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썸네일형 리스트형 나, 다니엘 블레이크 불황과 선택적 복지의 틈바구니에서 서류더미와 관공서의 절차, 규정 따위가 무정하고 건조하게 사람을 죽여내는 부조리를 짚어내면서도, 전형적인 피해자 상으로 인물들을 그려내지 않았다. 많은 사회비판/폭로형 영화가 비판과 폭로를 위해서 사회적 소수자를 다시금 타자화 희생자화하는 점을 경계한 것. 다니엘 블레이크는 자신의 존엄을 귀히 여기고 당당함을 잃지 않으며, 극한의 상황에서도 나눔의 가치를 실천하며, 세상의 곳곳에 숨어있는 아름다움이나 따뜻함을 놓치지 않고 느낄 줄 아는 사람이다. 이토록 강건하고 인간다운 자에게 품는 감정이 동정이나 연민일 수는 없다. 존경과 존엄에의 공명으로, 그의 마지막 말이 실현되는 사회를 열망한다. 2016. 12. 25. 더보기 리틀 포레스트 (한국판) 극중 혜원엄마(문소리 분)는 혜원(김태리 분)에게 남긴 편지에 적었다. “혜원이가 힘들 때마다 이 곳의 흙 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걸 엄마는 믿어.” 편지에 정작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은 하나도 없었노라고 골을 냈던 혜원이지만, 영화 말미에 이르면 엄마가 무슨뜻이었는지 이제 조금은 알겠다고 시인하게 된다. 영화는 서울서는 채워지질 않던 허기가, 계절의 흐름에 따라 말끔히 마르고 촉촉하게 차오르는 모습을 담아냈다. 따뜻한 힐링 영화라는 찬사의 다른 한 편에선, 실제 농촌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코멘트도 자주 보였다. 그래서 이 영화를 농촌판타지라고도 했고 농촌뽕이라고도 했다. 고향이랄 것 없이 여기저기 살았으나 그 와중에도 시골살이는 해본 적 없는 나.. 더보기 [전시]역사를 몸으로 쓰다展 역사를 몸으로 쓰다展 (~2018.01.21)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몸으로 써내려간 역사는 명시적이지 않다. 퍼포먼스로 역사적 사건을 ‘재상연reenacting’하는 것은 언어로 역사를 서술describing’하는 것과 다르다. 몸짓은 소통하는 언어활동 내에 있지만 문장으로 말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언어활동 속에서 파악되지 않는다. 조르주 아감벤Giorgio Agamben의 용어대로라면 몸짓은 ‘목적 없는 수단’으로서, 언어적이면서 동시에 언어 너머 혹은 바깥에 있고, 특정 목적으로 결정화되지 않는 ‘잠재성’의 가치를 지닌 어떤 것이다. 언어로 역사 쓰기가 역사를 재현하거나 명증하려는 정확한 목적성에 있다면, 목적없는 수단으로서의 몸짓은 언어가 가둬놓은 틀을 뚫고 나와 언어가 기입된 역.. 더보기 요조, 보는 사람 불쌍한 것을 알아본다고 해서 착한 사람은 아냐 나는 그냥 보는 사람이에요 나는 그냥 보기만해요 나는 그냥 보는 사람이에요 나는 그냥 보기만해요 강가에서 보기만 할 거에요 한 시간이면 돌아올 거에요 _ 내가 행하는 사람이 못된다는 것은 옛저녁에 알았다. 실천으로, 몸으로, 밀고나가서 기어코, 키워내고 일궈내고 만들어내는, 그런 사람들에게서 으레 뿜어져나오는 강렬하지만 안정적인 에너지가, 나에게 없음을. 깨닫는 데에 많은 통찰력이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다. 의욕을 못 이긴 몸이 몇 차례 아픈 치레를 하고는 그저 알게 되었다. 아 그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하고. 움직임의 한복판에서 치열하게 변화를 만들어내는 역할은 다른 누군가에게 무책임하게 양도해버리고도, 놓지 못한 것은 기록자로서의 일이었음을 깨닫는 데엔.. 더보기 [전시]국경을 넘-어 경계를 넘-어 : 독일로 간 한국간호여성들의 이야기 (Women Who Transcended Boundaries) 국경을 넘-어 경계를 넘-어 : 독일로 간 한국간호여성들의 이야기 (Women Who Transcended Boundaries)서울역사미술관 _ "노동력을 불렀더니 사람이 왔네." 노동이주와 관련한 문구로는 아마도 가장 잘 알려진, 유명한 문구일 것이다. 한 사람이 올때는 그 사람의 인생 전체가 온다는 것, 그러니 그 복잡하고도 묵직한 삶들을 경제 요인 두어개로 환원시켜 셈하려는 계획은 어김없이 실패하리란 것. 그러나 파독 간호사들의 군화가 뿜고 있는 메시지는 세계적 자본주의 하 노동이주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경제학적 환원주의를 비판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이데올로기 효과로도 다 소진되지 않는, 알알이 빛나는 개인의 서사, 욕망, 목소리, 몸.. 그 진동과 무게에 대하여. 경계를 오갔던 '특수'.. 더보기 소년이 온다, 수상소식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이다. 수상 내력이 중요한 것은 아니겠으나, 널리 읽혀야 할 글이 널리 읽히게 되는 일이라면야. 게다가 아끼는 작품을 만나면 주변에 영업하기 바쁜 나로서는, 소감을 공유할 사람이 늘어날 것이 더 없이 기쁘다. 문장 부호가 드문 글이다. 따옴표나 느낌표가 없고 의문문이어도 물음표로 끝맺지 않는 문장이 많았다. 여러 차례 속으로 곱씹고 되뇌다보니 네 것인지 내 것인지 알 수 없어진 말들 같아서, 나는 마음에 들었다. 향해서 말하면서 동시에 스스로에게 묻는 것 같아서 그것이 좋았다. 쓴 이가 그토록 눌러 적은 것이라 읽는 나에게 이렇게나 묵직한가, 읽힌다기보다는 새겨지는 것 같은가, 했다. 그렇지만 이 글 전체에 대해서 무어라 말을 얹는 것은 .. 더보기 내 사랑(Maudie) 영화를 본 직후의 감상은 매우 혼란스럽다는 것이었다. 첫째로 에단호크가 주인공이거나 적어도 둘의 비중이 비슷할 줄 알았는데 샐리호킨스가 주인공이었기 때문이고, 둘째로 극중에서 모드가 삶을 일궈나가는 방식을 바라보는 시선은 분명 인상적인 데가 있음에도, 때리고 막말하고 부려먹는 남편이 그와중에 간간히 잘해줬다거나 아내가 죽기전에 후회했다는 이유로 그 모든걸 로맨스로 덮는건 지나치게 진부하고 전형적인 남성서사라서 한 영화 속 상반된 젠더감수성에 어리둥절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원제목인 Maudie가 주인공 모드 루이스(Mode Lewis)의 애칭인 모디였다는 것을 알고나서 어느정도 편안해졌다(첨에는 Mau die가 내가 모르는 어느 외국어로 my love나 my dear쯤 되는 것인 줄 알았고, 그래서 직.. 더보기 한강, 유월 유월한강 그러나 희망은 병균 같았다 유채꽃 만발하던 뒤안길에는 빗발이 쓰러뜨린 풀잎, 풀잎들 몸 못 일으키고 얼얼한 것은 가슴만이 아니었다 발바닥만이 아니었다 밤새 앓아 정든 위장도 아니었다 무엇이 나를 걷게 했는가, 무엇이 내 발에 신을 신기고 등을 떠밀고 맥없이 엎어진 나를 일으켜 세웠는가 깨무는 혀끝을 감싸주었는가 비틀거리는 것은 햇빛이 아니었다, 아름다워라 산천, 빛나는 물살도 아니었다 무엇이 내 속에 앓고 있는가, 무엇이 끝끝내 떠나지 않는가 내 몸은 숙주이니, 병들 대로 병들면 떠나려는가 발을 멈추면 휘청거려도 내 발 대지에 묶어줄 너, 홀씨 흔들리는 꽃들 있었다 거기 피어 있었다 살아라, 살아서 살아 있음을 말하라 나는 귀를 막았지만 귀로 들리는 음성이 아니었다 귀로 막을 수 있는 노래가 아.. 더보기 이상일, 분노 분노라는 감정의 재생산 기제에 대한 지극히 사회적인 접근.이 영화는 통상적으로 죄책감, 우울, 자책 등으로 불릴 감정까지를 분노로 포괄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사용하였는데, 아버지에게 "아이코라서?"라고 되묻는 아이코의 얼굴은 그러한 감정들이 갈곳 잃은 분노의 여러 이름들임을 증명하는 듯했다.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버지조차-어쩌면 누구보다 사랑하기 때문에, 왜냐면 불신하여 모든 가능한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싶은 것이 부모 마음일 수 있으니- '그런'일을 겪은 딸이 평범하게 행복해지리라고 믿지 못한다는 것. 사실은 자기자신도 그것을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 어떠한 표정도 띄우지 못한 텅 빈 얼굴과 보이지 않으나 느껴지는 그 이면의 넘실거림. 등장인물들 중 누구도 소위 '정상가족'의 테두리 안에 있지 않으며.. 더보기 메기스 플랜 보면서 홍상수감독의 북촌방향이 자주 떠올랐다. 존 역의 에단호크가 쓰레빠로 뺨 때리고싶은 먹물찌질남을 소름돋게 잘 소화해냈기 때문. 먹물찌질남과 엮인 두 여자가 까칠예민한 먹물여성과 헌신적이지만 (남주인공이)존경할만하지는 않은 여성이라는 것도 기존 영화들에서 자주 반복되었던 패턴이다. 그렇지만 북촌방향에서 여성들이 소재로 배치된 것에 비해, 매기스플랜은 여성인 매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을 뿐 아니라 존을 둘러싼 두 여자-매기와 조넷의 관계를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남주인공의 연애담이 곧 그의 인생행로의 비유로 쓰이는 영화들에서, 남주인공과 관계맺는 여성들은 각각 세계의 한 영역을 상징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한존재들이며 때로는 숭상되기도 하지만, 그들은 고정된 기표이자 장소처럼 재현된다. 북촌방향의 성준(유준상.. 더보기 이전 1 2 3 4 5 6 7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