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내면 썸네일형 리스트형 건강을 위해서라는 변명 비교적 외모에 관한 스트레스가 적은 환경에서 지내왔다고 생각한다. 통통한 것이 예쁘다고 여기는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자랐고, 대학에 입학하자 운이 좋게도 내가 소속된 학과/반은 페미니즘을 포함한 인권감수성을 높이고자 내규를 만들고 교양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누군가 직접적으로 내 외모를 비하하거나 조롱거리, 성적 농담거리로 삼는 일은 적었다. 나 또한 모든 욕망을 대입 이후로 유예하길 요구받는 여느 고등학생들과 같이, 수능이 끝나고선 다이어트와 화장, 쇼핑에 여념이 없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에도 엄마 아빠는 외모에 지나치게 신경쓰는 것을 나무랐다. 이미 충분히 예쁘다, 그리고 예쁘지 않으면 뭐 어떠니.그래서 내가 정말로 외모에 아무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었냐 하면, .. 더보기 여전히 모르겠어요, 시와 언젠가 나와 조용히 약속하길 어른이라면 혼자서 감당할 것 고민의 시간은 끝낸 후에 밝힐 것 어지러운 생각은 드러내지 말 것 그러나 가려야 한다면 거짓은 아닐까 너무 어려워 마음속 일어나는 바람 잠잠해지지 않고 모두 흔들어 오해로 가득한 나날이여 오늘의 나를 거짓이라면 어느 곳에 온전한 내가 있을까 그러나 가려야 한다면 거짓은 아닐까 너무 어려워 ᄆ.. 더보기 요조, 보는 사람 불쌍한 것을 알아본다고 해서 착한 사람은 아냐 나는 그냥 보는 사람이에요 나는 그냥 보기만해요 나는 그냥 보는 사람이에요 나는 그냥 보기만해요 강가에서 보기만 할 거에요 한 시간이면 돌아올 거에요 _ 내가 행하는 사람이 못된다는 것은 옛저녁에 알았다. 실천으로, 몸으로, 밀고나가서 기어코, 키워내고 일궈내고 만들어내는, 그런 사람들에게서 으레 뿜어져나오는 강렬하지만 안정적인 에너지가, 나에게 없음을. 깨닫는 데에 많은 통찰력이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다. 의욕을 못 이긴 몸이 몇 차례 아픈 치레를 하고는 그저 알게 되었다. 아 그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하고. 움직임의 한복판에서 치열하게 변화를 만들어내는 역할은 다른 누군가에게 무책임하게 양도해버리고도, 놓지 못한 것은 기록자로서의 일이었음을 깨닫는 데엔.. 더보기 한강, 유월 유월한강 그러나 희망은 병균 같았다 유채꽃 만발하던 뒤안길에는 빗발이 쓰러뜨린 풀잎, 풀잎들 몸 못 일으키고 얼얼한 것은 가슴만이 아니었다 발바닥만이 아니었다 밤새 앓아 정든 위장도 아니었다 무엇이 나를 걷게 했는가, 무엇이 내 발에 신을 신기고 등을 떠밀고 맥없이 엎어진 나를 일으켜 세웠는가 깨무는 혀끝을 감싸주었는가 비틀거리는 것은 햇빛이 아니었다, 아름다워라 산천, 빛나는 물살도 아니었다 무엇이 내 속에 앓고 있는가, 무엇이 끝끝내 떠나지 않는가 내 몸은 숙주이니, 병들 대로 병들면 떠나려는가 발을 멈추면 휘청거려도 내 발 대지에 묶어줄 너, 홀씨 흔들리는 꽃들 있었다 거기 피어 있었다 살아라, 살아서 살아 있음을 말하라 나는 귀를 막았지만 귀로 들리는 음성이 아니었다 귀로 막을 수 있는 노래가 아.. 더보기 한강, 서시 서시한강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도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사이.. 더보기 피해자의 윤리적 고통 (그림: 조르주 부르주아의 작품) 1.죄없는 자들의 고통에 대해 생각한다. 납득할 이유도 복선도 없이 밀고들어와 압도해버리는 아픔이 있다. 찢기고 깨지고 너덜너덜 허는 듯한 생생한 감각, 명확한 이유를 찾지 못하겠으나 '불운' '우연' 따위의 단어로 덮히지 않는 혼란은 언어적 묘사가능범위를 초월해있는 무언가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의 부재, 그 결핍감이 의미를 찾고자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매일의 삶을 지탱해주는, 외부로부터 주어진 얄팍한 의미가 이들에게는 산산히 부서져있으므로. 의미 없이 생존할 수 없다면 스스로 찾는 수밖에 없으므로.그러나 이들의 시도는 거의 항상 실패한다. 한 인간으로서 짊어지기에 버거운 임무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무너지고 부서지고 주저앉는다. 의지가 될것같은, 그러나 실은 그.. 더보기 未忘 혹은 備忘 14 未忘 혹은 備忘 14 나를 빨아들이는 길.나를 뱉아내는 길.빠져나올 수 없는 길.들어갈 수 없는 길. 영원토록 길이 나를 가둔다.영원토록 길이 나를 해방시킨다. 떠나야 할 시각이 길게 드리워진다.그가 끝나도 길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그 길 모퉁이에 이따금씩추억의 나무 한 그루 서 있을 것이다. 우연의 형식들로 다가오는 모든 필연을 견디면서이미 추억이 다 된 나무 한 그루백발의 나무 한 그루 서 있을 것이다. -최승자, 내 무덤, 푸르고 中 더보기 나쁜 기억을 잊는 법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中 더보기 넋 넋 (...) 그러나 이 도시의 사람들이 그 벽 앞에 초를 밝히고 꽃을 바치는 것이 넋들을 위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안다. 살육당했던 것은 수치가 아니라고 믿는 것이다. 가능한 오래 애도를 연장하려 하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두고 온 고국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생각했고, 죽은 자들이 온전히 받지 못한 애도에 대해 생각했다. 그 넋들이 이곳에서처럼 거리 한복판에서 기려질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고, 자신의 고국이 단 한 번도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보다 사소하게, 그녀는 자신의 재건에 빠진 과정이 무엇이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물론 그녀의 몸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녀의 넋은 아직 육체에 깃들어 있다. 폭격에 완전히 부서지지 않아 새 건물 앞에 옮겨 세운 벽돌 벽의 ..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