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경계 바깥의 삶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안정된 기반, 세상에의 신뢰라든지 미래에의 전망 따위 것들은 그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말라붙어 가는 자신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영화 속 주인공 소현이 붙잡은 것은 이야기였다. 꿈 같은 이야기. 사실과는 다르지만 진실을 담고 있는 논/픽션.
그러나 나는 소현이 만든 꿈에 가슴이 시리었다. 스쳐지나갔을 뿐인 인연들을 중요한 등장인물로 배치시키고, 이야기의 서문과 결말을 모두 타인에게 들은 말로 채워낸 그 공허함이. 삶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환상 안에서조차 제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내는 깊이 모를 절망이.
아마도 유서였을 소현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들리게 되었다면. 이 서툰 아이는, 시신 유기한 장소를 다그침받는 상황에서조차 "니 이야기 말고 묻는 말에 대답을 하라고!" 한마디가 못견디게 슬펐던 이 아이는, 자신의 아픔을 담아 최대한 매혹적으로 포장해낸 이야기를 건네며 떨리는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일테다. 이야기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타인 없이 홀로 서 있을 최초의 일말의 발판을 얻었다는 의미이지만, 이야기는 또한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려지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모래성 같은 발판은 쉬이 무너지고 흘러내릴 것이므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꿈 같은 시간을 원해요. 나는 관계가 필요해요. 당신, 나를 사랑해줘요. 제인은 이 말(진실, 진심)을 대신해주기 위한 인물이기도 한 것이다. "개같이 불행한 인생 혼자 살아 뭐하니?" 하고.
2017. 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