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도에 썼던 글인데, 최근 의료법 시행령 시행규칙 개정을 둘러싸고 논쟁이 촉발되는 듯하여 업로드합니다.
낙태를 둘러싼 여성의 현실과 그와 유리된 법적 인식
: <베라 드레이크>와 헌법재판소 합헌 결정문을 중심으로
1. 서론
낙태가 전면적으로 금지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낙태는 가임기 여성의 49.8%가 경험한 것으로 보고되는 여성들의 보편적인 경험이다.(박형민, 2011) 그러나 1970년대부터 인구 정책의 일환으로 낙태가 정부 차원에서 허용·권유되었던 것이지 여성의 권리나 재생산권의 측면에서 쟁취해낸 것이 아니기에 사회적인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 현재, 낙태를 법에 따라 엄격하게 처벌하자는 목소리가 득세하고 이에 여성주의 진영이 맞서면서 비로소 낙태 관련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2012년에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한 헌법소원에 대해 4:4로 의견이 갈린 가운데 합헌 결정을 내렸고, 이 결정이 낙태를 둘러싼 여성의 현실에 대해 무지했다는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이선순, 2014)
<베라 드레이크 Vera Drake>는 베니스영화제에서 그랑프리 황금사자상을 받은 영화로,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1950년대 영국의 성에 대한 억압과 뒷골목에서 무분별하게 자행되던 낙태에 관한 영화이다. 낙태가 불법이지만 공공연하게 행해지는 상황에서부터 법이 남성적 시각을 객관성으로 받아들여 낙태시술을 해준 베라를 엄히 심판하는 모습까지, 현재 한국의 현실에 가지는 함의가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계층, 인종, 성격, 혼인 여부 등이 다양한 여성들이 젠더화된 낙태라는 경험으로 묶이게 되는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기에, 여성의 현실을 바로 보고 제대로 파악하는 데에 이 영화에 대한 분석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여성들이 다방면에서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녀들의 목소리에 접근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우회로로써도 의미가 있겠다.
우선 <베라 드레이크>에 담긴 모습 중 한국 현실과 연결성이 큰 부분을 중심으로 낙태와 관련한 여성의 현실을 고찰한 후, 그것을 낙태에 대한 법의 인식과 비교할 것이다. 여성들에게 낙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며, 출산의 자유가 가부장의 보호 하에서만 제한적으로 보장되는 현실 속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점을 영화 분석과 보충적인 문헌 연구를 통해 드러낼 것이다. 그러나 법의 인식은 이러한 여성의 현실에서 유리된 채,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통합적인 것임에도 성적 자기결정권에 수반되는 원치 않는 피임의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있으며 성차별적 효과가 심대함에도 ‘태아의 생명권 vs 임부의 자기결정권’의 이분법적 틀을 고수하고 있다. 헌재의 결정문을 중심으로 삼아 낙태죄 관련 입법 배경, 법 조문 등도 함께 검토하여 법적 인식의 기저에 자리 잡고 있는 남성중심성을 파악하고 비판하겠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결론부에서 재생산권을 보장하고 임신·출산·양육을 인간 삶의 한 단계로 파악해야 한다는 제언을 덧붙일 것이다.
2. 여성의 현실 : <베라 드레이크Vera Drake>가 한국 현실에 가지는 함의를 중심으로
2.1 낙태, 선택지가 하나뿐인 선택
여성 섹슈얼리티의 통합성
낙태의 원인이 원치 않는 임신이라는 점에서, 낙태와 관련한 여성의 현실을 알기 위해서는 여성이 원치 않는 임신에 이르게 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여성의 섹슈얼리티(sexuality)의 통합성에 대한 사유를 필요로 한다. 여성의 성교는 그들의 신체 특성상 임신·출산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캐서린 맥키논과 같은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불가분적인 통합성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제대로 수용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여성의 경험에서 섹슈얼리티는 임신과 출산과 연결되어 있으며 임신과 출산은 다시 성역할(양육)과 불가분의 관계로 맺어져 있으나, 남성의 섹슈얼리티 개념에 기초한 낙태 담론은 섹슈얼리티와 재생산이 마치 별개의 사안인 것처럼 분리시키고 있다는 것이다.(Mackinnon, 1987) 이는 남성의 입장을 보편화하여 하나의 객관성인 것처럼 내세움으로써, 형식적인 젠더 중립성(gender neutrality)에도 불구하고 여성 차별적인 효과를 낳았다. 이 때 젠더 중립성인 외형과 객관성이라는 이름은 차별적 효과를 은폐하는 기제일 뿐, 젠더평등의 발현으로 볼 수 없다.
여성 섹슈얼리티의 통합성에 대한 페미니즘 이론의 주장은 구체적인 현실의 지표들과도 일치한다. 현재의 의학 기술 수준에서, 어떠한 피임법도 완벽하게 임신의 가능성을 막아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래 <표 1>에서 보듯이, 다양한 피임 방법이 있으나 언제나 실패 가능성이 상존한다. 완벽한 피임 방법은 성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기에, 여성의 성교는 임신·출산의 연결선 상에서 다뤄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실제 성경험의 현실에서는 피임이 엄격하게 시행되지도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표 2>는 서울시에 거주하는 만 20세 이상의 미혼 남녀 중 대학생을 제외한 사람들에게 피임실태를 조사한 자료다. 첫경험 때 피임을 하지 않은 경우가 남자 46.3%, 여자 41.7%에 이르며, 지난 6개월 간 항상 피임을 해온 경우도 남자 61.0%, 여자 56.7%에 불과하다. 피임의 ‘왜’와 ‘어떻게’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다.(한국여성민우회, 2013) 이러한 사회 현실에 기반하여 보았을 때, 여성의 성교는 임신과 출산의 가능태다.
<표 1> 피임방법에 따른 피임 실패율 (%)
| 완벽한 적용시 | 일반적 적용시 |
피임하지 않음 | 85 | 85 |
피임약 | 0.3 | 8 |
임플라논(삽입) | 0.05 | 0.05 |
자궁내 장치(루프) | 0.1-0.6 | 0.1-0.8 |
여성불임수술 | 0.5 | 0.5 |
남성불임수술 | 0.1 | 0.15 |
살정제 | 18 | 29 |
월경주기법 | 9 | 20 |
체외사정 | 4 | 27 |
남성콘돔 | 2 | 15 |
여성 페미돔 | 5 | 21 |
자료: 고경심(2010:415); 양현아(2010:89)에서 재인용
<표 2> 미혼남녀의 성경험 양상 중 피임실태 (%, 괄호 안은 명)
항목 | 분류 | 남성 (n=82) | 여성 (n=60) |
첫경험 때 피임 여부 | 예 | 53.7 (44) | 58.3 (35) |
아니오 | 46.3 (38) | 41.7 (25) | |
첫경험 때 피임했다면, 그 방법 | 콘돔 | 75.0 (33) | 65.7 (23) |
질외 사정 | 22.7 (10) | 34.3 (12) | |
월경주기법 | 2.3 (1) | 0.0 (0) | |
첫경험 때 피임한 이유 | 임신을 막기 위해 | 79.6 (35) | 91.4 (32) |
성병을 막기 위해 | 4.5 (2) | 2.9 (1) | |
결혼한 배우자가 아니어서 | 4.5 (2) | 2.9 (1) | |
상대방의 요청에 따라서 | 11.4 (5) | 2.9 (1) | |
첫경험 때 피임하지 않은 이유 | 배란기가 아니어서 | 18.4 (7) | 20.0 (5) |
피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 28.9 (11) | 36.0 (9) | |
상대방의 책임이라고 생각해서 | 10.5 (4) | 8.0 (2) | |
요청할 수 없어서 | 21.1 (8) | 36.0 (9) | |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 10.5 (4) | 0.0 (0) | |
기타 | 10.5 (4) | 0.0 (0) | |
지난 6개월동안 피임의 패턴 | 항상 | 61.0 (50) | 56.7 (34) |
배란기에만 | 18.3 (15) | 23.3 (14) | |
피임 준비가 되어 있을 때에만 | 15.9 (13) | 8.3 (5) | |
피임을 원할 때에만 | 3.7 (3) | 6.7 (4) | |
한 번도 하지 않음 | 1.2 (1) | 5.0 (3) |
자료: 황신우, 정재원 (2011: 83, 강조는 필자)
<베라 드레이크 Vera Drake>는 베라의 아들 시드를 통해 낙태에 대한 남성적 접근이 가지는 모순적인 지점을 잘 짚어내고 있다. 영화는 무도회장에서 만나 즐거운 때를 보내는 남녀의 모습을 잡아내지만, 낙태를 하기 위해 베라의 도움을 구하러 온 사람은 여성뿐이기 때문이다. 시드는 성관계 단계에서는 당사자 중 한 명으로 존재하지만, 임신과 출산 문제에서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낙태가 가시적인 사회 문제로 떠올랐을 때(베라의 낙태시술이 밝혀져 경찰에게 체포되었을 때)에만 비로소 다시 등장하여 베라를 도덕적으로 심판한다. “어린 생명들이에요.”라며 어머니의 행동을 “더러운 짓거리”라고 비난하는 시드의 말은, 그의 도덕적 사명감과 진실성에도 불구하고 공허하게 들린다. 이성애 관계에서만 성교가 임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원치 않는 임신에는 항상 남과 여라는 두 행위자가 존재한다. 그러나 출산이든 낙태든, 원치 않는 임신에 수반되는 결정의 책임은 경제적인 것이든 신체적인 것이든 도덕적인 책임과 관련된 것이든 온전히 여성의 몫으로 남게 된다.
한국 사회는 성적 자유를 보장하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중 하나로 여긴다고 말해진다. 실제로 간통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에서 폐지의 근거 중 하나가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보호였음은, 더 이상 성교가 혼인에 메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천명했음에 다름 아니다. 앤서니 기든스가 말했듯이, 성교가 자녀의 재생산을 목적으로 했던 것에서 벗어나 쾌락이나 친밀감과 같은 자체 목적으로 실행되는 플라스틱 섹슈얼리티(plastic sexuality)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불가분적으로 연결된 임신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불균등한 부담을 지움으로써 성적 자기결정권을 누리고자 하는 여성들에게 낙태를 최선의 선택지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여성들은 그 하나뿐인 선택지를 선택했을 때조차 불법과 비도덕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가부장의 보호 아래에서 부여되는 출산의 자유
물론, 모든 임신이 여성에게 부담이고 희생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베라 드레이크> 속에서도 베라의 동서인 조이시의 임신 사실은 모두가 축하하고 축복할 만한 일로 여겨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임신이 부담인지 축복인지를 가르는 기준이 무엇인가? 조이시는 자신의 임신 사실을 남편 프랑크에게 알리면서 전부터 갖고 싶었던 식기세척기를 사달라고 조른다. 그녀에게 임신은 축복을 넘어 일종의 ‘여성의 무기’처럼 사용된다. 그러나 베라에게 도움을 청한 사람들에게 임신은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하는 상태이다. 첫 번째로 등장한 여성과 같이 남자 파트너와의 관계가 결혼으로 이어지기 힘들어 보이거나, 다섯 번째 여성과 같이 외도로 생긴 아이거나, 수잔과 같이 사랑하지 않는 남자에게 강간당한 경우가 그렇다. 또한, 두 번째 여성과 같이 더 이상의 아이를 감당할 수 없을 경제적 여건이거나, 네 번째 여성과 같이 빈곤 상태(돈을 벌기 위해 이주해온 흑인 여성)에 놓여 있는 경우에 그렇다. 남자 파트너와의 관계, 혼인 여부, 사회·경제적 조건 등에 따라서 임신 경험의 의미는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임신의 의미가 경제력 있는 남성 배우자의 유무에 달려 있다면, 여성의 인권에 가지는 함의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여성 노동 현실이 열악한 한국 현실에서, 여성에게 출산의 자유는 많은 경우 영화 속에 나타난 것과 마찬가지로 ‘나와 아이를 책임질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 남자 배우자 감’, 즉 가부장이 있는 경우에 한해서 허용된다. 여대생의 연애 경험 연구(김신현경, 2006)는 연애관계에서 주체적이고 쾌락적인 성을 경험하던 여성이 막상 결혼을 결심하자 성을 남자친구에게 ‘돈을 벌고 성실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거래 자원으로 의미화했음을 나타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2006) 또한, 양현아(2005, 2013)는 낙태를 경험한 미혼 여성의 93.7%가 ‘미성년자 혹은 혼인상의 문제’를, 기혼여성의 상당 수가 사회·경제적인 여건(‘더 이상 자녀를 원치 않아서’ 70.7%, ‘경제적 어려움’ 17.5%)을 시술이유로 밝혔다는 점에서 한국의 많은 낙태수는 여성들의 자유나 선택의 징표가 아니라 여성들의 ‘취약함’의 징표라고 밝혔다. 종합해보았을 때, 혼인과 경제력의 경계 밖에 있는 다양한 여성들은 따가운 사회 시선과 홀로 져야할 무거운 양육 부담으로 인해 낙태라는 선택지로 몰리게 된다. 여성의 현실은 낙태를 도와주면서 겁먹은 여성들에게 천진하고 따뜻하게 웃어보이는 베라의 모습이나, “제가 한 건 그런[낙태 시술]게 아니에요. 그들이 감당할 수 없을 때, 기댈 곳 없는 젊은 여자들을 도와주었을 뿐이에요.”라는 베라의 답변에 응축적으로 나타난다.
2.2 낙태 경험의 의미: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고통
선택지가 하나뿐인 선택이었음에도, 여성들이 낙태를 ‘선택’함으로 인해 감수해야 할 고통은 상당하다. 영화 <베라 드레이크>에 나타난 여성들의 모습과 낙태경험에 대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연구한 선행논문들을 통해서 낙태 경험의 의미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인 세 가지 차원에서 기술하고자 한다.
낙태경험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
우선, 낙태는 신체적으로 아프고 힘든 경험이다. 낙태가 여성의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은 가난하고 정보 접근성이 낮은 여성들에게는 더욱 크게 다가오며, <베라 드레이크>에는 이 점이 잘 드러나 있다. 영화는 부잣집 딸인 수잔이 낙태과정에서 베라를 찾은 다른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받는 여성으로서의 고통을 보여주면서도, 계층에 따른 상황의 차이를 날카롭게 대비시킨다. 물론 부모님에게조차 털어놓을 수 없었으며 죄책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모습이었지만, 친구의 소개로 찾은 병원에서 정신과 의사의 검진을 거쳐 산부인과 의사를 연결받은 수잔은 깨끗한 산후조리시설까지 거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150프랑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여성들은 중개인 릴리를 찾아 2기니짜리 민간요법을 선택하게 된다. 베라는 끓인 물에 비누와 살균제를 푼 것을 고무튜브로 여성의 자궁 안으로 펌프질해 넣는다. 의학적 전문성이 결여된 방식이기에, 결국 시술을 받은 여성 중 한 명인 파멜라가 발작을 일으켜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된다. 영화의 후반부는 그로 인해 불법 낙태시술이 표면으로 떠오르고 베라의 평온했던 일상에 균열이 가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물론 영화 속에 나타난 것처럼 열악한 상황은 아니나, 대부분의 한국 여성들은 낙태를 몸이 상하고 아팠던 신체 경험으로 기억하였다. 특히 그 경험을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제대로 보양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었다.(양현아, 2013) 실제로 현재 한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낙태는 낙태 이후의 건강 관리를 포함하지 않는, 최소한의 낙태 시술만을 의미한다. 불법시술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당연한 귀결일 수 있겠다. 또한, 영화에서와 같이 저소득 계층의 경우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정보나 경제력이 부족한 여성들의 경우, 태아의 생명권의 침해 정도 뿐 아니라 스스로의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도 더 큰 중후반기 낙태를 감행하게 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추세도 이와 일치한다. WHO(World Health Organization)은 매해 2천 2백만 명이 위험한 낙태시술을 받으며, 4만 7천명의 여성이 낙태로 죽음에 이르고 5백만 명의 여성은 장애를 가지게 된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낙태로 인한 여성들의 죽음과 장애는 성교육이나 가족계획, 법적으로 허용하여 안전한 낙태를 제공한다면 예방 가능하고, 낙태로 인한 합병증도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다.(WHO, 2012) 낙태 시술 자체가 여성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만, 안전한 시술을 받기 어렵고 제대로 된 몸조리를 할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낙태의 불법화는 악영향을 심화시킨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낙태경험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
낙태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도 낙태시술을 받는 여성들 대부분이 경험하는 것이다. <베라 드레이크>에서 베라에게 시술받은 여자들은 대부분 불안하고 두려워보인다. 베라에게 네 번째로 시술 받은 흑인 여자의 경우, 나중에 어떻게 되면 어떡하냐며 화를 내다가 결국에 울음을 터트리는 모습을 보인다. 다섯 번째로 등장하는 여자는 안절부절 못하면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아무도 모를 거라구요.”라거나 “난 정말 나쁜 사람이야!”라며 소리 지른다. 무도회장에서 만난 남자(시드)와의 하룻밤 이후 아무렇지도 않게 “매번 했었죠.”라며 시술을 받는 여자도 등장하긴 하나,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낙태는 자신의 건강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 태아에 대한 죄책감, 사회적인 금기를 어겼다는 불안감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정신적인 고통을 받는 것으로 나타난다.
양현아(2013)의 연구에 따르면, 낙태를 선택한 여성들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함으로써 주체성을 실현하고 행위성을 체험했다기보다는, 태아에 대한 죄스러움과 수치심으로 고통 받아 왔음이 드러난다. 전형적인 정신적 체험으로 태아에 대한 죄책감에 대한 응답이 널리 나타났으며, 단순히 어떤 존재의 생명권을 침해했기 때문이라기보다 자아와 이어진 태아에 대한 상실감에 의해 큰 고통을 느꼈다는 것이다. 선택지가 달리 없는 상황에서의 낙태는 태아를 떼내는 미안한 행위임과 동시에 태아를 배려한 어머니의 행위(양현아, 2010)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는 캐롤 길리건이 낙태에 대한 여성들의 태도는 자기결정권과 태아 생명권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과 태아가 서로 연결된 존재라는 점을 인식한 관계적 사고임을 밝힌 것과 결을 같이 한다. ‘모성적 사고’, ‘관계적 사고’를 통한 이분법적 사고의 비판은 법적 인식을 다루는 부분에서 후술하도록 하겠다.
낙태경험으로 인한 사회적 고통
남성중심적인 사회는 여성들을 낙태로 몰고, 그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려 할 뿐 아니라, 낙태에 대해 법과 도덕의 엄격한 잣대를 들이댐으로써 고통을 가중시키고 그 경험에 대해 침묵하게 만든다. 이미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여성들은 태아의 생명을 앗아간 비도덕적이며 비모성적인 존재라는 비난에 노출된다. 낙태에 관한 한 ‘죄책감 요구하는 사회’인 것이다.(한국여성민우회, 2013) 설사 비난 가능성이 적은 환경이 조성된다고 해도, 여성에게 정숙함을 요구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낙태 경험이 있다는 것은 성적인 경험이 있는 여자임이 확실하게 증명되는 일이기 때문에 침묵을 깨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낙태의 불법화는 이러한 침묵을 공고히 하는 효과를 수행하고 있다. 여성이 아무리 낙태를 둘러싼 자기의 얘기를 하더라도 ‘범죄, 살인의 경위’를 설명하는 것 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최윤정, 2010; 김도경, 허윤주, 2013에서 재인용)
<베라 드레이크> 속 여성들 중 자신의 경험을 주변에 떳떳하게 알릴 수 있었던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수잔은 강간을 당해서 임신하게 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하고 친구의 도움으로 비밀리에 병원을 찾는다. 아주 오래 전의 경험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베라는 경찰에서 조사를 받는 와중에 자신이 젊었을 때 낙태시술을 받았던 것이 다른 이들에게 시술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음이 밝혀진다. 그러나 베라는 20여 년 전의 사실임에도 차마 입을 떼지 못했고, 울음을 터뜨린 베라의 모습을 통해 경감이 짐작했을 뿐이다. 그렇게 자매애의 형성 경로가 원천봉쇄된 상태에서, 사회적 시선은 가혹하고 따갑게 내리쬔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자 ‘천사보다 착한’ 베라와 이기적이고 철없는 조이시의 도덕적 우위는 베라가 불법으로 낙태시술을 해왔다는 것이 밝혀지자 여지없이 뒤집히게 된다. “한심한 양반 같으니. 어떻게 그렇게 자기 생각만 한 걸까요?”라고 중얼거리고,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그런 여자와 마주보고 앉아 있어야 한다니 끔찍해!”를 외치며 남편에게 투정부리는 조이시의 모습은 상당 부분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에 더욱 끔찍하게 느껴진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의사, 경감, 판사는 베라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던지지는 않지만(경감의 경우에는 베라가 보수를 전혀 받지 않고 순수한 호의로 이 일을 해왔음을 알고 동정하기도 한다) 남성적 시각에서 구성된 객관성의 잣대로 그녀를 심판한다. 그녀가 낙태시술을 행해야 했던, 그리고 그녀를 찾은 여성들이 낙태를 택해야 했던 상황은 너무나도 ‘어쩔 수 없이’ 낙태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음에도 남성적인 관점은 이 부분을 가시화하여 다루지 않는다. “범죄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법은 아주 명백하고, 당신은 의도적으로 그 법을 어겼습니다.”라는 그들의 말은 여성의 현실과 유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힘을 지닌다. 베라는 “나는 그녀들을 도와준 것뿐이에요.”라는 힘없는 말을 되풀이할 뿐, 반박할 언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한국 사회에서 2009년부터 ‘프로-라이프(pro-life) 의사회’가 등장하여 한국에 만연하는 불법 낙태시술을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이들은 불법적으로 낙태시술을 하고 있는 의사들에게 법적으로 대응하면서, 강간으로 인한 임신이나 십대들의 임신도 낙태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생명존중 사상을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의 섹슈얼리티의 통합성, 여성이 처해있는 재생산 현실의 열악함 등에 대한 고려 없이 엄격한 법적, 도덕적 잣대만을 들이대는 것은 뛰어난 도덕성보다는 여성 인권에 대한 존중 부족의 방증일 수 있다. 막다른 길에 몰린 이들에 대한 사회적 냉대는 그들의 고통을 유지·심화시키며, 제대로 된 해결책 마련을 위한 대화의 장을 만들 기회도 앗아가 버린다.
3. 낙태에 대한 법의 인식 검토 및 비판
3.1 낙태 관련 입법과 법 집행의 역사적 과정
한국 사회에서 낙태와 관련된 논의 지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논의 지형이 형성, 변화되어 온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의 낙태정책은 ‘인구 정책’의 색채를 강하게 띠고 실행되어 왔다.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국회에서 낙태죄 폐지 여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는데, 법사위 수정안(존치안)과 변진갑 의원이 제출한 낙태죄 삭제안이 표결에 부쳐서 전자가 압도적 다수표를 얻어 1953년 형법에 현행 낙태죄가 규정되었다. 폐지론은 여성의 사회적․경제적 지위 개선, 인구증가에 대한 규제 등을 논거로 제시했으나, 성도덕 유지, 태아의 생명권을 내세운 존치론을 이길 수 없었다.(조국, 2013) 6·25 전쟁 직후였기에 출산 장려를 통해 인구를 증가시켜야 한다는 현실적인 요청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박형민, 2012)
1970년대에 이르자, 인구를 제한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국제 인구통제 레짐의 지원을 받은 한국 정부가 가족계획사업을 실시했고, 출산율 조절을 위해 낙태가 상당 부분 허용되었다. 월경조절술(M.R Kit)을 실시하여 8주 이내까지의 낙태를 허용·권장하였고 정부 예산을 투입하여 낙태를 수용하였다.(이미경, 1989; 김도경, 허윤주, 2013에서 재인용) 이 과정에서 여성의 건강이나 자율성 권리는 마치 당연한 듯 무시되었다.(배은경, 2004) 1973년에는 형법상 금지된 낙태시술을 허용하는 예외 조항을 명시한 모자보건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모자보건법 제정을 통한 부분적 낙태 허용과 허용사유의 확대 시도는 서구와 같이 여성들의 낙태자유화 요구의 산물이 아니라, 개발독재국가의 “인구 억제 정책의 부산물”이었다.(정현미, 2004) 1960년대 이후부터 1990년대까지는 모자보건법이 허용한 낙태뿐 아니라 그 범위 바깥의 낙태까지도 의료기관과 보건소에서 널리 행해졌다. 이 시기의 낙태법은 명목상의 금지일 뿐 광범위하게 시술되었다는 점에서 사문화된 법이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가 되자 상황은 또다시 변화하였다. 급격한 출산율 저하로 인해 저출산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한국 정부는 다각적인 출산장려책을 실시하였으나 출산력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다시 출산조절의 수단으로 낙태 단속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이미정 외, 2010; 김도경, 허윤주, 2013에서 재인용) 2009년 11월 25일에 열린 저출산 대응전략회의에서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주무부처로서 낙태를 단속할 수 있으며 산부인과 의사들과 협의해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고, 2010년 3월 1일 보건복지가족부는 생명존중의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인공임신중절을 줄이기 위한 “불법 인공임신중절예방 종합 계획”에 낙태수술에 대한 단속 강화 내용을 포함하여 발표했다.(김도경, 허윤주, 2013) 앞서 언급한 ‘프로-라이프(pro-life) 의사회’가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이들이 내세운 것은 태아의 생명존중이었지만, 어떠한 주장이 힘을 얻는 것은 사회 현실적 기반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고려한다면 국가 정책적 이유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이 낙태에 대한 출산율 제고 혹은 산아제한이라는 인구 정책적 접근이 주로 이루어졌기에, 낙태 정책의 수립과 실행 과정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중요한 결정 요인이 아니었다. 또한, 고아원 지원금, 입양특례법 등에서 보듯 출산이후의 생명에 대한 정책은 미비하다는 점은 태아의 생명권도 주된 관심사라기보다는 명목으로서 등장하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여겨진다. 낙태를 둘러싼 한국 현실의 변화 양상은 국가 정책적인 이유로 여성들의 권리를 집단적으로 무시해왔던 역사인 것이다.
3.2 현행 형법 상 낙태죄, 모자보건법의 조문 검토 및 비판
한국의 현행 법률은 형법을 통해 낙태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모자보건법을 통해 예외적인 경우에 허용하는 이원 구조를 취하고 있다. 형법 제269조의 낙태죄에서는 부녀의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를 규정하여, 낙태를 한 여성과 이를 도운 자 모두를 처벌하고 있다. 제270조에서는 의사 등에 대한 처벌 조항으로서 ‘업무상 동의낙태죄’를 규정하여, 의사, 한의사, 조산원,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낙태 시술을 해준 경우 보다 엄격하게 처벌하고 있으며, ‘부동의 낙태죄’를 범한 경우도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자기낙태죄, 동의낙태죄, 업무상 동의낙태죄, 부동의 낙태죄 모두 그 과정에서 부녀에게 상해를 미친 경우나 사망케 한 경우는 가중처벌 한다.
[형법]
제269조(낙태) ①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자도 제1항의 형과 같다.
③ 제2항의 죄를 범하여 부녀를 상해에 이르게 한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낙태) ①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없이 낙태하게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③ 제1항 또는 제2항의 죄를 범하여 부녀를 상해에 이르게 한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④ 전 3항의 경우에는 7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한다.
낙태죄에 있어서 주된 보호법익은 태아의 생명권이며, 부차적 보호법익이 임부의 자기결정권이라는 것이 형법상의 다수설이다.(이인영, 2005) 이는 첫째, 절대화된 태아의 생명권에 비교하여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부차적인 보호 법익에 머무르게 한다는 점에서 비판할 수 있다. 물론 생명권은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며 태아도 기본권의 주체가 되며 국가는 헌법 제10조 기본권 보호 의무에 따라 태아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기본권의 주체성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착상된 직후의 태아가 성인과 동일한 권리의 주체라고 보기는 어렵다. 생명은 단지 잉태되고 태어난다고 생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보살핌을 받아야만 비로소 독립된 개체로서 존재할 수 있기(양현아, 2010) 때문이다. 실제 확인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임산부의 경험에 대한 관심보다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태아의 입장을 대변하며 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태아와 대립되는 존재로 임산부를 상정하는 것은, 인간이나 생명개념에 관한 고민이나 구체적 논의 없는 생명 존중론이며 낙태죄 규정을 유지하는 수단이 될 가능성이 높다.(이선순, 2014)
둘째,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인격 발현과 운명 통제권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임부의 생명·신체’에 관한 것으로만 협소하게 이해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낙태를 하지 못했을 때 여성이 경험하는 불이익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산과 양육의 부담을 지게 됨으로써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나가기보단 어쩔 수 없는 요인들에 끌려가게 된다는 점일 것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낙태는 임부의 생명과 신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면서도 행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생명과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라는 법적 인식은 이러한 현실과 굉장히 유리된 것이다. 임부의 출산여부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란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를 위하여 자신의 인격을 발현하고 운명을 결정하기 위한 자유의 한 측면이라고 일견 파악할 수 있다. 이 때 임부의 생명·신체는 하나의 고려사항이 될 뿐이다.(양현아, 2010)
위 두 가지 비판 지점들은 국가의 인구 정책의 일환으로 낙태 정책이 형성되면서, 출산 장려책과 절대적인 생명 중시의 관점에서만 낙태에 대한 공적인 발화가 이루어져온 과정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겠다. 낙태에 관한 찬성 측의 의견은 공적인 토론의 장에서 찾아보기 힘들었으며,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나 친구들끼리의 대화와 같이 지극히 사적인 고민 상담의 형식으로만 존재해왔다. 임부의 자기결정권은 축적된 논의 토양의 부족 속에서 생명·신체에 한정된 것으로, 그렇기에 태아의 생명권에 비해 부차적인 것으로 사고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형법상 낙태죄에 대한 법적 인식은 낙태에 관한 논의를 ‘태아의 생명권 vs. 임부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이분법 틀 안에 가두는 효과가 있다. 과연 두 권리가 충돌하는지도 의문일뿐더러, 낙태와 관련한 다양한 다른 이슈들을 비가시화한다. 낙태하는 여성들의 사연들은 그 여성의 수 이상으로 다양 각색이며,(한국여성민우회, 2013) 낙태에 관한 논쟁에는 생명, 가족, 국가, 모성, 그리고 미혼 여성들의 성에 관한 복잡한 규범들과 여러 이데올로기들이 교차(김은실, 2001)한다. 이 부분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사회의 누적된 불평등 구조 등 국가가 담당해야 할 책임이나 역할 부분을 은폐하게 된다.
[모자보건법]
제14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① 의사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되는 경우에만 본인과 배우자(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1.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2.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3. 강간 또는 준강간(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4.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5.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② 제1항의 경우에 배우자의 사망ㆍ실종ㆍ행방불명, 그 밖에 부득이한 사유로 동의를 받을 수 없으면 본인의 동의만으로 그 수술을 할 수 있다.
③ 제1항의 경우 본인이나 배우자가 심신장애로 의사표시를 할 수 없을 때에는 그 친권자나 후견인의 동의로, 친권자나 후견인이 없을 때에는 부양의무자의 동의로 각각 그 동의를 갈음할 수 있다.
(출처 : 모자보건법 제9333호 2009.01.07 일부개정)
[모자보건법 시행령]
제15조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① 법 제14조에 따른 인공임신중절수술은 임신 24주일 이내인 사람만 할 수 있다.
② 법 제14조제1항제1호에 따라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은 연골무형성증, 낭성섬유증 및 그 밖의 유전성 질환으로서 그 질환이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높은 질환으로 한다.
③ 법 제14조제1항제2호에 따라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는 전염성 질환은 풍진, 톡소플라즈마증 및 그 밖에 의학적으로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높은 전염성 질환으로 한다.
(출처 : 모자보건법 시행령 제21618호 2009.7.7)
모자보건법 제14조는 형법의 낙태죄에 대한 특별법적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인공임신중절의 예외적인 허용 사유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정말 불가피한 경우로 한정했기에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인한 낙태를 불허하고 있다. 따라서 태아 및 임부의 생명·신체에만 관여할 뿐, 임부의 자기 결정권의 행사가 기실은 인정되지 않고 있다 할 것이다.(양현아, 2010) 또한, 법조문 상에서 ‘배우자의 동의’를 요건으로 삼고 있다는 점은 성차별적이다. 외형적으로만 살펴보아도 적발 시 처벌 대상은 오직 여성인 것과 비교했을 때 남성은 의무가 없는 상태에서 권리만 주어진다면 비대칭적인 책임 전가이기 때문이다. 또한,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여성에게 출산의 자유가 허락되는 것은 가부장의 보호 하에서 뿐이라는 현실을 법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이기에 문제적이다. 기혼임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성년자 및 미혼 여성을 배제하고 있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3.3 헌재 결정문에 나타난 법의 인식
2012년 8월 23일, 형법 제 270조 제1항에 규정되어 있는 ‘의사 등의 낙태’에 대해 제기된 헌법소원심판 사건에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소원을 청구한 주체는 조산사였지만, 형법 제270조가 형법 제269조 조문의 헌법 합치 여부에 긴밀하게 연관된 조문이었기 때문에 자기낙태죄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루어졌다. 따라서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은 낙태에 관한 법의 인식이 드러난 가장 최근의 자료라는 점에서 중요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태아의 생명권 vs. 임부의 자기결정권’ 이분법: 관계적 사고의 부족
아래에 인용된 헌법재판소의 결정문 일부에서 보듯, 낙태에 대한 법의 인식이 ‘태아의 생명권 vs. 임부의 자기결정권’ 이분법을 벗어나지 못했음이 드러난다. 헌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인간의 생명권과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충돌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공익’인 전자의 중요성이 ‘사익’인 후자보다 중대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법의 영역에서 낙태담론이 대립적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를 이선순(2014)은 법의 관계성 부재로 보았다. 실제 여성의 현실에서 태아와 여성은 대립하는 두 권리의 주체라기보다는 한 몸으로 연결된 존재이기에, 두 권리를 천칭의 양 쪽에 올려놓고 무게를 재는 비례성 심사의 방식은 한계가 있다. 대립되거나 적어도 독립적인 두 요소라면 몰라도, 임부의 자기결정권은 태아를 낳고 잘 기를 수 있는 환경인지 여부에 크게 좌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임신한 주체의 결정은 자신만의 이해도 아니고 그렇다고 태아만의 이해도 아닌 ‘다중적인 존재’를 동시에 고려하는 행위(하정옥, 2010)이며, 태아의 생명존중과 어머니의 자기결정은 서로 대립되고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언제나’ 서로를 보충하고 의존하는 관계였다.(양현아, 2010) 이러한 ‘모성적 사유’, ‘관계적 사유’를 통해 낙태 관련 현실을 바라본다면, 태아의 생명권과 임부의 자기결정권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는 제3의 공통 요인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태아의 생명권은 ‘공적인 것’으로, 임부의 자기결정권은 ‘사적인 것’으로 명명하여 전자의 손을 들어준 것은 페미니스트들이 오랜 시간 동안 비판해온 공/사 이분법이다. 사안의 대소를 묻지 않은 채 공적인 것이 반드시 사적인 것에 우선한다고 보기 어려우며, 한 몸에 있는 임부와 태아를 서로 분리하여 여성의 자궁 부분만이 공적인 영역으로 보는 것에도 어폐가 있다.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다. 이러한 생명에 대한 권리, 즉 생명권은 비록 헌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다 하더라도 인간의 생존본능과 존재목적에 바탕을 둔 선험적이고 자연법적인 권리로서 헌법에 규정된 모든 기본권의 전제로서 기능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헌재 1996. 11. 28. 95헌바1, 판례집 8-2, 537, 545 참조). 모든 인간은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고, 인간으로서 형성되어 가는 단계의 생명인 태아에게도 생명에 대한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 태아가 비록 그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모(母)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그 자체로 모(母)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헌재 2008. 7. 31. 2004헌바81, 판례집 20-2상, 91, 101 참조). 태아도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이고, 따라서 그 성장 상태가 보호 여부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말미암아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제한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 제한의 정도가 자기낙태죄 조항을 통하여 달성하려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하여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다. 비록 자기낙태죄 조항이 낙태 근절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 조항이 존재함으로 인한 위축효과 및 이 조항이 없어질 경우 발생할지도 모를 인명경시풍조 등을 고려하여 보면,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달성하려는 공익이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달성하려는 공익과 제한되는 사익 사이에 법익균형성도 충족된다.
성차별적 효과에 대한 무지
두 가지 대립하는 권리에만 천착했기 때문에, 헌재는 낙태죄가 가지는 성차별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무지하였다. 1973년 유엔 제34차 총회에서 채택된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CEDAW: 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은 제1부 제1조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시민적 또는 기타 분야에 있어서 결혼 여부에 관계없이 남녀 동등의 기초 위에서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인식, 향유 또는 행사하는 것을 저해하거나 무효화하는 효과 또는 목적을 가지는 성에 근거한 모든 구별, 배제 또는 제한을 뜻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낙태의 금지는 여성에게만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한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성에 근거한 제한이고, 임신·출산·양육의 부담을 일차적으로 여성에게만 지워 낙태를 택할 수밖에 없게 하는 것은 성에 근거한 구별이라고 할 수 있다. 섹슈얼리티가 통합성을 지닌다는 여성 현실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보면, 낙태는 ‘태아 vs 임부’의 문제일 뿐 아니라 ‘남 vs 여’의 성차별 사안이기도 하다.
낙태죄의 존재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특정 방향으로 조형함으로써 성차별을 공고히 한다. 낙태에 대해 시민들이 고발하지 않고 법원에서 유죄판결하지 않는다고 해도 낙태법이 ‘규범력’을 통해 기능(최대권 외 1995, 황승흠, 2005; 양현아, 2010에서 재인용)한다면 사문화되었다고 보기 힘들다. 낙태죄는 낙태가 불법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낙태한 여성들에게 죄의식을 가지게 하며, 성교시 임신의 두려움을 갖게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여성과 그 파트너로 하여금 낙태 경험에 대해 발설하지 못하게 하고, 낙태로 인한 각종 후유증이나 고통, 의식을 공유하지 못하게 하며, 경제·사회적 사유로 병원 접근성이 떨어지는 여성들에게 중후반기 낙태를 하게 만들고, 낙태 관련한 의료적 지원이나 교육, 상담 등 대책수립과 비용을 절감을 불가능하게 만든다.(양현아, 2005) 실제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은 연구에서도 낙태는 여성의 성관계를 좀더 방어적으로 만들고 남성 파트너와 공유할 수 없는 혼자만의 영역으로 되는 경향이 있어, 위축된 성적 주체성을 형성케 함이 드러났다.(양현아, 2013) 이를 두고 이숙경(2005)은 낙태죄가 자신의 성, 임신, 그리고 출산을 국가와 법의 프리즘을 통해 보게 하는 탁월한 여성 훈육 기제라고 말했다. 즉, 생물학적 성(sex)에 기반하여 여성에게 모성(사회적인 성, gender)을 강요하고 소극적인 섹슈얼리티(sexuality)를 형성하는 역할을 법이 수행하고 있으나, 헌재는 이 측면에 무지했던 것이다.
법적 금지를 통해 불법낙태시술을 조절할 수 있다는 믿음
마지막으로, 아래 인용문에서 보듯이 헌재의 결정문에는 형법상의 금지를 통해 불법낙태시술을 조절할 수 있다는 믿음이 드러난다.
한편,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해 낙태를 방지하는 방법으로 비형벌적 제재가 아닌 형벌적 제재를 택한 것이 지나치게 과도한 방법인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자기낙태죄 조항이 형벌로써 낙태를 규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법적인 낙태가 성행하고 있고 그에 대한 처벌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만일 낙태를 처벌하지 않거나 형벌보다 가벼운 제재를 가하게 된다면 현재보다도 훨씬 더 낙태가 만연하게 되어 자기낙태죄 조항의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성교육과 피임법의 보편적 상용, 임부에 대한 지원 등은 원하지 않는 임신을 미연에 방지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나 불법적인 낙태를 방지할 효과적인 수단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나 막다른 길에서의 마지막 선택지가 낙태인 상황에서, 금지는 실효성이 의심될 뿐 아니라 부정적인 해악이 더 크다. 2011년에 이루어진 설문조사에 따르면, 낙태를 법으로 금지해도 낙태를 감행할 것이라는 의견이 84.6%를 넘어섰고, 낙태를 허용하면 낙태가 늘어날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 78.6%였다. 법이 관여하기보다는 개인의 문제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며, 아무리 법이 금지해도 낙태할 수밖에 없다면 낙태를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양현아, 2013) 이런 상황에서 불법화는 낙태를 음성화하여 일부 여성들을 더 취약한 환경에 빠뜨리는 부정적인 효과가 태아의 생명 존중 효과보다 훨씬 더 크다. (사실 불법이기 때문에 산부인과 접근성이 낮은 여성들이 중후반기 낙태를 감행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낙태죄의 주된 보호법익인 태아의 생명권, 바로 그것이 심각하게 침해받게 된다.)
4. 결론: 정리 및 제언
4.1 정리
영화 <베라 드레이크>와 선행 논문들을 통해, 낙태와 관련한 여성의 삶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성관계-임신-출산이 긴밀하게 연결된 통합성을 가지고 있기에 사회가 출산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지 않는다면 많은 여성들에게 최선의 선택지는 낙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았다. 그러나 영화 속 1950년대 영국 사회는 물론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도 출산의 자유가 제한적으로밖에 보장되지 않고, 그것도 경제력 있는 남성 배우자의 존재에 달려 있다는 것이 여성의 열악한 현실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성들은 낙태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인 고통을 받아왔고 따가운 사회의 시선은 이들의 고통을 지속·심화시켰다. 그러나 낙태가 불법이라는 사실은 낙태시술의 비용과 위험성을 높였을 뿐 아니라 현실을 바꾸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당사자 여성들의 목소리를 침묵시켜버렸다.
그러나 낙태에 대한 법의 인식은 여성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고, 그 결과 남성 중심적인 것으로 남았다. 법이 제정되고 집행되어온 역사는 국가의 인구 정책적 필요에 의한 것이었기에 임부의 권리에 대해서 무시해왔었고, 형법상 낙태죄와 모자보건법 상의 예외적 허용 조항도 마찬가지로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부차화했다. 낙태죄 헌법소원에 대한 2012년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은 ‘태아의 생명권 vs. 임부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이분법적 대립 틀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성차별적 효과에 대해 무지했고, 금지를 통해 불법낙태시술을 방지할 수 있다는 믿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높은 낙태율은 피임에서부터 출산과 양육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여성이 주체성을 가질 수 있고, 사회적인 기반도 갖춰졌을 때 해결될 수 있는 것이고, 절대화된 생명존중론이나 낙태 금지주의는 여성의 고통을 심화시킬 뿐이다.
4.2 제언: 재생산권 보장과 새로운 인식 틀의 정립
재생산권의 보장
앞서 헌재의 ‘태아의 생명권 vs. 임부의 자기결정권’ 이분법 틀을 비판하면서 두 가지가 긴밀하게 연결 되어 있는 가치임을 논했다. 때문에, 태아의 생명권과 임부의 인격발현·운명통제권으로서의 자기결정권 모두에 영향을 끼치는 제3의 요인에 관심을 기울여야 함을 피력했다. 이는 단순히 낙태 허용에 그칠 것이 아니라 포괄적인 재생산권리의 보장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최초로 재생산권의 개념을 공식적으로 사용한 1994년 카이로 UN ICPD(International Conference for Population and Development, 인구 및 개발에 관한 국제회의)에서는 행동계획(ICPD Progranne of Action)에 여성 인권의 시각에서 재생산권의 내용을 제시했다. 행동계획 7.3는 ‘재생산권이란 모든 커플과 개인들이 그들의 자녀 수, 터울, 시기를 자유롭고 책임 있게 결정 할 수 있는 기본적 권리 및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정보와 수단, 그리고 가장 높은 수준의 성적 재생산의 건강을 누릴 권리를 포함한다. 이 인권 문서들에서 표현된 차별, 강제, 폭력 없이 재생산에 관한 결정을 내릴 권리를 포함한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는 1995년 베이징 여성대회에서 베이징 선언과 행동강령(Beijing Declaration and Platform for Action)으로 구체화되었고, 재생산건강권에 대한 강조도 이어졌다. 재생산건강권이란 재생산의 영역에서 주체적인 의사결정자가 될 것과, 안전하고 효과적인 공공의 재생산 서비스에 접근을 확보하는 것이다.(조영미, 2005) 재생산권은 인권의 기본축인 자유권, 평등권, 사회권의 측면이 서로 결합된 인권개념이 틀이지만, 임신·출산·낙태가 여성의 몸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이러한 권리들이 여성의 인권보장에 가지는 의미가 크다.(이선순, 2007)
이러한 바탕에서, 낙태를 기한적으로 허용하는 것을 포함하여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사회적 침해를 철회하고 출산의 자유를 널리 보장하기 위한 정책과 입법들이 필요하다. 낙태를 기한 방식으로 전환하여 아직 태아의 생명권이 크지 않고 임부에게 낙태 시술이 미치는 위험도 작은 전반기에는 허용해야 한다.(조국, 2013) 나아가, 인구정책이 아니라 재생산 정의(reproductive justice)을 목표로 한 서로 다른 초점을 가진 서로 다른 문제에 대한 ‘다초점 정책’이 요구된다.(양현아, 2010) 다초점 정책의 내용으로 낙태 허용 외에도 적응방식에서 비혼 여성(혹은 미성년)이라는 사유를 포함시킬 것, 모자보건법 제14조의 ‘배우자 동의’ 조항을 삭제할 것, 원치 않는 임신을 줄이는 교육과 여성의 권한강화를 위해 힘쓸 것, 임신과 출산에 대한 상담 기회를 부여할 것, 국가·지방자치 단체의 보편적 재생산 지원 의무를 부여할 것, 비혼모의 출산시 비혼부에게 양육비를 청구할 방안을 마련할 것, 국가가 출산지원 정책을 펼 것 등을 제시했다. 특히, 피임실천을 지속하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은 남녀 모두가 피임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피임하려는 의지가 명확할 때(황신우, 정재원, 2012)이므로 피임에 대한 지식과 실천 양태 모두가 부족한 상황인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성교육이 시급할 것이다.
임신·출산·양육에 대한 인식의 전환
법을 포함한 사회는, 임신과 출산, 양육을 자연스러운 삶의 한 단계로 인식해야 한다. 예외적이고 사적인 사건이라기보다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이 겪게 되는 일반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여성 일반에게, 나아가 아버지가 될 수 있는 남성들까지도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식을 낳고 키우며 삶의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법은 그동안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이유로 임신·출산·양육을 사소화시켰고, 이를 어렵게 만드는 불평등하고 성차별적인 사회 구조에 대해 바로 보지 못했다. 그 결과, 많은 여성들이 낙태를 선택하게 만들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경험에 대해 침묵하도록 만들었다. 임신·출산·양육은 계속해서 사적이고 예외적인 일로 남았으며, 법은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공익’이 침해당했을 때에만 다시 등장하여 개개인들을 벌해왔다.
여성주의 운동 및 학자들은 여성이 잉태능력으로 인해 취약한 지경에 빠지는 사회적 구조에 대한 비판을 해왔으며, 양육을 포함한 보살핌 노동의 가치에 대해 재조명해왔다.(Carol Gilligan, 1982) 이제는 이를 종합하여 임신·출산·양육을 인간 삶의 단계로 통합시킨 새로운 인식의 틀을 정립해야 한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과정에는 어려움과 좌절도 있지만 동시에 많은 기쁨과 행복이 뒤따르며, 그 과정에서 아이뿐 아니라 부모도 성장한다. 따라서 임신과 그와 관련된 출산 혹은 낙태를 하나의 단계로 보고, 그 위에서 성숙과 행복을 얻게 하는 요소와 좌절과 불행을 얻게 하는 요소를 탐색해나가야 한다. 정책이나 입법의 목표는 물론 사회 운동이나 시민 교육의 목표도 보다 많은 이들이 임신·출산·양육의 단계에서 전자를 성취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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