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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도서

[rough summary] 패트리샤 힐 콜린스, 「흑인 페미니즘 사상」

*총 3부로 이루어진 책의 1부와 3부 부분 요약임.

**사실 요약이라기보단 인용구 목록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러프함.





서문

 

억압받는 집단은 지배집단에게 친숙하거나 편안한 언어로 자신들의 관념을 개념화할 때만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상황에 종종 놓인다. 이러한 요구는 우리 자신의 관념과 작업의 의미를 변화시켜서 결국 지배집단의 관념을 추앙하게 만들곤 한다.” (초판 저자서문 )

 

이 책을 쓰기 시작할 무렵 나는 나의 개인적인 관념을 종이 위에 공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내심 꺼리는 불편함을 극복해야 했다. “한 개인일 뿐인 내가 어떻게 흑인 여성이라는 커다랗고 복잡한 집단을 대변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계속 물어야 했다. 우리 각자가 스스로를 위해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나는 전체 흑인여성 집단을 대변하여 말할 수 없으며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나 스스로 내린 대답이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내 작업을 더욱 커다란 과정의 일부로 보게 되었다. 이 책은 오랫동안 말하지 못하도록 강제되어 온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듣게 되는 하나의 목소리이다. (...) 무엇보다 이제까지 그리고 지금도 침묵을 강요당하는 이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찾기를 바란다. 나는 그들이 말해야만 하는 것을 듣고 싶다.” (초판 저자서문 )

 

 

1부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사회적 구성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정치학

흑인여성의 복합적인 지적 전통은 악의적으로 보이지 않는 전통이 되었다. 이러한 비가시화는 결코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다. 지배집단의 통치는 피억압 집단의 지식을 억압해야만 용이해진다. 지배집단은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과 대항지식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종속집단이 스스로의 피해와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에 부역하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Scott 1985).”

미국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정치학은 억압과 실천활동의 변증법으로 구성된다. 미국에서 흑인여성의 사상에 대한 억압은 지속되어 왔으며 우리 흑인여성들은 이에 대항해 왔다. , 억압과 이에 응수하는 실천활동이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정치학을 구성한다. 더욱 중요하게는, 이러한 변증법적 관계를 이해해야만 미국 흑인 페미니즘 사상(핵심주제, 인식론적 의의, 초국가적 흑인 페미니스트 실천의 연결작업)이 미국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존재를 부정하고 그 존재권리에 도전해 온 정치적 맥락에서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인식할 수 있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억압

-미국 흑인여성에 대한 억압은 서로 교차하는 세 가지의 차원을 아우른다

미국 자본주의에 필수였던 흑인여성의 노동착취 (경제적 차원)

투표권, 공공 업무에서의 배제, 형사법 체계의 편향, 교육제도 등 (정치적 차원)

노예제 시기에 만들어진 흑인여성에 대한 통제적 이미지 (이데올로기적 차원)

이러한 이미지와 더불어 권력 네트워크는 경제, 정치체, 이데올로기가 삐걱거림 없이 서로 제 기능을 함으로써 작동하며, 미국 흑인여성의 종속을 유지하는 매우 효과적인 사회통제체계로 기능한다.”

미국과 유럽의 여성학은 엘리트 백인남성의 헤게모니적 관념에 도전해왔다. 그러나 서구의 여러 페미니즘 또한 흑인여성의 사상을 억압했다(duCille 1996, 81-119)”

 

-억압의 패턴들

-누락 ex) 낸시 초도로우, 캐롤 길리건

-자신의 실천은 거의 바꾸지 않으면서 다양성의 필요성은 긍정하는 척 사탕발린 말만 하는 것

이런 여성들은 자신이 흑인은 아니기 때문에 흑인여성의 경험을 이해하거나 말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다. 다른 이들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안전하게 선별된소수의 흑인여성의 목소리를 포함한다. 이러한 두 부류는 미국 백인 페미니스트의 작업에 지침이 되는 패러다임을 기본적으로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 정치적 무의식을 보여준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통합함으로써 탈정치화하는 행태

“1990년대 미국 대학에서, 특히 문학비평과 문화연구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점점 더 인기를 끎에 따라 상징적 포함이 실질적인 참된 변화를 대체해 버리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일부 흑인남성들의 맹렬한 공격

 

비판사회이론으로서 흑인 페미니즘 사상

이러한 다양한 집단의 여성이 표현하는 사회이론은 그들만의 상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사회이론은 인종,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 종족, 민족, 종교가 서로 복잡하게 맞물려 작동하는 여러 억압의 내부에서 여성들 자신의 체험에 언어와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을 보여준다(예컨대 다음을 참조. Alexander and Mohanty 1997; Mirza 1997)”

 

위에서 논의한 두 가지 요소와 더불어, 흑인여성이 독특한 입장을 갖게 된 물질적 배경을 이루는 것은 바로 내부의 외부인이라는 입장에서 나온다. 흑인여성은 흑인공동체 문화를 구축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백인가정의 가사노동자로서 내부의 외부인 입장에서 흑인 고유의 관점을 발전시켜 왔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전개와 발전

흑인여성에 대한 억압의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측면은 개별 흑인 페미니스트 사상가의 지적인 작업을 억눌렀다. 동시에 이러한 사회적 조건은 개별 흑인여성 사상가에게 영향을 끼쳤고 이 사상가의 영향을 받은 흑인여성의 실천활동이 그녀들 특유의 패턴을 띠도록 자극하였다. 그래서 억압과 활동의 변증법은 젠더, 인종, 계급이 교차하는 억압과 함께 흑인여성의 경험의 특징을 이루며 흑인여성 지식인의 사상과 행동에 영향을 미쳤다.”

비판사회이론인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발전시키려면 더욱 공식적이며 적법한 학문에서 나온 관념뿐 아니라 이제까지 지식인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흑인여성의 사상을 포함해야 한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은 학걔 외부에서 일하는 노동계급 여성이다. 우리가 확대 가족에서 어머니 역할을 하면서, 흑인공동체의 대안어머니로서, 흑인교회의 교인으로서, 흑인공동체의 아이들의 교사로서 서로와 나누어온 관념은 다층적인 흑인여성의 입장을 벼리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흑인여성 지식인을 배출한 또 다른 집단은 음악가, 가수, 시인, 작가, 예술가 집단이다. 특히 음악가는 아프리카로부터 영향을 받은 구술전통을 확립하였고 청중인 흑인여성 공동체와 친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풀뿌리 정치 활동가 역시 말과 행동을 통해서 흑인여성의 지적 전통에 기여해 왔다. 지적인 저작을 생산하는 것은 흑인여성 예술가와 정치 활동가의 특성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이들은 엘리트를 양성하는 고동교육 기관에서 주로 연구 대상으로 여겨졌을 뿐이다. 이것은 학문과 실천활동, 사유와 행동을 별개의 것으로 나누어 바라보는 잘못된 이분법에 따른 결과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가 이 배제된 흑인여성 집단을 주체로 보면서 이들의 관념과 행동을 검토해 보면 행동이 곧 철학의 진술이 되는 세계, 생명력 넘치는 학자이며서 활동가가 되는 전통이 온전하게 살아있는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이 책의 목적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네 가지 기본요소(핵심주제, 해석틀, 인식론적 접근, 흑인 페미니즘 사상이 흑인여성의 힘기르기에 갖는 의의)가 이 책의 핵심.

-비판사회이론인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발전이 지닌 의의를 기술하고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

흑인 페미니즘 사상이 역사적으로 표현된 방식과 내용 그리고 우리 시대에 그것이 표현되는 방식과 내용을 개괄하면서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핵심 주제들을 선별적으로 요약.

인종, 계급, 젠더 연구로 알려진 해석틀 혹은 패러다임을 사용하면서 이 틀을 심화하는 것.더하기 모델additive model을 거부하면서, 상호연관된 억압관계의 상이한 차원들을 교차성intersectionality(Crenshaw 1991), 지배 매트릭스matrix of domination과 같은 개념 사용.

*교차성: 서로 맞물리는 억압의 특정 형태, 예컨대 인종과 젠더의 교차, 혹은 섹슈얼리티와 민족의 교차와 같은 특정 형태를 지칭. 교차 패러다임은 억압이 하나의 근본적 유형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임을 강조하며 여러 억압들이 부정의를 생산하는데 서로 함께 작동한다는 점에 주목.

*지배 매트릭스: 서로 맞물려 작동하는 이러한 억압들이 실제로 조직되는 방식을 지칭. 권력의 구조적, 훈육적, 헤게모니적, 대인관계적 영역은 관련된 특정 억압의 맞물림뿐 아니라 상이한 형태의 억압을 가로질러 재삼 등장.

기존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평가하고 그것의 발전을 가로막아 온 기저의 가정을 밝히는 데 사용할 인식론적 틀 발전시키기.

흑인여성의 힘을 길러온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심화 발전시키고자.

힘기르기는 아직 실체가 없는 채로 남아 있으며, 힘기르기의 흑인 페미니스트 정치학black feminist politics of empowering을 개발하는 것은 흑인여성을 제한하는 권력의 영역뿐 아니라 이러한 영역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밝히는 작업을 필요로 한다. 관념의 측면에서 흑인 페미니즘 사상은 이러한 목적을 향해 가는 관념과 분석틀을 발전시킬 것이다. 게다가, 흑인 여성의 온전한 힘기르기는 오로지 사회정의의 초국가적 맥락 안에서만 일어날 수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흑인여성에게 초점을 맞추는 미국 흑인 페미니즘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정의justice의 맥락 내부에 있는 집단의 힘기르기를 촉진하는데 헌신해 온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사회정의 기획 중 하나이다. 이런 점에서 흑인 페미니즘 사상은 미국 흑인여성의 경험을 넘어서는 광범위한 사회 정의 기획의 일부이다.”

 

 

2.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특징

 

왜 흑인 페미니즘 사상인가?

-흑인 페미니즘이 중요한 이유는 우선 흑인여성이 억압받는 집단이기 때문. 따라서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포괄적 목적 역시 억압에 저항하는 것, 그리고 억압을 정당화하는 실천과 관념에 저항하는 것.

-경험과 의식이 서로 연결되는 것은 흑인여성 개개인에게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바이며 동시에 하나의 집단으로서 흑인여성의 경험과 관념의 특징.

-흑인여성이 집단적 지혜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억압받는 집단의 의식을 바라보는 두 가지 지배적 해석(종속된 집단은 권력자에게 동일시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겪는 억압을 타당하게 해석해 낼 독립적인 관점이 없다는 것, 억압받는 이들은 자신을 지배하는 이에 비해 열등한 인간이며 그러므로 자신의 경험을 해석할 능력이 없다는 것)에 도전.

역사적으로 서로 맞물려 작동하는 여러 억압 하에서 흑인여성의 집단적 위치는 흑인여성 개개인에게 공통점을 부여한다. 동시에, 공통의 경험은 흑인여성으로 하여금 흑인여성 특유의 집단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경향을 증가시킨다. 물론 그렇다고 그러한 의식이 모든 여성 사이에서 발전되는 것은 아니며 공통의 경험을 지닌 집단은 반드시 이러한 의식을 표현하게 된다는 뜻은 아니지만 말이다. 역사적 조건이 변화함에 따라 흑인여성이 경험의 유형을 서로 연결하는 방식도 변화하며 그러한 경험에 뒤이어 형성되는 집단의식도 변화한다. 집단입장이란 불공정한 권력관계 속에 위치하고 그 권력관계를 반영, 형성하기 때문에 입장이란 정태적인 것이 아니다(Collins 1998a, 201-08).”

 

공통의 도전에 대한 흑인 페미니즘 내부의 다양한 반응

-하나의 집단으로서 흑인여성이 직면한 공통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흑인여성 개개인이 동일한 경험을 하거나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경험을 해석하는 것은 아님.

-반응의 다양성을 설명해주는 다양한 요소들: 흑인여성 사이의 사회계급적 차이에서 기인한 주거, 교육, 고용상의 인종차별 패턴. 섹슈얼리티.

이제까지 논의한 요소가 흑인여성이 공통으로 직면한 도전에 다양하게 반응하는 방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고려하면, 동질적인 흑인여성의 입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상적이고 규범적인 그러므로 진정한 경험으로 여겨지는 본질적이거나 원형적인 흑인여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흑인여성의 입장을 본질주의적으로 이해하게 되면 정의하기 어려운elusive 집단적 통일성을 부각시키게 되고 그리하여 흑인여성 사이의 차이를 억압하게 된다.”

 

흑인 페미니스트 실천과 흑인 페미니즘 사상

-흑인 페미니즘 사상은 이질적 집단인 흑인여성의 경험과 이러한 경험에서 나온 집단적 지식/입장 사이의 상관성에 관심을 둔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잠재적 중요성은 흑인여성이 이론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보다 더 멀리 나아간다. 흑인 페미니스트 실천은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 반영되어 있으며 후자가 전자를 촉진해왔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은 흑인여성의 입장의 여러 차원에 대해 흑인여성 사이의 집단적 정체성을 창출할 수 있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은 다시 절합하여 또박또박 설명하는 재표출rearticulation 과정을 통해서 흑인여성에게 우리 자신과 세상에 대한 대안적인 견해를 제공한다(Omi and Winant 1994, 99). 흑인 페미니즘 사상은 흑인여성의 입장에서 드러나는 핵심 주제를 취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흑인여성의 일상적 지식, 흑인여성이 당연시 해온 지식을 활성화하는 새로운 의식을 촉진한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은 의식화를 수행하려고 하기보다는 종종 이미 존재하는 의식을 긍정하고 다시 절합하여 설명하며 그러한 의식을 공적으로 표현할 수단을 제공한다. 더 중요하게는, 이렇게 재표출된 의식은 흑인여성의 힘기르기를 목적으로 하며 저항을 촉진한다.”

흑인 페미니스트 실천과 흑인 페미니즘 사상이 서로 연결된다는 것을 인식하고서 오로지 흑인여성만이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생산에 참여할 수 있고 흑인여성의 경험만이 이 사상의 내용을 형성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이런 식으로 이해한다면 생물학적으로 흑인이며 여성인 이들에게만 의존하게 되어 그 비판적 관점을 침해하게 된다. “흑인 페미니스트 비평을 흑인여성의 삶을 묘사하는 흑인여성 예술가의 작품에 대한 비평으로만 국한하는 배타적인 정의는(Carby 1987, 9) 워낙 분리주의적이기 때문에 부적합하다. 이 책에서 내가 흑인 페미니즘 사상과 실천이 서로 긴밀히 연결된다고 강조한 것은 자율성 때문이다. , 자기정의와 자율성(이것은 “20년 전까지만 해도 학계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지적 전통의 목적이다[Omaolade 1994, x])이 필수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흑인 페미니즘 사상 내부에 존재하는 흑인여성 지식인의 중요성은 무엇일까?”

 

대화적 실천과 흑인여성 지식인

-흑인여성 지식인은 여러 면에서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 핵심임:

흑인여성으로서 우리의 경험이 흑인여성성에 관한 독특한 관점을 제공하기 때문. 억압구조의 외부에서 살아가는 이들보다는 피억압 집단의 구성원인 흑인여성이 억압조건에 대한 비판적 통찰을 지닐 가능성이 더 크다. 다른 이들이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생산에 참여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자신의 현실을 정의하는 일차적 책임은 그 현실을 사는 사람, 그러한 경험을 실제로 겪는 사람에게 있다는 뜻.

학계 안팎에서 장애물이 압도적일 때도, 대가로 받는 보상이 줄어들 때에도 흑인여성의 투쟁으로부터 물러설 가능성이 적음.

흑인여성 지식인은 자기정의라는 주제를 의욕적으로 추진. 자기 힘으로 목소리를 내고 자신의 의제를 벼리어 내는 것은 힘기르기에 필수적이기 때문.

흑인여성 지식인은 다른 집단과의 효과적인 연대를 가능케 하는 집단적 자율성을 증진시킬 수 있기 때문에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생산하는데 핵심 역할을 함. 이 때 자율성은 흑인여성이 다른 집단과 관계를 끊고서 배타적 정치에 참여하는 분리주의적 입장과는 구분되는 것. “자율성과 분리주의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자율성은 강인함에서 나오는 반면에 분리주의는 공포에서 나온다. 진정으로 자율적일 때 우리는 다른 종류의 사람, 다양한 쟁점, 차이를 다룰 수 있다. 견고한 힘의 토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바바라 스미스 1983, xl)

 

-사회정의 기획에 참여한 다른 집단들과의 연대를 형성하기 위한 대화.

원칙에 입각한 윤리적 연대를 촉진하는 대화는 새로운 유형의 진리를 탄생시킬 가능성을 창출한다. (...) 워커는 어머니와 대화하면서 얻게 된 이러한 인식론적 비전을 다음과 같이 멋들어지게 표현한다. “내가 보기에 어떤 주제에 관한 진실이란 이야기의 모든 측면이 모아질 때라야 나오는 것이며 각 측면의 상이한 의미 모두가 하나의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 작가는 각각 다른 작가의 이야기에서 빠진 부분을 쓰는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바로 온전한 전체 이야기이다”(1983, 49). 대화와 연대의 가능성에 대한 워커의 비전에 대해 워커의 어머니는 ekamd과 같이 반응한다. “나의 어머니는 옆 테이블을 닦고 있는 여종업원의 마음을 불쾌하게 하지 않으려고 나지막하게 말씀하셨다. ‘글쎄, 백인들의 이야기에서 빠진 진실된 부분을 네가 정말로 찾아낼 수 있을지 의심스럽구나. 그들은 지금까지 진실을 깔고 앉아서 그 진실로 삶을 짓이겨 왔잖니’”(1983,49). 이 언급은 권력상의 차이를 가로질러 비판적 대화를 지속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역동적으로 변화 중인 흑인 페미니즘

흑인여성이 현재 직면한 변화중인 사회조건으로 인해 흑인여성성을 특징짓는 공통적 차이를 새롭게 분석하는 흑인 페미니즘 이론틀 역시 점점 더 절실해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 새로운 위치에서 작업하는 흑인여성 지식인은 또 다른 위험에 직면한다. 즉 흑인여성사상가 개개인이 다른 흑인여성과 흑인 공동체와 접촉이 부재한 채로, 흑인여성의 집단적 경험으로부터 고립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위험은 사상과 행동 (특히 정치적 활동)을 분리하라는 압력이다. 이러한 압력은 표준적인 대학 분과학문상의 훈련이나 자유언론과 같은, 아무런 근거 없이 중립적영역으로 단언되는 분야에 참여하면서 수반되는 압력이다. 흑인여성 수퍼스타들이 이러한 새로운 관계에 참여하면서 자신들의 참여조건을 비판적으로 성찰하지 못하게 되는 위험도 새로이 나타나고 있다. (...) 이 새로운 상황에서 흑인 페미니즘 사상은 움직이는 과녁이 맞추기 더 어렵다는 점을 명심하면서 스스로를 항상 역동적인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흑인 페미니즘 그리고 여러 다른 사회정의 기획

-흑인여성의 투쟁을 인간의 존엄, 힘기르기, 사회정의라는 광범위한 투쟁의 일부라고 봄.

-흑인 페미니즘에서 이러한 인본주의적 방향설정은 흑인 디아스포라 페미니즘이 취하는 입장과 유사.

사회정의의 기획이라면 우리에게는 우리의 운동이 당신들에게는 당신들의 운동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운동들은 서로 관계가 없는 거지요라고 말하면서 ‘~거나/또는either/or’ 식의 양자택일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정의 기획은 우리는 우리 운동을 하면서 당신들의 운동을 지지합니다라고 말하고 행동하기를 권한다. 여러 억압이 서로 맞물려 작동하는 상황에서 흑인 페미니즘은 미국 흑인여성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모든 이를 위한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

 

 

 

3부 흑인 페미니즘, 지식, 권력

 

10. 초국가적 맥락에서 본 미국 흑인 페미니즘


-미국 흑인 페미니즘이 제시한 교차성 패러다임:

흑인여성의 경험을 새롭게 해석하는 지평 열었음. 지배가 조직되는 방식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함으로써 지식과 힘기르기의 관계를 분명하게 보여줌. ‘지배 매트릭스matrix of domination’

지배 매트릭스는 서로 맞물려 작동하는 여러 억압이 한 사회적 위치에서 취하는 역사적으로 특정한 형태의 권력조직이다. 사회집단은 이 권력조직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 권력조직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 (...) 공통적으로 지적한 대로, 세네갈, 미국, 영국의 사회제도는 인종,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가 서로 맞물리며 작동하는 억압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 세 국민국가에서 사회관계는 서로 다르다. 세네갈, 미국, 영국에서 지배는 상이한 방식으로 구조화된다. 어떤 매트릭스가 시기별로 혹은 국가별로 조직된 방식에는 실제적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지배 매트릭스라는 개념은 여러 억압이 서로 맞물려 작동한다는 점에서 띠는 보편성과, 이 보편성이 다양한 지역적 현실을 통해 조직된다는 점을 포착한 개념이다.”

 

미국 흑인여성의 경험을 특권화하지 않으면서 다만 분석의 중심에 위치시켜 보면, 미국 사회의 특징이 되는 특정한 지배 매트릭스를 검토하는데 교차성 패러다임이 특별히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인종, 사회계급, 젠더, 섹슈얼리티의 체계가 상호형성적인 사회조직을 구성한다고 보는 주장은 미국의 사회제도에 대해 기본적으로 다시 사고할 것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교차성 패러다임으로 미국 흑인여성의 경험을 탐구하게 되면, 노동과 가족을 서로 분리된 사회조직의 영역으로 보는 뿌리 깊은 믿음을 깨뜨리게 된다. 미국의 흑인여성은 공적인 영역에서의 노동과 사적인 영역에서의 가족책무라는 이분화된 논리를 적용받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공적 노동과 사적인 가족책무를 대립적으로 구분하는 범주는 그녀들의 경험을 설명하는데 별 의미가 없다. 교육, 주거, 직장, 공공서비스에서 끈질기게 지속되는 차별이 말해주듯이, 흑인여성의 경험은 개인이 탁월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미국의 사회계급 이데올로기와 완전히 모순된다. 흑인여성성을 둘러싼 성정치를 보면, 1)젠더가 모든 여성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가정이 오류라는 점, 2)인종과 계급 역시 무척 중요하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미국 흑인여성의 저항활동은 집단적 생존과 제도변혁을 위한 투쟁을 모두 포함하며, 정치적인 것으로 이해되어 온 것들을 다시 사유하게 한다. 따라서, 흑인 페미니즘 사상은 교차성 패러다임을 활용하여 미국의 지배 매트릭스와 흑인여성의 개인적 집단적 행위주체성을 설명하며, 지배와 저항의 사회적 관계를 재개념화한다.”

 

민족, 민족주의/국민주의

-민족: 서로 공통의 과거와 공통의 미래를 지닌다고 믿는 사람들의 집합.

-민족주의: 스스로를 다른 집단과 구분되는 변별적인 겨레나 민족으로 정의하는 집단이 표출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

민족주의 철학에서 여성은 무척 중요하다. 여성의 중요성은 국민국가의 권력을 쥐고 있는 지배집단의 경우에도, 억압에 도전하기 위해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사용하는 종속집단의 경우에 모두 적용된다. 국가권력의 양쪽 편에 있는 집단은 자기 집단에 속한 여성을 특정한 방식으로 본다. 여성은 어머니가 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여성은 민족주의의 세 요소, 1)섹슈얼리티와 출산능력, 2)모성 3)민족의 상징에서 모두 핵심이다(Yuval-Davis 1997). 미국에서 모든 여성은 미국이라는 국민국가의 인구를 재생산하고, 미국의 국가문화를 전수하고, 바로 그 국가문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책임이 부여된다. 하지만 미국의 지배 매트릭스에서, 이 전체 과정은 인종과 계급에 따라 상이한 방식으로 작동하며, 다양한 섹슈얼리티를 지닌 여성에게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흑인여성은 잘못된 인종의 자녀들을 낳는다는 이유로, 나쁜 가족구조에서 자녀를 키우기 때문에 그들을 제대로 사회화시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또 미국 애국주의의 제대로 된 상징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받는다. 이러한 불편등한 대우는 흑인여성을 타자화하면서 유모나 가모장, 복지수당 어머니, 제제벨 등의 통제적 이미지를 통해 미국여성의 정상성을 결정하는 이데올로기에 부분적으로 기인한다. 미국에서 흑인여성 및 여러 다른 집단은 이러한 상황에 깊숙이 자리잡은 이데올로기를 잘 알아차라지 못한다. 왜냐하면 국민국가인 미국의 국가정책을 통해서 미국의 국가적 이해가 사실은 특정 집단의 이해라는 사실이 은폐되기 때문이다.”

-ex) 가족관이 미국의 국가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견해, 모성에 대한 관념.

 

초국가적 맥락에서 본 흑인여성

미국의 국가경계 외부에 존재하는 문제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가정하면, 흑인과 백인 사이의 대화는 필요 이상으로 과열되어 그 결과 여러 다른 문제를 억누를 수 있다. 이 논쟁이 논리적 극단으로 치닫는다면, 미국의 페미니즘은 흑인여성과 백인여성이 왜 서로 사이좋게 어울리지 못할까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정체성을 둘러싼 토론에만 집중하고 말 수도 있다.

미국 흑인여성의 경험을 초국가적 맥락에 위치시키면 미국의 흑인 페미니즘을 달리 이해하게 된다. (...) 미국의 흑인 페미니즘은 미국의 흑인공동체가 발전하도록 노력하면서 백인에게 동일시하는 이상한 존재가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흑인여성의 공통적 관심과 우려사항을 거론하며 대륙을 가로지르는 흑인여성 의식운동의 일부이다.”

 

-많은 미국 흑인여성이 초국가적 연결을 보지 못하는 이유

: 오락물로 가득한 미국의 미디어, 미국 역사와 문화를 예찬하는 정규 교과과정 + 미국의 흑이녀성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가장 가깝게 연관된 두 집단(미국 페미니즘을 통제하는 백인여성, 흑인 지성계를 통제하는 흑인남성)과 맺는 관계 때문(“미국의 흑인여성은 백인여성, 흑인남성의 온정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 또한, 이 두 집단을 상대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너무 커서 미국에서나 초국가적으로나 다른 집단과 대화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을 정도다.” -> 그러므로 더더욱 연대해야)

 

-젠더화된 전지구적 아파르트헤이트에서, 흑인여성이 공유하는 특성

: 현대 흑인여성의 조직 상 공통점 - 흑인 민족주의로부터 영향 받음. 실천적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 처음에는 반식민주의와 반인종차별주의가 중요 의제, 점차 초국가적으로 신식민주의와 미국의 인종재분리에 따른 새로운 제도적 권력배치에 따라 흑인여성의 빈곤이 새롭게 조직되는 방식에 주목. 새로운 헌법과 법적 자유의 측면에서 괄목할만한 성취를 이루어냈음에도 여전히 빈곤과 씨름하고 있는 현실 때문.

 

미국의 흑인여성 사이에서 이러한 흑인 디아스포라 관점을 발전시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미국의 흑인여성은 영국, 세네갈, 브라질 등 여러 다른 국가의 흑인여성과 접촉한 적이 별로 없다. 부분적으로 이것은 역사적으로 미국 사회에 만연했던 고립적 시야 때문이기도 하다. 흑인여성 사이에 강력한 초국가적 조직이 부재한 것은 이런 종류의 흑인 페미니스트 의제가 아직 초기 단계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디아스포라 흑인여성이 서구 중산층 백인여성의 페미니즘에 대항하여 우리의 페미니즘을 정의하는 패턴은 흑인여성 사이에서 더욱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패턴이다. 이런 식의 접근은 또 하나의 이항대립을 강화시키는 것이긴 하지만, 이러한 대항적 언어와 이견의 진술을 한데 모아 살펴보면 흑인여성이 발전시킨 다양한 페미니즘이 어느 지점에서 합류하는지를 알 수 있다.”

 

공통적인 차이

미국의 흑인여성은 초국가적인 맥락에 위치시켜 보면, 그녀들이 미국 페미니즘, 흑인 디아스포라 페미니즘, 초국가적 여성운동을 포괄하는 양립적both/and 입장을 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흑인여성의 빈곤

“1980년대 미국의 외교정책과 국내정책은 (3세계의)“개발문제(1세계의)“사회문제가 동전의 양면임을 보여준다.“

“1980년대에 제3세계 국가의 부채위기를 경감시키기 위해 도입되었던 구조조정정책은 공공서비스와 식품과 연료 등 기본생활재의 보조금을 약화시키고, 대중교통, 주거, 수도, 전기, 의약품의 가격 인상을 불러왔으며, 정부재산을 민영화하고, 무역 자유화와 통화 가치절하를 초래했다. 이러한 정책이 유색인종을 그 과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극도로 인종화된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 이 두 목표[사회서비스 부문의 정부지출 줄임으로써 소비 감소시키기, 생산증가]는 가정에서 여성의 일, 노동력으로서 여성의 일을 둘 다 가치절하시켰다(Antrobus 1995). 이러한 점에서 구조조정은 젠더화된 조치였으며, 가정과 직장에서 여성의 시간과 노동 착취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에 바탕하여 실행되었다.”

아이두가 얘기했던 손에는 언제나 구걸 접시를 들고 있는 아프리카 여성과 비슷하게, 미국의 흑인여성을 복지수당 여왕으로 묘사하는 것도 비슷한 효과를 낸다(Lubiano 1992). 이 두 경우 모두에서, 흑인아동의 빈곤은 흑인어머니의 섹슈얼리티와 재생산능력에서 기인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아프리카 여성의 빈곤은 영속적이고 따라서 어떤 지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반면, 미국의 흑인여성은 정부가 지원을 해봐야 결국 영원히 구걸하고 살 것이므로 정부의 지원을 받을 가치가 없다고 여겨진다. 이 두 경우 모두, 최선의 조치는 그녀들이 계속 굶주리게 내버려 두는 것이라는 식이다.”

 

-흑인여성과 모자가정

미국의 도심지역에서 살아가는 모자가정은 도시에서 남성의 실업과 사회복지국가의 지원이 부재하거나 약화되면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집단, 연대, 횡단의 정치

미국 흑인여성의 집단적 경험이 지닌 복잡성은 부유한 백인남성을 전지구적 억압자로, 빈곤한 흑인여성을 힘없는 피해자로 그리고 다른 집단을 그 사이에 배치하는 단순한 위계질서에 도전한다. 인종, 젠더, 계급, 시민권상의 지위, 섹슈얼리티, 연령이 초국가적 지배 매트릭스에서 한 집단의 사회적 위치를 결정한다. 이러한 위치가 해당 집단이 광범위한 행동에 참여하는 범위를 결정한다. 다른 입장에 놓인 집단은 권력을 다른 방식으로 표출하기에, 집단마다 지배와 저항을 형성하는 데 참여하는 고유한 패턴을 지닌다. 다양한 집단적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횡단의 정치를 발전시키는 새로운 토대가 된다.

이탈리아 페미니스트가 처음 명명한 횡단의 정치transvesal politics라는용어는 정치적 행위자의 구체적인 입장을 고려한 연대를 강조한다. 니라 유발-데이비스Nira Yuval-Davis에 따르면, “횡단적 대화는 뿌리내림rooting과 전환shifting의 원칙을 바탕으로 한다. , 자신의 경험에 중심을 두면서도, 서로 다른 입장에 있는 상대에게 감정이입하여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 대화가 이루어지는 경계는 대화자가 아니라 대화 내용에 의해 결정된다” (1997, 88) 횡단의 정치에서, 흑인여성이나 여러 다른 집단은 정치적 행위자이며, 흑인 페미니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화자가 된다. 횡단의 정치에서 참여자는 자신의 특정한 집단적 역사에 뿌리를 두는 동시에, 다층적 차이를 넘어선 대화를 하면서 자신의 중심으로부터 나와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한다.”

-횡단의 정치가 제기하는 중요한 문제들:

세상을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데 이용되어 온 기존의 인식틀을 근본적으로 재사고할 것을 요청. 이항대립적 사유모델 거부. 둘 다를both/and 사유. “맥락에 따라, 개인과 집단은 어떤 상황에서는 억압자가 될 수도 있고, 다른 상황에서는 억압받는 자가 되며, 동시에 억압자이자 피억압자일 수도 있다.”

사회집단이 어떻게 조직되고 유지되는가를 규명. 집단을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이며, 유동적인 것으로 파악. “하나의 집단으로서 흑인여성은 인종, 계급, 젠더 정치의 특정한 집성체와 맞닥뜨리지만, 여러 다른 집단과 중첩되는 지점을 공유하기도 하고 이들과 유사한 경험을 하면서도 서로 다른 지점도 지니며, 그러면서도 여전히 흑인여성 고유의 특징도 지닌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식별가능한 집단으로서 미국의 흑인여성은 지배 매트릭스에서 혜택과 불이익을 동시에 받는다.”

집단의 내부기제와 관련. 연대의 구축을 위해선 자신이 속하 집단의 입장을 인식하고, 우리 집단이 처한 사회적 위치가 어떻게 다른 집단과 연결되어 형성되어 왔는지 보아야. 단순한 동정이나 공감이 아닌 다른 이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감정이입과 공감.

집단의 역사를 관계적으로 보는 인식. 미국 흑인여성의 집단적 역사는 다른 집단의 역사와 상호의존적.

일부 집단과의 연대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집단적 역사는 상호의존적이기는 하지만 동등한 것은 아니기 때문.

집단경험의 비등가성은 연대의 역동성을 낳음.

종합적으로, 흑인여성의 저항운동에 방향성을 제시하는 흑인 페미니스트 지식과 횡단의 정치는 중요한 특징을 공유한다. 이 둘은 서로 맞물려 작동하는 여러 억압과 이 억압에 저항하는 집단행동을 개념화한 교차성 패러다임에 의존한다. 이 둘은 서로 협력하면서 형성된 것이라 실재적인 권력관계에서 이 둘을 분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둘은 지식을 생산하고 연대를 구축하는 데 필수적인 협력과 대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11. 흑인 페미니즘 인식론

인식론epistemology란 지식에 대한 전반적인 이론을 말한다(Harding 1987). 인식론은 우리가 지식을 평가하는 데 사용하는 기준을 탐구하며,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왜 그렇게 믿는지 파고든다. 진실에 대한 탈정치적 연구와는 달리, 인식론은 권력관계의 문제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누구의 말을 믿으며, 왜 믿어야 하는지 결정하는 방식이 인식론의 주요 의제이기 때문이다.”

-패러다임: 사회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해석틀. ex) 교차성

-방법론: 어떻게 연구를 진행해야 하며, 해석 패러다임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광범위한 원칙.

 

유럽중심적 지식인증절차와 미국의 권력관계

-미국 주류 지식인증절차의 두 측면: 지식을 인증하는 사회제도, 그 제도가 떠받드는 서구 및 유럽중심적 인식론.

-지식인증절차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척도: 지식주장을 평가하는 전문가 집단의 구성원이 보통 엘리트 백인 이성애자이며 미국 시민권자 남성이라는 것. 전문가 공동체가 그들이 위치해 있는 인구집단이 기본적이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지식과 일관성을 획득함으로써 신빙성을 유지한다는 것 -> “엘리트 백인남성처럼 지나치게 동질적인 집단이 지식인증절차를 독점할 때, 이 두 가지 정치적 척도는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억누르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전문가 집단이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지식으로 보는 미국문화의 전반적인 풍토에는 흑인여성이 열등하다는 생각이 만연하기 때문에, 이 근본적 가정에 어긋나는 새로운 지식주장은 예외적으로 여겨진다(Kuhn 1962).” ex) 미국 흑인여성 학자의 경험

 

실증주의적 접근은 객관적인 보편화를 통해서 현실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연구자들은 다양한 가치와 경험, 감정을 지닌 존재이지만, 실증주의 접근법은 진정한 과학을 이루기 위해 연구자의 이성을 제외한 모든 인간적인 면모를 연구과정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여긴다 (...) 자신의 맥락을 지움으로써, 그들은 자신이 분리된 관찰자이자 자연의 통제자가 된다고 믿는다(Jaggar 1983; Harding 1986).”

-실증주의 방법론의 조건들: 대상과의 거리 유지. , 연구자는 온전한 인간적 주체성이 있는 주체subject”가 되고, 연구 대상object”을 대상으로 객관화하는 것(Keller 1985; Asante 1987) 연구과정에서 감정 배제(Jaggar 1983) 윤리와 가치는 연구 과정에서 부적합하기에 과학적 탐구를 위한 이유나 연구과정의 일부여서는 안 된다(Richards 1980). 지면 혹은 구술 상의 적대적 토론이 진실을 주장할 때 선호되는 방법이며, 가장 많은 공격을 견뎌내고 살아남는 주장이 가장 강력한 진실로 여겨진다(Moulton 1983).

-> “이와 같은 기준은 흑인여성으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대상화하고, 감정적 삶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흑인여성에 대한 지식을 발전시키려는 우리의 동기를 약화시키며, 우리보다 사회적, 경제적, 직업적 권력이 더 많은 사람들과 적대적 관계에 놓이게끔 한다.” => 대안적 인식론.

 

의미의 척도로서의 체험lived experience

-지식과 지혜

흑인여성은 사냥총으로 바퀴벌레를 잡으려고 하는이런 교육받은 바보들을 어떻게 상대할지에 대한 지혜가 필요하다. 종속집단의 일원인 흑인여성은 바보가 될 여유라곤 없다. 흑인여성은 타자로 대상화될 뿐, 흰 피부나, 남성됨 혹은 부가 제공하는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식과 지혜를 구분하고, 이 둘을 가르는 기준으로 경험 유무를 사용하는 것은 흑인여성의 생존에 핵심이다. 서로 맞물려 작동하는 억압하에서 이 구분은 무척 중요하다. 지혜가 없는 지식은 힘 있는 자에게 적합할지 몰라도 지혜는 종속된 자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체험, 경험을 근거로, 의미의 척도로, 지식주장의 평가 방식으로 사용.

몇몇 페미니스트 이론가는 이에 대해 여성들은 맥락적 규칙과 추상적 원칙 사이의 긴 장에서 행동을 결정하는 복합적인 관계의 연결망 안에서 사회화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Chodorow 1978; Gilligan 1982). 이러한 사회화 과정은 특정한 앎의 방식을 만들어낸다(Hartsock 1983a; Belenky et al. 1986). 이 이론가들에 따르면, 여성은 종종 두 가지 양식의 앎을 경험한다. 하나는 몸 안에서, 몸이 차지하는 공간에 위치한 앎이며, 또 다른 하나는 몸을 넘어 whswgksms 앎이다. 다층적인 형태의 어머니됨을 통해, 여성의 몸은 이 두 가지 양식을 매개하고, 추상적인 지식주장을 평가하는데 일상적인 삶의 체험을 사용한다(D. Smith 1987). 이러한 지식의 형태는 앎의 주체와 앎의 대상 사이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높은 권위자로부터가 아닝라 여성 자신에게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추상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세상에서 직접적으로 경험되는 것이다.”

흑인교회와 가족은 여성중심적이고 아프리카의 영향을 받은 공간이기에, 미국 흑인여성은 전통적으로 흑인 페미니즘 인식론의 이러한 측면에서 상당한 조직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백인여성은 체험을 중시한다고 해도, 백인 통제 하에 있는 다른 사회제도나 백인가족으로부터 비슷한 정도의 지원을 받기가 힘들며, 더욱이 개인적인 것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백인 중산층 가족일 경우에는 특히 더 어렵다. 흑인남성 역시 흑인 시민사회에 참여하지만, 흑인여성의 자매애의 일부가 되지는 않는다. 흑인 여성이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그녀들은 그 누구보다 수월하게 연결성(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앎의 주요 방식으로 삼을 수 있다. 우리는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가 다른 누구보다도 많았고, 거기에 더 많이 의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대화를 통해 지식주장을 평가하기

흑인여성은 새로운 지식주장을 할 때 다른 이들에게서 고립된 채로 주장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다른 일원들과 대화를 통해서 지식을 발전시킨다. 지식주장을 평가할 때 대화를 사용한다. 이러한 방식에 깔린 주요 인식론적 가정은 분리가 아닌 연결성이 지식인증절차의 핵심 요소라는 것이다(Belenky et al. 1986, 18).”

-이 때의 대화는 적대적 논쟁과 다름. 부름과 응답call-and-response 담론 양식. “이러한 상호 네트워크의 근본적인 조건은 모든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이다(Smitherman 1977, 108). 어떤 생각이 시험대 위에 놓이고 인증받기 위해서는 그 집단의 모든 구성원이 참여해야 한다. 그 생각에 강력히 반대하면서 참여를 거부하는 것은 특히 남을 속이는 행위로 여겨진다(Kochman 1981, 28).”

-흑인여성은 가족, 교회, 다른 공동체모임에서 중심적 역할을 한 역사가 있기에 흑인 페미니즘 인식론의 한 측면으로 대화를 내세울 수 있었음

-지식주장을 평가할 때 대화를 사용하는 것은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더 빈번하게 나타나는 경향인지도. ex) 남성은 분리, 여성은 연결성에 기반을 둔 자율성의 방식을 추구하도록 사회화됨. 과학자와 철학자의 인식론에는 흔히 시각적 은유가 사용되는 반면 여성들은 자신의 인식론적 주장의 바탕을 목소리를 찾고 말하고 듣는 행위에 두곤 함.

 

보살핌의 윤리

-보살핌 윤리의 세 가지 핵심요소: 개인의 고유성에 대한 강조(개인적 표현성) 대화를 통한 감정 표현이 적합(감정의 가치) 공감능력 키우는 것(공감능력)

-대화와 보살핌의 윤리가 지식주장을 평가할 때 서로 상호작용한다는 점의 실례: 흑인교회에서의 부름과 응답 양식

-흑인공동체가 표현성과 감정을 중시하는 것은 서로를 연결하는 앎의 행위에서 인간성을 중시하는 페미니즘 시각과 유사. 페미니스트 언칙과 아프리카의 영향을 받은 원칙이 맞물리는 것은 보살핌의 윤리에서 특히 잘 드러남.

 

개인적 책임의 윤리

한 개인의 지식주장에 대한 평가는 그 사람의 성격, 가치, 윤리에 대한 판단이기도 하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많은 흑인은 사적인 견해를 파고드는 것은 토론의 범위에서 벗어난다는 지배적인 통념을 거부한다. 대신, 그들은 모든 표현된 견해와 행동은 핵심적인 믿음의 집합에서 나온다고 보고, 핵심적인 믿음은 사적인 것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Kochman 1981, 23).”

 

전통적인 흑인교회의 예배는 이러한 인식론의 네 가지 측면 모두에서 나타나는 상호작용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예배는 성경구절과 이야기를 읽을 때 사용하는 이성과, 이성을 사용하는 데 필수적인 감정 사이의 대화 그 이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대화가 존재하는 이유는 보살핌의 윤리가 실재하는 체험을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감정이나 윤리는 이성에 종속되지 않는다. 대신, 감정과 윤리, 이성은 지식주장을 평가할 때 서로 연결되어 있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이러한 대안적 인식론에서 지식인증절차의 중심에는 가치가 놓여있고, 지적인 탐구는 항상 윤리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네 가지 측면을 정치적인 사회정의 기획에 연결할 때, 우리는 흑인 페미니즘 사상과 실천을 위한 틀을 형성할 수 있다.”

 

지식인 주체인 흑인여성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발전시키려는 흑인여성이 마주치는 핵심집단의 상호 모순적인 인식론적 기준: 흑인 페미니즘 사상은 첫째로, 보통의 흑인여성에게 인정받아야. “이 집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흑인 페미니스트 지식인은 자신의 저작의 내용을 일상에서도 치열하게 옹호해야 하고, 저작의 결과에 책임을 지며, 그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내거나 경험했어야 하고, 또한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람들과 열린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둘째로, 흑인여성 학자들의 공동체에서 인식론적 기준을 만족시켜야. “역사 이래로 흑인여성은 흑인 페미니즘 인식론에서 얻은 감성을 학문에 활용했을 터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학문적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종종 이 인식론을 부정해야만 했다. 흑인여성의 삶을 연구한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경력은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더 많은 흑인여성 학자가 흑인여성의 삶을 연구하겠다고 선택하면서 자신들의 연구틀에 흑인 페미니즘 인식론의 요소를 활용하고 있다.”

셋째로, 아직도 여러 지식인증기제를 통제하고 있는 지배집단의 인식론적 기준을 만족시켜야. 그러려면 유럽중심적 지배적 인식론을 사용해야만. “여기에서 흑인여성이 마주하는 어려움은 그들 역시 백인남성 인식론에 통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이보다 더 큰 어려움은, 실재로 존재하는 대안적 흑인 페미니즘의 앎의 방식을 목격하고 소중히 여기고 활용하기 위해서 이러한 지배적 인식론의 헤게모니 권력에 저항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흑인여성 가사노동자에게 흑인가족과 백인가족을 오가는 것이 특별한 문제였듯이, 흑인 페미니스트 사상가에게 경쟁관계에 있는 서로 다른 두 해석 공동체를 오간다는 것은 비슷한 인식론적 문제를 가져온다. 흑인 여성 학자, 특히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생산하려는 학자가 마주하는 딜레마는 다층적 해석 공동체에 연루됨으로써 생기는 어려움이다. 그 중 한 집단의 기준에 적합한 지식주장이 다른 집단에게는 그렇게 번역되지 않을 수도 있다.”

흑인여성 학자들이 흑인여성의 관점에서 흑인 페미니즘 인식론에 타당한 진실을 다른 해석틀로 번역하려는 시도가 의미 없다는 사실에 직면한다면, 다른 선택지를 볼 수 있는 창이 열린다. 인식론의 차이를 넘어 번역할 수 있는 보편적인 지식주장을 찾아내려고 애쓰는 대신, 흑인여성 지식인은 흑인여성의 관점을 다시 정교화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흑인여성의 관점을 다시금 정교화하는 것은 흑인여성의 일상적 삶이 지닌 특수성으로부터 보편적인 인간적 측면을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진리를 향하여

이러한 유사성에서 우리는, 서로 맞물려 작동하는 억압이 실제로 드러나는 방식은 집단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띠더라도, 종속집단이 활용하는 인식론에서는 동질성을 찾을 수 있음을 본다. (...) 따라서 흑인 페미니즘 인식론은 종속집단들이 자신의 힘을 기르고 사회정의를 향해 가는 지식을 창조하는 방법을 우리가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흑인여성의 관점과 이에 따른 인식론이 백인, 흑인남성, 혹은 다른 집단과 어떻게 다른지를 강조하기보다는 흑인여성의 경험이 다수의 인식론과 연결되는 지점을 탐구하는 구체적인 사회적 입장으로 보는 것이 더 유용하다.” -> 더하기 모델additive model에 저항 가능.

대신, 흑인여성을 포함해서 자신만의 고유한 관점이 있는 집단이 그 관점에 따른 인식론적 접근법으로 진리라고 인증한 생각은 그 자체로 가장 객관적인진리가 된다. 그 집단이 흑인여성이든, 흑인남성, 라틴계 레즈비언,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 푸에르토리코 남성이든 마찬가지이다. 각 집단은 자신의 관점으로 말하고, 부분적이고 정황적인 지식을 서로 나눈다. 그러나 각 집단은 자신의 진리를 부분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에 그 지식은 미완성 상태이다. 각 집단은 자신의 관점의 고유성을 희생하거나 타 집단의 부분적 관점을 억누르지 않고, 다른 집단의 관점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 보편성이 아닌 부분성은 서로의 얘기를 들을 수 있는 조건이다. 자기 자신의 입장을 온전히 소유하지 않은 채 지식을 주장하는 개인이나 집단은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지식주장을 하는 집단보다 신뢰성이 떨어진다.“

대안적인 지식은 그 자체로 기존 지식에 위협적이지 않다. 이러한 지식은 흔히 무시되고, 폄하되고, 기존의 패러다임에 흡수되거나 주변화된다. 이보다 훨씬 위협적인 것은 대안적 인식론이, 힘 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지식주장을 인증하는 과정에 대항하는 것이다. 만약 지식을 인증하는 데 사용하는 인식론을 의문에 부친다면 기존의 지배형식에서 인증받았던 모든 지식이 의심받게 된다. 대안적 인식론은 기존의 인가받은 모든 지식에 대항하여, 과거에 진리라고 여겼던 것이 대안적인 진리인증 방법으로도 여전히 그 시험에 통과할 수 있는지 물음을 제시한다. 흑인 페미니스트 인식론을 사용한 흑인여성의 자기정의에 따른 관점은 현재 진리라고 여기는 것뿐만 아니라 진리에 이르는 과정 자체에 질문을 던진다.”

 

 

12. 힘기르기Empowering의 정치를 향하여

-흑인 페미니즘 사상은 힘기르기의 정치에서 지식이 중요하단 걸 보여줌: 부정의한 권력관계에 대한 생각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꿈. “인종,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 민족이 서로 맞물려 작동하는 교차하는 억압 패러다임과, 그 패러다임에서 흑인여성의 개인적이고 집합적인 행위주체성을 이론화함으로써, 흑인 페미니즘 사상은 지배와 저항의 사회적 관계를 재개념화한다.” 지식과 권력의 역학에 대한 인식론 논쟁을 지속적으로 다룸. 새로운 지식보다, 인식론을 만들어내는 것은 더 큰 의의 있음.

-미국 흑인 페미니즘 사상이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하여 실천되려면, 권력과 힘기르기를 재정의해야.

-> 그걸 위해 권력에 대한 두 가지 주요 접근법을 종합: 억압과 저항 활동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사회 변화의 여부가 인간 행동의 영역 외부에 놓여 미리 결정된다고 보지 않고, 변화란 행위주체성에서 나온다고 보는 것)를 보는 것. 권력은 집단의 소유물이 아니라, 특정한 지배의 매트릭스 안에서 순환하는 무형적 실체이며 다양한 위치에서 개개인들이 맺는 관계라는 것. 지배의 매트릭스 안에서 개개인의 주체성이 인간의 행위성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강조.

권력에 대한 이 두 가지 접근법은 흑인여성과 사회정의 기획을 추구하는 다른 사회집단에게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두 가지 방식을 보여준다. 변증법적 접근은 자기정의를 통하여 집단 내부에 바탕을 둔 관점을 발달시키는 데 지식이 중요하게 기여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억압에 저항하려면 집단의 단결이 필요한데 지식은 이러한 단결을 가능케 한다. 반면, 주체성을 중시하는 접근은 지배와 저항이 개인적 행위주체성을 형성하며, 또한 역으로 행위주체성에 의한 지배와 저항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의식의 문제가 이 둘을 연결하는 지점이다. 전자에서, 집단의식은 흑인 페미니즘 사상과 같은 대항적인 지식을 발전시킴으로써 드러난다. 후자의경우, 개별적인 자기정의와 행동변화는 매일의 체험을 둘러싸고 변화하는 의식과 함께 일어난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은 이 두 가지 의미의 의식을 모두 포함하며, 어느 한 쪽도 다른 쪽 없이는 충분하지 않다.”

 

흑인 페미니즘과 여러 다른 사회정의 기획은 이 두 접근법에 바탕을 두지만, 동시에 이를 넘어설 수 있는 권력에 대한 언어를 필요로 한다. 힘기르기의 정치를 이해하고자 하는 여러 사회정의 기획은 공통적이고 유용한 어휘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특정한 지배 매트릭스를 단일한 권력체계의 틀로 보거나, 교차하는 억압의 틀로 보든 간에, 그것은 서로 긴밀히 연결된 권력의 네 가지 영역을 통해 조직화된다. 네 가지 영역이란 권력의 구조적, 훈육적, 헤게모니적, 대인관계적 영역이다. 각 영역은 특정한 목적이 있다. 구조적 영역은 억압을 조직하고, 훈육적 영역은 그 억압을 관리한다. 헤게모니적 영역은 억압을 정당화하며, 대인관계적 영역을 매일매일의 체험과 개개인의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

이와 동시에, 미국의 사회부정의에 반대하는 개인이자 집단의 일원으로서 흑인여성이 취하는 저항전략은 미국의 지배 매트릭스와 권력의 각 영역 안에서 그들의 위치를 반영한다. 예를 들면, 훈육적 영역은 규칙에 기대어 지배를 관리한다. 이 규칙을 깨뜨리거나 변형하는 흑인여성, 그리고 규칙을 바꾸기 위해 권위 있는 자리에 오르는 흑인여성은 이 훈육적 영역에서 힘을 얻는다. 따라서, 미국 흑인여성의 경험과 생각은 이 같은 권력의 네 영역이 지배를 형성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 영역들이 흑인여성의 힘을 기르는 데 잠재적이고도 실재적인 현장이 되어왔음을 보여준다.”

 

-권력의 구조적 영역: 사회제도가 오랜 시간에 걸쳐 흑인여성의 종속을 재생산하도록 어떻게 조직되었는지에 대한 영역. 서로 맞물리는 대규모 사회제도를 강조.

권력의 구조적 영역 안에서, 특정집단을 총체적으로 배제하는 미국의 사회제도가 변하지 않고서 개인과 집단이 힘을 기르기는 불가능하다. 이 영역은 규모가 크고 전체 체계를 포괄하며, 긴밀히 연결된 여러 사회적 기관을 통해 오랫동안 작동해 왔기에, 이러한 규모의 분리는 단시일 내로 변할 수 없다.” -> 변화 by 대규모 사회운동, 전쟁, 혁명 / 법률 개정을 통한 개혁적 변화

이런 법적 승리는 필수적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흑인여성을 사회적 배제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은 점점 더 흑인 여성에게 불리하게 이용되고 있다. 흑인 페미니스트 법학자 킴벌리 크렌쇼Kimberle Crenshaw는 법 안의 공정한 처우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설명하면서 색맹의 수사가 1954년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판결로 없어진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신, 색맹 수사는 개개인을 평등하게 대우하고 차별하지 않는 것으로 다시 개념화되었다. 색맹 수사에서의 평등이란 개개인을 똑같이 대우하는 것인데, 이는 과거 차별의 결과나 현재 지속되는 다른 영역의 차별로 인해서 개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차이와는 무관해 진다. (...) 이 논리 하에서, 평등으로 가는 길은 각 개인이 학교와 직장에 들어갈 때 차이를 설명해줄 수 있는 인종과 젠더를 비롯한 역사적 차별의 표시를 무시하는 길이 되었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유의미한 차이를 부정하는 젠더 중립성의 수사처럼, 색맹 수사는 구조적 영역 안에서 흑인여성이 취한 중요한 저항전략을 무력하게 만든다. 차별이 존재하고, 정책과 절차가 겉보기처럼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흑인여성은 공짜로 특별한 대접을 원하는 불평불만분자로 쉽사리 무시된다. 인종 간에 내재하는 어떤 차이도 없다는 색맹론이나 젠더 간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는 젠더중립론에서, 차별적 대우로 인한 인종 혹은 젠더 차이를 거론하기는 어렵다. 이 논리는 미국의 지배 매트릭스가 과거에 인종과 젠더를 노골적으로 차별했지만 지금은 그 차이를 무시하기 때문에 평등한 대우를 하고 있다고 가정한다.”

-권력의 훈육적 영역: 관료적 위계와 감시 기술에 의지하여 지배하며 권력관계를 관리.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적이거나 성차별적인 사회정책을 통해서라기보다는, 조직을 운영하는 전반적인 방식을 통해서 이루어짐(Foucault 1979). -> 가장 핵심적 전략은 관료제 내부로부터 저항하는 것. 그러나 이는 허락된 지위를 황용하여 사회정의를 추구하도록 해줌과 동시에, 권위직에 진입하기 위해 훈육적 통제에 크게 노출되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적 위계를 더욱 공고하게 할 위험성 지니고 있음.

-권력의 헤게모니적 영역: 권력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의 정당화를 목적으로. 이데올로기와 문화를 교묘하게 다루며, 구조적 영역의 사회제도와 훈육적 영역의 조직적 실천, 대인관계 영역의 일상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연결하는 역할.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이데올로기는 대중이 믿음을 잃는다면 효력을 상실한다. 따라서 권력의 헤게모니적 영역의 중요한 특징은 미국의 지배 매트릭스에 대한 지지를 유도하기 위해 항상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헤게모니적 이데올로기가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엘리트 집단의지지 뿐 아니라 종속집단의 인정 역시 필요하다. 흑인 페미니즘이 사회정의를 추구하기 때문에 기존의 권력위계를 위협한다는 것을 인식한 후, 지배집단은 조직에서 흑인여성을 포함하는 척 할 필요가 있다. 제도적 차별과 연관된 사회적 배재의 역사적 양식을 뒤집는 동시에, 우리의 힘을 빼앗아야 한다.”

권력의 헤게모니적 영역이 지닌 중요성은 생각과 이미지, 상징, 이데올로기를 교묘히 조정해서 의식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이처럼 생각의 힘이 중요해지는 상황에선,s, 과거 흑인여성의 자기정의를 위한 투쟁이 그러했듯, “자유로운 사고의 힘을 되찾으려는 노력이 저항의 중요한 측면이다. 서로 맞물려 작동하는 여러 억압이 개개인의 주체성의 다양한 측면을 조종하려는 흐름을 뒤집는 것이 저항의 주요 목적이다. 따라서 헤게모니적 영역은 단순히 지배문화의 헤게모니적 이데올로기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의식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대항 헤게모니적 지식을 생산하는 핵심적인 장소이다.”

헤게모니적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일은 필요하지만 그런 비판은 기본적으로 반작용에 그친다(Collins 1998a, 187-96). 따라서 권력의 헤게모니적 영역 안에서 힘기르기의 두 번째 측면은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것이다.”

-권력의 대인관계적 영역: 사회조직의 미시적인 수준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처럼 일상화된 매일의 실천을 통해 기능. 이 같은 실천은 체계적, 반복적, 너무나 친숙해서 존재 자체를 눈치채지 못할 수도. -> 저항전략은 수많은 형태 가짐.

한 마디로, 각 집단은 근본이라고 가장 편하게 지적할 수 있는 억압을 내세우고, 나머지 다른 모든 종류의 억압은 그보다 덜 중요한 것으로 분류한다. 억압이 이 같은 모순으로 가득 찬 이유는, 지배 매트릭스 안에서 순수한 피해자와 억압자는 오직 극소수라는 점을 이러한 접근법으로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각 개인은 모든 이의 삶을 틀짓는 다층적 억압 체계 안에서 각각 다른 정도의 불이익과 특권을 부여받는다.

 

힘기르기의 정치

사회정의 기획인 흑인 페미니즘을 위해서는, 힘기르기에 대한 복합적인 개념화가 이루어져야 한다.지배 매트릭스가 인종, 젠더, 계급, 섹슈얼리티, 민족과 같은 특정 축을 따라 형성되는 방식과 서로 긴밀히 연결된 권력의 구조적, 훈육적, 헤게모니적, 대인관계적 영역을 통해 작동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하면, 우리는 억압과 저항활동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가 단순히 억압자와 억압받는 자라는 구도보다 훨씬 복합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을 택할 때 흑인여성은 어떤 억압의 형식을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거나, 운동의 특정 방식을 다른 것보다 더 급진적인 것으로 쉽게 이름붙이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새로운 연결점을 찾기 위한 개념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억압이 복합적인 만큼, 힘기르기를 위한 저항 역시 복합적이다.”

다른 한편 흑인여성 조직에서 주변성의 가치가 영원한 것처럼 여기면서 그것을 과시하기만 할 때, 내부의 외부인 지위가 상품화될 때, 흑인여성의 힘기르기는 오히려 저해될 수도 있다. 영원한 내부의 외부인이 되는 것은 힘기르기로 이어질 수 없다. 내부의 외부인이라는 정의 자체가 주변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각 개인은 자신의 개인사에 따라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만 개인사가 본인이 생각하는 것만큼 고유한 것은 아니다.”

흑인여성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대상화와 상품화, 착취를 영속시키는 지식을 거부해야 한다.”

흑인여성의 힘기르기는 미국 흑인 페미니즘을 흑인여성의 힘기르기와 초국가적 맥락에서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여러 기획으로 다시 살려내는 데 있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이 흑인여성의 억압과 흑인여성의 저항활동 사이에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것은 지배 매트릭스와 이와 연관된 권력의 영역이 인간의 행위주체성에 반응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상적 세계관에서 세상은 단순히 생존하거나 끼어들거나 적응하는 식의 목적이 있는 장소가 아니라, 우리가 주인의식과 책임을 느끼는 공간이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존재는 아무리 혹독한 상황에서도 언제나 선택하고 행동할 힘이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가 항상적인 구성 과정에 있다는 인식은 그 변화를 이끌어낼 개인의 책임감에 주목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 개개인의 힘기르기도 중요하지만, 오직 집단적인 행동을 통해서만 사회정의를 위해 필요한 지속적인 제도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역시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