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적어도 학내 여성주의 운동판에서는) 페미니즘을 자유주의페미니즘/급진주의페미니즘/마르크스주의페미니즘/포스트모던페미니즘 등으로 구획하고 그 중 어느 하나를 취사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듯 싶다. 그러나 "페미니즘의 목표는 정의로운 사회여야 한다"는 지향을 또렷하게 가지고 있는 한, 특정 사상가나 조류에 조금 더 관심을 갖거나 방점을 찍을 수는 있어도, 배타적으로 하나와 동일시하기보다 현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여러 이론들을 조화시켜내는 것이 필요하며 오히려 바람직하다. 아래는 김희강(2006) 논문의 일부로, 거대이론과 동일성논리를 비판함으로써 급진주의 페미니즘이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과는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포스트모던페미니즘 조류가, 어떻게 다시 두가지 조류와 만나면서 페미니즘을 보편성을 담지한 사회이론이자 운동의 언어로 만드는지 서술되어 있다. 페미니스트로서 추구해야 하는 바는,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해방적인 전망을 만들어내고 공유함으로써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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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페미니즘의 관심이 '다원화된 여성(diversity of women)'으로 그 분석단위와 대상이 세분화되고 있다고 해서 페미니즘이 그 핵심을 잃는 것은 아니다. 다원화된 여성은 단순히 여성들 간의 다양한 차이를 강조하는 것을 넘어 다른 집단의 억압을 연계로 해서 여성억압에 대한 다양한 형태를 깊이 있게 밝혀내고자 한다. 즉 여성은 남성과의 관계에서 동일한 형태의 억압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인종과 섹슈얼리티 같은 다른 억압의 축(axis)에 필연적으로 관계하여 다양한 형태로 억압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요컨대 성, 인종, 계급, 섹슈얼리티 등이 모두 상호적으로 억압의 체계를 구성하며, 따라서 여성이 경험하는 다양한 억압의 형태를 연구하는 것은 다른 집단이 경험하는 억압까지 포괄하는 연구이며, 이로써 페미니즘 연구의 폭을 넓힐 수 있다(Collins 2000; Davis 1981; Smith 1983; Lord 1984). 즉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에 따르면, "성 뿐만 아니라 인종, 종족, 민족, 섹슈얼리티, 계급 등 모두가 이제는 페미니즘 이론화를 필요로 한다. 이것은 억압에 대한 이런 모든 투쟁이 페미니즘과 어느 정도 관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Fraser 1997, 180)."
대표적인 흑인 페미니스트인 벨 훅스(Bell Hooks)가 정의하고 있는 페미니즘은 이러한 페미니즘 이론의 동향에 있어 유용한 의미를 제공한다. 훅스는 "페미니즘은 성의 억압(sexual oppression)과 투쟁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Hooks 1987, 71). 그녀가 정의하는 페미니즘이 특히 의미있는 이유는 성의 억압이 인종, 계급, 섹슈얼리티 등의 억압의 형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미래의 페미니스트 투쟁은 문화적 바탕과 원인의 섹시즘 이외 다른 집단 간의 억압의 다양한 형태의 문화적 바탕과 원인에 ...확고히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사회주의 정치학(politics of socialism)과 반 인종주의(anti-racism) 움직임이 성의 억압에 대응하는 여성의 투쟁과 결부되어 일어나지 않는 한 페미니즘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Hooks 1987, 75). 훅스의 이러한 페미니즘 정의는 앞으로 페미니즘 이론이 나가야 할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고 본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억압 이외에 다른 집단이 겪고 있는 억압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이것은 페미니즘이 여성만을 위한 이론이 아닌 다른 소외받는 집단들을 위한 사회정의 이론의 성격을 띠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다시 말해서 완전한 페미니즘 이론은 남성과의 관계에서 여성에게 절대적인 특권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넘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근본적인 사회변화의 기조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페미니즘이라는 말 속에는 여성을 하나의 집단으로 인식할 뿐만 아니라 집단에 포함된 여성들 간의 다양성을 이해해야 하며, 여성들 간의 다양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여성의 억압 이외에도 다른 사회집단들 간의 부정당성과 억압이 함께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페미니즘 이론의 흐름 속에서 더욱더 깊이 있게 연구되어야 할 것은 사회에서 억압받고 있는 다양한 사회집단들을 구분해내고 이들이 겪는 억압을 좀 더 구체화함으로서, 이들과 성의 억압간의 교차성에 대한 분석이 정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페미니즘 이론이 부정당한 성관계와 집단 간의 관계를 밝혀내고 이에 도전하는 문제를 넘어 궁극적으로 사회정의에 얼마나 일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전망까지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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