하라마사의 가사대행에서 성취감을 느끼게 되고, 여차저차해서 입주형 전업가사대행이 되기 위해 외형만 부부의 모습을 갖추는 것은, 부유한 남자와 결혼하여 가정주부가 되는것을 ‘취집’이라며 비난하는 세태를 멋지게 뒤틀어낸 데가 있었다. 가정주부로 취업하는 게 뭐가 나빠, 가사노동도 시간과 노력뿐 아니라 숙련도와 전문성이 요청되는 엄연한 ‘노동’인데다가 상당한 경제적 가치를 지니는 것인데, 내추럴 본 공대생 하라마사가 계산기 두드려본 결과 급료를 주어가면서라도 이 고용계약 하는 편이 자기한테도 유익하달 정도인걸, 하고. 하지만 거기까지였다면 가사노동에 관한 반쪽짜리 통찰이었을 것이다. 작품 속의 미쿠리가.. 더보기
[드라마] 마더 - 어머니'들'의 이야기, 한 인간의 성장 스토리 상찬할 것이 많은 작품이었다. 리메이크임에도 원작을 넘어서는 연출, 정서경작가가 새로 쓴 대사의 힘, 배우들의 연기력까지. 다양한 어머니들을 등장시키면서 그들 중 평면적인 인물은 없었다. ‘혼자 밥 차려먹다 서글퍼져서 떠올리는’ 그런 엄마가 아닌(어느 작가는 지도생들이 이렇게 써오면 무조건 돌려보낸다고도 했다, 게으른 상상력을 탓하며), 저마다의 사정, 욕구, 개성을 지닌 존재로 어머니를 그렸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적으로도 의미 있다 여겼다(이 지점에선 이혜영분 영신의 캐릭터가 돋보였다). 가정폭력, 아동학대, 미혼모 이슈도 녹여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좋았던 가장 큰 이유를 꼽자면 무엇보다, 성장 스토리라서였다. 스스로 누군가의 엄마가 될 일은 평생 없으리라 생각했던 수진이 혜나를 만나 엄마가 되기로 결.. 더보기
우리 선희 누구도 타인에게 가 닿지 못하는가, 아니, 사람들은 그러기를 원하기는 하는가. 선희를 표현하려고 동원된 말들은 그녀의 실체를 포착하지 못하고 어김없이 미끄러지기만 한다. 그녀가 왔다 간 자리에 남는 것은 여기저기 옮겨다니다가 얼기설기 뭉쳐져버린 언어뭉치뿐. 세 남자의 좋아한다는 말에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관심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타인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큰 오류인가.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타인 위에 덧씌운, 내가 보고싶은 이미지이지 않은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