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망/공동체

[월간 틀 기고] ‘낙태’가 ‘여성’ 이슈? – 지금도 아니고 앞으로도 아니다: 낙태죄 담론 개괄과 사회정의로서의 낙태 재구성

‘낙태’가 ‘여성’ 이슈? – 지금도 아니고 앞으로도 아니다

: 낙태죄 담론 개괄과 사회정의로서의 낙태 재구성


** 이 글은 페미당당이 주최하는 제3회 낙태죄폐지세미나(2017년 2월)에서 발제한 내용을 연설문 형태로 담아낸 것이며, <월간 틀> 2017년 3월호에 게재했습니다.

** <월간 틀>에서 읽기 (click)




0. 들어가며 ―아직 남은 질문들

이전에 진행된 제1회, 제2회 낙태죄폐지세미나를 통해 많은 것들을 다루었지만, 저는 여전히 아직 남은 질문들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우선, 카톨릭 전통이 오래된 유럽이 아닌 곳에서 낙태 문제를 다뤄온 방식이 궁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낙태와 관련하여, 유럽의 국가들과 한국의 여성들이 처해있는 상황은 어떻게 다른가? 폴란드, 아일랜드보다는 일본, 중국, 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 여성들과의 연대가 더 필요한 건 아닌가? 또, 담론의 역사적 형성, 전개 과정에 대한 궁금증이었지요. 법조문이나 국가정책만이 아니라, 낙태를 둘러싼 담론은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도, 낙태죄를 폐지하기 위한 운동의 방향과 방략은 어떠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었습니다. 누구를 향해, 무엇을 타격하며 행동에 나서야 할지, ‘덮어놓고 낳은 가난한 집 아이들이 범죄자 된다’는 식의 또 다른 억압과 폭력으로 변모하지 않으면서도, 낙태 금지로 인한 여성의 피해와 억압을 소리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었습니다. 세 번째 세미나에서는 1부에서는 제가 낙태를 둘러싼 담론에 대해 다루고 2부에서는 이경빈이 인터뷰에 담긴 여성들의 목소리를 제시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낙태가 다뤄졌던 방식, 시도되었던 대항담론들에 이어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의 목소리까지를 들었고, 3부에서는 질의 및 토의 시간을 가져서 활발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글은 1부 발표의 내용을 글로 옮긴 것입니다. 세미나를 통해서도, 이 글을 통해서도 이 땅의 현실에 기반하여 언어를 생성해가는 역동적인 작업이 지금 이곳에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1. 문제제기와 발표계획 ―담론, 역사, 여성의 삶

사실 낙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태아 생명권(공적 이익) 대 산모 자기결정권(사적 이익)”이라는 대결 구도일 것입니다. 이는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낙태를 둘러싼 담론 구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헌법재판소 결정문 등, 법적인 논의에서는 물론이고 운동에서도 이 구도가 재현되곤 했습니다. ‘프로라이프(pro-life)’와 ‘프로초이스(pro-choice)’ 진영이 다툼을 벌이는 모양새로요.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2009년에 결성되어 강간으로 인한 임신일지라도 낙태해서는 안 된다며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최근의 검은 시위에서 여성들은 ‘내 자궁 내 결정’이라는 표어를 통해 스스로의 몸에 대한 선택권을 주장했으니, 한국에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도 할 수 있으려나요.

하지만 이 구도를 유지하면서 낙태를 허용하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사실 생명권은 그 누구도 쉽사리 반박할 수 없는 최상의 가치잖아요. 전자가 항상 더 중한 이익이 될 상황에서는, 이로 인해 여성이 겪는 차별과 고통이 아무리 커도 낙태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하든, ‘답정너’라고 하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튼 태아가 생명이라고 보기도 힘든 아주 초기라든지 산모가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건강상태라든지 하는 굉장히 제한적인 상황. 그때만 허락하는 정도가 가능할 뿐입니다. 2009년에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출범했을 때 반대 측에서 외쳤던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 허용”도, 최근 검은 시위에서 여성들이 부르짖었던 “낙태죄 폐지”도 관철되기 힘들다는 겁니다.

게다가 이 널린 퍼진 담론 구도는, 당연한 귀결일테지만, 사람들이 여성들의 낙태행위를 해석하는 프레임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태아의 생명존중을 위해 낙태를 금해야 하는 것이라면 한국 여성들의 행위는 배아 및 태아의 생명 무시에서 비롯된 행위로 그려지게 되는 것이죠. 실제로 이런 해석틀을 사용하는 모습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흔히 관찰됩니다. 1990년도 저서에서 황필호는 “낙태에 나타난 생명 경시 풍조, 성윤리의 타락, 물질 만능주의, 이런 사상들을 은연중에 부추기는 구조적 모순 등은 세계 공통의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적었습니다. 형법학자 배종대(2005)는 “낙태문제가 곧 우리의 생명권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태어나지 않은 사람에 대한 보호 없이 태어난 사람이 제대로 보호될 수 없다.”고도 했죠. 온라인 여성혐오 원년이라 불리는 2015년, 여성시대에서 낙태 정보가 공유되었다는 이유로 ‘낙태충’이라는 비난이 쇄도하고 ‘너네가 죽인 아이가 베토벤이었을지 모른다’며 생명에의 무책임을 나무랐던 것,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그러나 낙태를 직면한 경험이 있는, 혹은 항상 직면할 가능성과 마주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의 입장에서, 이것이 정당한 해석틀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태아 생명권 대 산모 선택권”이라는 구도를 넘어서서, 보다 적합한 논의 지평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낙태를 둘러싼 담론이 형성되어온 과정을 추적하면서 저 흔히 회자되는 낙태 논의 구도 뒤에 또 다른 것들이 얽혀있지는 않은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럼 던져야 할 질문은 이런 것들일 겁니다.

낙태의 금지가 침해하는 것이 단지 여성의 ‘선택권’인가?
낙태를 둘러싼 담론들에서, 여성은 어디에 있었는가?
낙태죄 폐지 운동의 의미와 목표는 무엇인가?

저는 이 글을 통해 낙태 담론을 개괄하고, 재생산권의 여성주의적 재구성이라는 과제를 제시함과 더불어, 낙태를 ‘정의Justice’ 문제로 자리매김시키고자 합니다. 발표 순서는 이렇습니다. 우선 공/사 이분법의 허구성을 비판할 것이고, 그 다음에 낙태의 금지가 침해하는 것이 단지 여성의 ‘선택권’에 국한되지 않음을 살피기 위해 낙태금지에 대한 서구의 대항담론들을 소개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한국사회에서의 낙태 담론을 역사적으로 살필 것입니다. 이를 통해, 결론에서는 앞서 제기한 세 가지 질문에 답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 공/사 이분법의 허구성: 생명의 상호의존적·관계적 속성, 여성 섹슈얼리티의 통합적 성격

“태아 생명권 대 산모 자기결정권” 구도는 일단, 태아의 생명과 산모의 이익을 분리, 단절된 것으로(심지어는 대결하고 있는 것으로!) 상정한 이분법적 프레임입니다. 그러나 태아가 없는 임산부, 모체 없이 따로 떨어져 있는 태아 같은 것이 가능키나 한가요? 원칙적으로는 아예 저런 언어가 성립조차 안 하죠? 사실은 한 몸에 있는 두 개의 생명이고, 굉장히 상호의존적이고 밀접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잖아요. 태어나고 나서도 마찬가지에요. 지속적으로 적절한 보살핌을 받아야만 비로소 독립된 개체로서 존재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 이분법적 구도는 생명의 상호의존적·관계적 속성을 포착하지 못한 것이었기에, 현실과의 괴리가 나타납니다. 실제로는 많은 경우, 태아의 생명권이 존중받을 수 있느냐와 산모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느냐는 외부의 제3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아, 함께 가는 사안입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이토록 많은 것을 각오하고 감내해야 하는 것은 아닌 사회에서라면, 산모는 낳거나 낳지 않을 자유를 누릴 수 있고 그러면 통계가 낙태율 감소를 보고하고 있듯, 그토록 강조하는 태아 생명권도 더 보장되는 셈입니다. 반면, 낳아 기를 상황이 아닌데 정보와 자원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으면, 산모는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고 산모의 건강도 상하면서 태아의 생명권도 더 크게 침해되는 중후반기 낙태를 감행하게 됩니다.

 

KakaoTalk_Photo_2017-03-14-20-52-31-1.jpeg

 

또한, “태아 생명권 대 산모 자기결정권” 구도는 여성 섹슈얼리티의 통합적 성격을 무시한 것입니다. 이 구도에서 전자는 공적 이익으로 여겨지고 후자는 사적 이익으로 여겨집니다. 다른 모든 것과 달리 태아 생명권만 공적 이익으로 상정함으로써, 성관계는 아주 사적인 문제이고, 임신 출산도 사적인 영역에 남겨두고, 양육은 요구가 그리 많은데도 만족스러울 만큼 공공화시키지 못했으면서, 낙태만을 공적 사안으로 삼고 국가가 맘껏 개입할 수 있게끔 한 셈입니다. 그러나 여성의 삶에서 섹스와 임신, 출산, 양육은 그렇게 무 자르듯이 자를 수 없는 연속선 상에 있습니다. 왜냐면… 대부분의 여성의 몸은 섹스를 하면 임신을 할 가능성이 있는 몸이니까요. (이 당연한 걸 열심히 말해주기 전까진 어떻게 모를 수 있는 걸까요?)

 

그렇기 때문에 낙태 금지는 임신을 경험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여성에게 비대칭적으로 책임을 추궁하는 성차별적 효과를 냅니다. 영화 <베라 드레이크>에는 이 점이 잘 드러나 있죠. 1950년대 영국사회에서 낙태문제를 다룬 영화인데, 법 없이도 살 것 같은 착한 이웃인 베라가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의 낙태시술을 돕다가 처벌받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들 시드는 파티를 즐기는 장면에서 여성과 함께 등장하지만, 베라에게 낙태시술을 받는 장면에서는 여성만이 등장하고, 베라가 경찰조사를 받게 되자 시드는 그제서야 나타나 어머니인 베라를 도덕적으로 단죄하죠.(Read more: http://feministicimagination.tistory.com/30) 한국의 모자보건법은 ‘배우자 동의’ 조항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한 번 더 뒤틀린 비대칭성을 가지게 됩니다. 남성 파트너는 낙태에 동의해줄 권리는 갖는데 처벌의 위험은 온전히 여성만 집니다. 게다가 한국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중하다면서 얼마 전 간통죄를 폐지한 국가 아니었던가요? 세상에 완벽한 피임법이란 없습니다. 그런데도 낙태를 금지하면, 여성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누리는 게 가능할까요? 이 점에서 낙태 금지는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탁월한 훈육기제이기도 합니다. 몸 함부로 굴리지 말라는 경고에 이만한 게 또 있겠어요?

이 모든 걸 덮고 가리면서 줄곧 이야기되는 생명존중담론이라는 것도 다시 한 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생명’이라는 기표를 사용하니 겉보기에는 굉장히 중립적으로 모두를 포괄하는 담론일 것 같지만, 정말 그런가요? “흥미로운 것은, 여성이야말로 임신, 출산, 양육과 같이 생명을 키우는 역할을 배타적으로 혹은 주로 담당하는 사람들인데, ‘생명존중 담론’ 어디에도 그들은 발화자도 행위자도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어린이의 생명을 충분히 존중하고 있는지에 관하여 끊임없이 의심받고 훈육되는 자들이다. (양현아, 2005 : 9)”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태아와 산모를 이분법적으로 분리시켜 생각하는 것, 전자를 공적, 후자를 사적인 것이라 명명하는 것은 부적합할 뿐 아니라 여성의 경험이 간과되고 여성의 목소리가 담기지 않은 방식입니다. 또한, 그러한 허구적 이분법 구도 위에서 옹호하고자 했던 ‘생명존중’이라는 것에도 여성의 목소리는 누락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3. 낙태의 금지는 무엇을 침해하는가: 프라이버시권, 평등권, 반-종속, 동등권, 재생산권

그럼 이제 그 이분법 구도의 반대 편에 대해서도 살펴볼 차례겠네요. 세미나 신청자 받으면서 질문란도 두었었는데, 어떤 분이 낙태를 둘러싼 담론에서 왜 산모의 ‘자기결정권’만 이슈가 되는 것인지 답답해하면서 임신 출산 이후의 산모의 인생이라든지 하는 것들까지 포괄해서 좀 더 무게감 있는 단어로 바꿔야 하지 않느냐고 하셨더라고요. 이런 답답함에 공감합니다. 낙태의 금지로 인해 침해받는 것이 산모의 ‘신체/건강에 대한 자기결정권(선택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죠. 그러니 일단, 낙태의 금지가 무엇을 침해하는지에 대한 서구의 담론들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이 부분은 양현아(2005) 논문의 본문Ⅱ 부분을 참조한 것임을 밝힙니다.

1) 프라이버시권으로서의 낙태권

미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에서 표명한 것으로 알려진 프라이버시권으로서의 낙태권은, 임신의 지속과 종결은 여성의 ‘사생활의 자유’에 속하는 사안이며, 이 때의 자유란 ‘원치 않는 어머니가 되지 않을 자유’ 혹은 ‘임신과 출산의 과정상 특별한 희생을 강요당하지 않을 자유’를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이 판결에서는 태아의 생명권이 태아의 생육에 따라 점차 커지면서, 산모의 프라이버시권과 경합하는 정도가 달라진다고 보았고, 따라서 임신 3분의 1 선까지는 산모의 판단에 의거해 자유롭게 임신중단을 결정하고, 3분의 2까지는 의사와의 상의 하에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이는 분명 진일보한 판결이었으나, 앞서 “태아 생명권 대 산모 자기결정권” 구도를 비판한 이후이니, 이 주장의 한계를 알아채기는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2) 평등권으로서의 낙태권

로(Law, 1984), 긴즈버그(Ginsberg, 1995), 시겔(Siegel, 1995) 등은 낙태금지가 여성의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점을 언명했습니다. 시겔은 법원의 프라이버시권과 잠재적 생명 논의가 재생산의 사회적 측면이 아니라 사적이고 생리적인 측면에만 초점을 맞췄다고 비판하고, 재생산을 사회구성주의에 입각하여 바라봅니다. 그러면 낙태금지법은 임신과 모성을 강요함으로써 여성의 모성, 신분, 위엄에 해악을 미치는 것입니다. 비단 여성 몸에 대한 규제인 것이 아니라 여성 역할에 대한 규제라는 것이죠. 이와 같이 평등권 논의가 들어오면서, 낙태 문제에 있어서 여성 선택 존중이라는 소극적 권리보호에 그치지 않고 차별에 대한 시정을 보다 적극적으로 국가에게 요청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 개인의 문제를 넘어 여성 경제 지위의 열등화, 모성역할의 강요라는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낙태 문제를 다룰 수도 있어졌고요.

3) 반 종속(Anti-subordination)으로서의 낙태권

낙태 금지의 ‘젠더’ 효과에 초점을 둔 논의는 평등권을 비판·수정하며 발전합니다. 캐서린 맥키논(Catharine MacKinnon)의 종속이론은, 남성과 ‘유사한 위치에 처해있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차별받는지를 보려했던 평등론의 입장과 달리, ‘서로 다른 위치에 처해 있는’ 여성과 남성의 상황에 주목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여성 섹슈얼리티의 통합성으로 인해 성관계가 가지는 의미는 남녀에게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낙태금지는 이 차이가 여성이 하층(underclass) 혹은 종속된 상태에 놓이게끔 되는 것으로 이어지게 만든다는 점에서 성차별적입니다. 이러한 논리는 남녀간의 ‘형평성’ 문제를 넘어서, 여성의 입장을 중심에 둔 낙태권 구축을 가능케 합니다.

4) 동등권(Equivalent)으로서의 낙태권

두실라 코넬(Drucila Cornel)은 동등권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같음에 기인한 평등권과 달리 성적 차이에 대한 인정이나 옹호에 기반한 평등한 가치를 주장합니다. 남성은 임신과 낙태를 경험하지 않는데도 무작정 평등의 기초로서 남성과의 같음·유사성을 요청하면, 여성은 결코 자신답게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중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인간이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적 존재라는 점을 평등 원칙 속에 녹여내야 한다는 점입니다.

코넬은 또한, 낙태규제가 여성의 자기 통합성을 침해한다고 말합니다. 라깡에 따르면, 한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를 비춰보고, 상상하고, 기대하는 ‘거울 단계’를 거치면서 사람됨(personhood)을 형성한다고 해요. 이것은 최소한의 개별화된 존재됨(the individuated being)을 조건으로 합니다. 이 최소 조건을 만족 못하면 인간은 자신이 누구이며 누가 되고자 하는지에 대한 상상 공간, 코넬이 말하는 ‘상상적 영토’에 거주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그러니 낙태금지 법이 훼손하는 것이 단지 여성의 ‘선택권’입니까? 여성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요? 사실 이건 여성이 “자기임(selfhood)을 성취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신체 통합성’에 대한 근본적 개입이며, 여성이 최소한의 개별화된 존재임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자궁을 남이 마음껏 간섭하고 침범할 수 있는 공간으로 둔 채로 여성이 자신의 삶에 대한 자유와 책임을 온전히 누리는 개인으로 성장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일 수밖에요.
조금 있다가 뒤에서 인구정책적 관점에서 여성의 몸을 수도꼭지처럼 조이거나 풀어온 역사와 함께 보면, 함의는 분명합니다. 낙태죄는 여성 또한 하나의 존중받을 만한 인격체고,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라는 점에 대한 불인정입니다. 즉, 침해받는 것은 여성의 인간으로서의 ‘존엄.’ 그것입니다.

5) 재생산권으로서의 낙태권

재생산권리란 ‘커플들과 개인들의, 그들의 자녀의 수와 터울을 자유롭고 책임 있게 결정할 수 있는 기본권’으로서 인간의 재생산 활동에 관련된 포괄적 권리 체계를 의미합니다. 1994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개최된 ICPD(International Conference on Population and Development)가 채택한 행동 프로그램에 잘 나타나 있다고 말해지죠. 이는 여성 섹슈얼리티의 통합성을 고려한 것일 뿐 아니라, 제1세계 중심의 프라이버시권으로서의 낙태권을 넘어서서 제3세계적 인구통제와 가족계획, 발전론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전을 담고 있다고 평가받습니다.

그런데 재생산권 담론이 담았다고 평가받는다는 “제3세계적 인구통제, 가족계획, 발전론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전”이란 게 무엇일까요?

4. 포스트 콜로니얼리즘과 이 땅의 역사

앞서 살펴본 프라이버시권, 평등권, 반-종속, 동등권은 모두 서구의 이론들입니다. 저는 이것들이 가톨릭의 전통이 뿌리 깊은 곳에서, 낙태죄의 성차별적 효과를 폭로함으로써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했던 시도들이라고 생각해요. 우리와는 다른 토양에서 투쟁하며 만들어낸 대항 담론들의 역사인 것이죠. 그러니 1960-70년대 산아제한정책이라든지 여아선별낙태의 시기, 낙태가 법적으로는 아주 엄격한 허용사유만을 두며 전면금지되어 있었으나 병원에서 시술받기가 비교적 쉬운 상황 등, 한국의 맥락을 모두 담아낼 수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한 사상적 조류가 포스트 콜로니얼리즘(post-colonialism)입니다. ‘지금까지의 세계사는 서구유럽의 지방사에 불과했다’는 언명으로 잘 표현되는 것과 같이, 전세계의 2/3에 이르는 식민지 경험 국가들의 입장에서 역사와 이론을 다시 쓰고자 하는 겁니다. 서구의 제도와 담론이 제국주의 침탈과 식민지 경험을 통해 이전되면서 어떤 방식으로 왜곡되어 자리잡았으며 이전의 문명들과 관계맺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해방 이후에도 잔존하여 자리 잡고 있는지 규명하고자 합니다. 포스트 콜로니얼리즘은 역사를 굉장히 중요하게 보는데, 그게 어떤 것의 기원이라든지 과거의 전통이 곧장 현재의 문제들을 설명할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낙태죄가 도입된 기원이 지금의 현실을 곧바로 설명해줄 수 있다는 건 아니라는 거죠.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도, 특히나 과거청산의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한 국가들에서, 그 효과는 남아있다는 것(“지연”), 그리고 그것이 그 이후의 역사를 통해 축적된 새로운 것들과 결합해서 융화된 상태로(“착종”) 현재에 이른 것이라는 뜻입니다.

역사를 살피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방식은 소위 여성 이슈를 ‘젠더’라는 프레임 하나로만 보는 것과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의 흐름은 엄청나게 다양한 요소들이 얽히고 설키면서 진행되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게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이나 ‘통합적 관점’의 필요성을 말하는 논의와도 연결된다고 봅니다. 발제 서두에서 말씀드렸듯이 조금 이따가 한국의 역사 속에서 낙태 담론들을 살펴볼 것인데, 이때 젠더뿐 아니라 계급, 민족 등의 요소들까지 포괄적으로 언급할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낙태 문제에서, 사실 세상 모든 이슈들이 다 그렇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통합적인 관점을 가지지 않는 것은 ‘항목의 결여’가 아니라 ‘전체성의 결여’라고 할 만큼 치명적인 오류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우리는 이런 언설을 듣죠. 다른 억압들까지 고려할 여유가 없다, 여성들이 입는 피해가 너무 심각하니까 일단 페미니스트인 나는 젠더만 고려하겠다, 뭐 이런 거요. 그런데 적어도 낙태 이슈에서만큼은 이런 태도로는 문제해결이 요원할 거에요. 젠더와 다른 억압의 축들이 백과사전식 책의 서로 다른 챕터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뒤엉켜 있는 실타래처럼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포스트 콜로니얼리즘과 역사적, 통합적 관점을 견지한다면, 재생산권 담론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요? 저는 더욱 ‘특수’하게, 우리가 발 디딘 한국사회, 이 땅의 역사는 어떠했고 이 땅의 선배들은 어떤 언어를 만들어내었는가를 질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IPCD 행동 프로그램에서 제시했다는 재생산권의 이념은 제3세계의 맥락도 담을 수 있는 형식을 마련해준 것이고, 그것의 구체적 내용을 채워넣는 것은 각국의, 아니면 더 세분화된 각 지역의 민중들의 역사를 통한 것이어야 할 겁니다.

5. 식민지기의 법, 냉전과 개발독재 시기의 정책,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틈바구니 속에서

조선시대에 낙태행위는 존재했으나 문제시되지 않던 상황에서, 1912년 「조선형사법」에 의해 의용된 일본형법에 의해 자녀를 낙태한 경우에 대한 처벌 규정이 처음으로 생깁니다. 프랑스, 독일 형법에 영향을 받은 일본 형법을 경유하는 형태로 낙태가 최초로 형사범죄가 된 셈입니다. 이 규정은 미 군정기를 거쳐 우리 형법이 시행되기까지 효력을 지속합니다. 그럼 일본은 어떤 이유로 낙태를 처벌하는 규정을 만들었는지, 그걸 둘러싼 담론은 어땠고, 그게 조선에서의 담론 형성에는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봐야겠죠.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겪으며 점차 국가가 출생증강에 관심을 표하다가, 청일전쟁을 분기점으로 하여 정부가 국민의 성과 생식에 직접적인 통제의 손길을 뻗었다고 해요. “국가에 중요한 것은 전쟁에 쓸 병사의 숫자이며, 그 수를 줄이는 일은 허용될 수 없는 범죄”라는 군국주의 출생증강 사상을 기반으로, 1907년 개정 형법부터 낙태죄를 한층 엄격히 규정한 것이죠. 바로 이 규정이 「조선형사법」에 의해 의용되고 한국에 지금까지 큰 변화없이 남아있는 낙태죄 법조문입니다. 그러니 현재 한국 형법에 있는 낙태죄 법조문은 레알 참트루 식민지기의 법인 셈입니다! 일본은 낙태단속 강화와 더불어, 산파의 근대화, 순결주의 이데올로기의 전국 확산에 힘썼습니다. 출산을 공동체 질서하에서 국가의 감시하로 옮기고, ‘문명’의 이름 아래 여성에 대한 성착취와 억압을 강화한 것입니다. 이 논리는 식민지 조선에도 거의 유사하게 적용되어, 인구증가가 곧 공익, 부녀건강, 도덕이라는 생각으로 낙태죄 규정을 지속시킵니다.

그러다가 1920년대 일본에선 산아조절운동이 시작됩니다. 맬서스 알지요, 식량은 산술급수로 증가하는데 인구는 기하급수로 증가한다고 한 사람이요. 자본주의 모순으로 인한 현상들을 단순히 인구과잉 문제, 심지어 애를 많이 낳는 민중들의 탓으로 돌린 것이었으나, 이 시기에는 우생학과 결합하여 위세를 떨쳤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산아조절운동은 ‘인구·식량 문제’의 해결책 혹은 ‘건전’한 국민육성을 위한 우생정책의 일환으로, 여론의 지지와 일부 당국자들의 주목을 받으며 시작됩니다.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에 고통받고 있던 민중들의 필요와 공명하면서 1930년 무렵을 절정으로 활발하게 진행되었죠. 그러나 얼마 안 되어 1931년 만주사변 발발 이후, 「유해피임기구단속법」(1930년)을 제정하는 등 낙태범죄에 편승한 사회주의 운동의 탄압이 이루어지며 수그러듭니다.

1920-30년대에는 식민지 조선에도 산아제한론이 유입되긴 하였으나, 법률 개정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산아제한은 ‘담론’과 ‘실제’로서만 확산되었을 뿐입니다. 1920년대 일본에서의 산아조절운동은 애초에 제창될 당시와 달리 운동 과정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담겨, 낳거나 낳지 않을 자유나 여성의 결정권 등이 발화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불법상태로 인해 본격적인 결집을 이룰 수 없었던 탓인지, 낙태를 경험하는 당사자인 여성들의 입장이 반영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신문에 실린 내용을 보면, 산아제한론의 명분 중 경제적 빈곤 완화를 위한 산아제한론, 자녀교육을 위한 산아제한론은 가장 보편적으로 옹호되는 것이고, 우생학적 산아제한론, 모성보호를 위한 산아제한론이 이에 부가적으로 동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성의 능력발휘를 위한 산아제한론은 사실상 여성들의 성적 해방, 자유를 위한 것이라 여겨 ‘향락적인 것’이라며 배제되었어요. 낙태금지법의 무용성, 빈곤 계층의 낙태는 불가피하다는 동정론, 일본과 러시아의 낙태허용 분위기에 힘입어 낙태 합법화 논의도 있었던 바 있으나, 1930년대 이후에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금세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이렇듯 대체로 목소리가 억압되어 있었던 상황에서, 1945년 해방을 맞습니다. 그리고 낙태죄 존립과 관련하여 1947년 법전편찬위원회에서 형법초안 작성할 때 논쟁이 벌어졌어요. 정부초안 입법자들의 낙태죄 구상은 6.25 전란 중이었기 때문에 국력 확보라는 인구정책적 시각에 입각한 것이었고, 찬성론자 논거는 태아의 생명존중, 인간의 존엄과 가치, 성도덕유지, 간통죄 입법에 따른 균형유지 등이었습니다. 폐지론자는 열악한 사회·경제적 여건 하에서 출산을 강제하게 될 때 여성이 입게 될 여러 위험성들을 들었으나, 사회적 관심도 그다지 끌지 못한 채 존립이 결정되었습니다.

한국의 낙태 이슈가 큰 전환점을 맞는 것은 1960-70년대 소위 ‘가족계획 정책’의 시대가 도래하면서입니다. 국가의 경제성장을 위해 과잉인구라는 장애 요인을 없애야 한다는 ‘공동체의 보편 이익’ 명목으로 추진되었지만, 실제로는 미국을 위시한 전후 냉전시기 국제 인구 통제 레짐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아시아 인구 성장이 서구 세계에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공포와, 개발도상국의 빈곤 상태가 이 지역의 공산화를 야기할 수 있다는 예측 하에 적극적으로 산아제한을 위한 물적 자원들을 원조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대한가족계획협회의 매해 예산 80%가 외국 원조에 의한 것일 정도였습니다.

개발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고 있던 당시 한국정부로서는, 인구 억제를 위해 낙태 합법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전면 허용했을 때 국가가 이를 책임지고 관리할 만큼 예산 확보하기가 어렵고, 성문란 조장, 생명윤리 경시라는 규범적 비난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모자보건법」을 제정하여 제한적으로만 인공임신중절을 합법화한 후 사실상 거의 전면 허용하는 방법을 택합니다. 이 「모자보건법」조차도 1972년 유신으로 국회가 해산된 후 비상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켜요. 아무도, 종교계조차도 감히 반대의견 못 낼 때. 그러니 낙태를 형법으로 금지한 국가임에도 낙태시술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현실은, 냉전과 개발독재 시기 인구정책의 산물인 셈입니다.

더 나쁜 것은, 「모자보건법」이 1948년 제정된 일본의 「우생보호법」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모자보건법」이 몇 번의 개정을 겪으며 구체적 문구는 변화했으나 우생학적 마인드가 깃들어 있다는 점은 변함없고, 그래서 장애여성공감에서는 오랫동안 이 점을 지적해왔죠. 산부인과 의사들이 불법임에도 처벌받지 않아 방임적으로 실시되고 있던 인공임신중절 수술의 이해당사자였다는 점도 이런 뒤틀린 현실이 지속되는 데에 기여합니다. 무자비한 출산 장려책이든 출산 억제책이든,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 대한 주권을 행사하지 못한 채 남아있었습니다.

 

KakaoTalk_Photo_2017-03-14-20-52-31-2.jpeg

 

그리고 산업고도화 사회로 진입하고 저출산이 문제되는 지금, 다시금 국가는 인구정책적인 이유로 낙태죄를 엄격 적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불과 3명에 불과한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발언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하더니, 보건복지부가 비도덕적 의료행위를 엄격히 처벌하겠다면서 낙태시술한 산부인과 의사의 면허정지 기간을 늘리는 입법개정안을 제출했습니다. 이에 산부인과 의사들은 낙태파업하겠다고 나서서, 국가와 산부인과의가 여성의 재생산권을 인질로 삼아 힘겨루기를 하는 꼴입니다. 반발로 인해 한 발 물러서긴 했으나, 여전히 진행 중인 사안인데다가, 낙태죄와 모자보건법은 건재한 상황이죠. 정부가 낙태금지를 값싼 저출산대책쯤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건 가임기 여성 지도가 명백하게 증명하고 있지 않나요? 대체 언제쯤 그런 인구정책 하에서 여성들의 삶이 얼마나 뒤틀리는지를 인식할 생각일까요. 아마도 소리를 드높이고, 싸워내기 전에는 결코 바뀔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6. 결론: 한국사회 낙태 담론 속 여성의 위치, 낙태죄 해결의 방향 제언

낙태가 한국여성의 보편적인 경험으로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 낙태 담론에 여성의 주체적 목소리는 담기지 못했습니다. 낙태 범죄화와 도덕적 비난, 낙인, 성엄숙주의 등이 여성들을 침묵시켰고, 설사 이를 뚫고 여성의 목소리가 발화되었다고 하더라도 빠르게 기존 담론구도 속으로 편입당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쭉 역사를 살펴본 우리가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은, 여성이 논의의 주체가 아닐 뿐 아니라 논의의 소재, 즉 객체로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여성의 건강, 여성의 몸, 체험, 관점, 복리후생, 삶… 등은 낙태담론이 갑론을박하는 과정 속에 담겨있지 않았어요. 부국강병이라는 국가의 동원논리, 인구정책적 프레임, 추상적인 생명존중사상, 산부인과 의사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뒤얽혀 싸우는 가운데, 여성의 몸은 그러한 투쟁이 일어나는 장소로서 존재했을 따름입니다. “낙태는 ‘여성의 자궁이 전쟁터’임을 예시한다”는 양현아(2005)의 말은 한국의 낙태 담론의 역사가 여성을 철저히 누락하고 있음을 적절히 짚어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자 합니다. “낙태가 ‘여성’ 문제인가?”하는 점입니다. 이 질문에 한 편으로 답하자면, 낙태를 금지하는 법률, 인구증강 혹은 산아제한의 인구정책, 미디어나 학계의 담론 모두 여성의 관점과 체험을 누락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에서 낙태문제는 제대로 여성문제였던 적조차 없죠.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낙태가 과연 ‘여성’문제이기만 한 것인지/하면 되는 것인지 되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제 답은 아니라는 겁니다. 식민지기에 이식된 우생학과 제국주의적 논리가 낙태죄 법조문으로 버젓이 잔존하는 상황 위에, 냉전과 개발독재 시기의 논리들, 신자유주의 국제질서 하의 경쟁 논리가 겹겹이 쌓이고 융합되었어요. 이는 또한 언제나 가부장제, 순결주의 이데올로기, 성차별주의, 보수기독교 단체의 성-생식 일체화 논리 등과 맞닿곤 했습니다. 따라서 낙태이슈는 탈식민, 과거청산을 하지 못했으며 차별과 혐오가 공고한 한국사회의 뼈아픈 단면이, 저출산이 문제되는 현 시점에 ‘출산 전체주의’와 같이 여성의 존엄을 뿌리부터 부정하는 방식으로 드러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성’ 문제라기보다는 모두의 ‘정의(justice)’의 문제입니다. 낙태가 모두의 문제라는 말은 ‘이거 하면 남자들한테도 도움돼~’라는 식의 사탕발림도, 공리주의에 기반한 설득도 아닙니다. 사회구성원이라면 구체적 위치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내부’에 놓여있게 되는 ‘사회’라는 것, 이 공동의 기반을 어떤 방식으로 형성하느냐의 문제라는 의미입니다. 침묵의 기제들을 뚫고 낙태에 대해 발화하는 것, 여성주의적으로 재구성된 재생산권 프레임으로 낙태를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짓밟히고 있는 여성들을 위한 것이되, 결코 그들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가로막기 위해 자주 동원되는 방법이 이를 특수한 한 집단만이 연관된 문제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었음을 기억하세요. 검은 시위에 모여든 여성들은 ‘나라 바꾸는 계집’인 것이고, 사실 낙태 이슈는 ‘계집’들만의 일이 아닌 것입니다.

이은진

     ※ 참고문헌

김동식, 김영택, 이수연(2014), 피임과 낙태 정책에 대한 쟁점과 과제: 여성의 재생산권과 건강권을 중심으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양현아(2005), 여성 낙태권의 필요성과 그 함의, 한국여성학
양현아(2010), 낙태에 관한 다초점 정책의 요청; 생명권 대 자기결정권의 대립을 중심으로, 한국여성학
양현아(2013), 낙태죄 헌법소원과 여성의 “목소리” [1]-낙태경험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 법학논총
이선순(2006), 재생산권으로서의 낙태에 관한 법여성학적 고찰, 여성학연구
이선순(2014), 낙태논쟁 속 법담론의 탈관계성 비판, 젠더와 문화
이연우(2015), 낙태 범죄화와 여성 섹슈얼리티 통제
이영아(2013), 1920-30년대 식민지 조선의 ‘낙태’ 담론 및 실제 연구, 의사학
이지연(2012), 처벌과 배제: 낙태, 한국의 여성과 국가, 한국사회학회 사회학대회 논문집
전효숙, 서홍관(2003), 해방 이후 우리나라 낙태의 실태와 과제
한국여성민우회(2013), 있잖아…… 나, 낙태했어, 다른
후지메 유키(2004), 김경자, 윤경원 옮김, 성의 역사학: 근대국가는 성을 어떻게 관리하는가, 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