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해방 길찾기②] 여성혐오에 맞선 인정 투쟁: 메갈리아, 강남역 10번 출구, 그리고 그 이후
[여성해방 길찾기②]
여성혐오에 맞선 인정 투쟁: 메갈리아, 강남역 10번 출구, 그리고 그 이후
*** 이전 글은 여기서: [여성해방 길찾기①] “여성혐오”, 여성에 대한 문화적 부정의(injustice)의 다른 이름
문화적 부정의에 맞서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화적 무시가 잘못된 분배로 환원되지 않는 이상, 사회경제적 재분배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이 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되리라 보기는 어렵다. 문화적 부정의에 맞서기 위한 별도의 개선책이 요청된다. 자신의 정체성, 생활 방식, 사회적 기여도를 폄하하는 것에 맞선 투쟁. 그동안 대체로 간과되었던, 잘못된 분배로 환원되지 않는 제도화된 무시의 형식들에 대한 문제제기와 저항. 즉, 무시‧경멸‧모욕‧비난으로 인한 손상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인정(recognition) 투쟁’이라는 별도의 집합적 운동이 필요하다.
이를 ‘여성혐오’—여성에 대한 문화적 부정의—에 적용시켜보면, 남성성에 특권을 부여하고 여성에게 동등한 존중을 부여하지 않는 문화적 규범들을 변혁시키기 위한 인정 투쟁의 필요성이 도출된다. 한국사회는 그동안 여성에 대한 문화적 부정의에 문제제기하려는 목소리를 어떻게 잠재워 왔는가? ‘여성혐오 원년’의 도래 이후, 문제제기의 방식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현재는 투쟁의 구도와 양상이 어떠한가? 그리고 이제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한국사회에서 여성혐오에 맞선 인정 투쟁이 진행된 과정을 살펴보고, 그것을 기반으로 여성해방의 길을 진지하게 탐색할 때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문화적 부정의에 대한 여성주의적 문제제기에 사소화와 부인으로 응답해왔다. 여성에게 적대적인 직장 문화 때문에 힘들다고? 여자들이 대화에 끼기 힘든 건 있을 수 있는데 뭐가 중요해, 직장에서는 일만 잘하면 성공하는데. 여성 아이돌의 성 상품화? 남성 아이돌들도 노출 많이 하잖아, 그리고 에이핑크 같은 아이돌은 노출도 별로 없는데 성적 대상화라니 오버하지 마. 고정관념이나 성별 분업 자체가 잘못된 거라고? 효율성을 추구하려다 보면 그 정도는 어쩔 수 없을 것 같은데,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 같다...... 여성에 대한 문화적 부정의가 존재하지 않거나, 설령 존재한다고 해도 피해가 경미한 정도라는 주장은 곳곳에서 관찰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의 여성혐오적 언행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여자가 아니라 김치녀만을 비난한 것이므로 여성혐오가 아니다’라는 부정, ‘웃자고, 재미로 한 것인데 무엇이 큰 잘못이냐’는 사소화.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자라서가 아니라 정신분열증 환자라서 죽인 것이다’라는 부정, (남성에 의해 살해당했던 수많은 여성들의 존재는 비가시화하면서) 수많은 죽음들 앞에서의 평등을 요청함으로써—예를 들어 ‘천안함 용사들의 죽음도 함께 기립시다’와 같이— 여성 1명의 죽음을 사소화.
이러한 은폐의 시도는 일상에서뿐 아니라 학술적인 장에서도 때때로 드러난다. 재화의 불균등한 분배와 같이 수치화될 수 있는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여성 정체성에 대한 무시와 그로 인한 피해는 쉽게 반박된다. 무시‧경멸‧비하 등은 현재에 이르러서는 거의 모두 교정되어 더 이상 남아있지 않거나, 극히 일부분만이 잔존하고 있다고 말해지곤 한다. 그리고 잔존한 문화적 부정의가 있다고 해도, 경제적 부정의로부터 파생된, 따라서 상대적으로 사소하고 덜 중요한 문제로 취급된다. 심지어는 계급과 무관하게 여성 일반이 경험하는 공통적인 문화적 피해라는 것은 허구적인 상상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지거나, 문화적 부정의에 맞서기 위한 움직임이 단순한 이해관계 집단의 투쟁으로 격하되기도 한다. 요약하자면, 고통 받는 약자에게 ‘너는 약자가 아니’라고 언명하는 비열하고 잔인한 짓이, 전사회적으로 자행되어 왔다.
따라서 메갈리아를 필두로 시작된 문화적 무시에 대한 반발이, 일단 문화적 부정의가 실재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데에서 시작했다는 점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메갈리아의 의의는 첫째, 메갈리아는 그동안 억압받고 차별받아왔던 여성들이 자신들의 억눌린 분노를 표출할 공간을 마련해주었다는 것이다. 둘째로, 참여자들로 하여금 성토와 자기경험발화를 통해 지지와 연대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소라넷 폐지와 몰카 반대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일종의 효능감도 경험하게 만들었다.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남성 중심적 문화규범과 그 불합리성을 자각했을 뿐 아니라, 동지의 존재와 연대의 힘을 경험한 이들은 여성주의적 주체로 형성되었다. 강남역 살인사건에 이르러 집합적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자발적인 조직화와 실천이 온/오프라인에서 모두 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언어와 힘을 모두 확인했던 이 때의 경험에 빚진 것이 많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지점에 대한 분석은 이미 많이 있어왔으므로, 더 이상 자세히 적지는 않겠다.
그러나 “미러링을 통해서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여성혐오적인 것이었는지 깨닫게 하고자 한다”는 취지를 밝혔다는 데에서, 메갈리아는 세 번째 의의 또한 갖는다. 사회적인 인정 투쟁의 요소도 일부 포함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메갈리아의 활동은 계층을 막론하여 집결한 여성들의, 여성을 향한 구조화된 무시와 경멸이 분명하게 존재하며, 그로 인한 피해는 전혀 사소하지 않으며, 따라서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내포한 것이었다. 이 세 번째 의의로 인해, 메갈리아를 단순한 커뮤니티 활동이지만 몇 가지 긍정적 효과가 수반되었다고 평가할 것이 아니라, 인정 투쟁이라는 운동적 성격이 혼재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거치면서 이러한 열기는 더욱 분명하게 인정 투쟁의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문화적 무시의 오랜 ‘전통’ 위에 공격적 여성혐오라는 ‘새로운 주자’가 등장하고, 드디어 그 연속선 상에서 한 여성이 무참히 살해되었을 때, 여성들은 더 이상 자신을 둘러싼 성차별적 문화 규범들에 눈 감을 수 없었다. 높아진 교육 수준, 더불어 높아진 경제력, ‘나는 가족에게 희생했으나 너는 나처럼 살지 말아라’라는 한국적 가족주의의 수혜, 거기에 소라넷 폐지와 몰카 반대 캠페인을 주도한 연대의 경험이 더해지자, 여성들은 더 이상 해봤자 안 될 것이라는 회의주의에 빠져 있을 수 없었다. 여성에 대한 문화적 부정의를 선명하게 드러내고(“여성혐오 범죄”, “우연히 살아남았다”, “여자라서 죽었다”, “살女주세요, 살아男았다”), 이를 사소화하거나 부인하려는 움직임에 다방면으로 맞서고(강남역 10번 출구 자유발언대에서의 피해경험 발화, 한국여성의전화의 여성폭력/여성살해 통계치 인용, 혹은 ‘맨스플레인’ 그만하고 모르면 “닥치라”는 말로라도), 문화적 무시가 손상하고 폄훼하려고 하는 지점에 맞섰다(밤길 되찾기 행진, “살해당한 여성의 꿈은 무엇이었는가”, 자매애의 재조명 등).
더 이상 주류사회가 사소화와 부정을 통해 문제제기의 목소리를 묻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분명한 초점을 지닌 움직임이었다. 대중적 참여—참여자의 숫자뿐 아니라 양상도 그러했다. 기존에는 소수의 페미니스트와 여성단체가 주도해서 의제를 설정하고 판을 짰다면, ‘강남역 10번 출구’는 자발적으로 제기되고 조직된 운동이었다—가 있었으며, 그럼에도 구심력 있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여성에 대한 문화적 부정의에 맞서기 위한 집합적 움직임이, 한국사회에 이토록 커다랗게 일어났던 적이 있었던가? 이는 인정 투쟁의 본격화였고, 하나의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본격화되자, 인정 투쟁은 성 대결 구도의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메갈리아에 대해서 쏟아졌던 ‘남성혐오’라는 비난이 강남역 10번 출구를 향해서도 유사하게 행해졌으며(‘분열을 조장한다’, ‘일반화하지 말라’), 심지어 오프라인에서의 충돌까지 있었다. 일베, 남성연대 등이 ‘천안함 용사들의 죽음을 기린다’는 화환을 보내거나 주토피아를 차용하여 ‘남자, 여자 모두 친하게 지내요’라는 피켓을 들고 나섰다. 추모행사가 욕설과 위압적인 분위기 조성으로 위협당하거나 코끼리 옷을 입은 이가 일베 회원임이 드러나자 폭행 당하는 등, 물리적 충돌도 발생했다. 강남역 10번 출구 앞은 여성에 대한 무시‧경멸‧비하의 역사적‧구조적인 면을 폭로하려는 측과 살인사건을 일회적인 일탈로 묻으려는 측이 격돌하는 투쟁의 장이 되었다. (이를 두고 “추모 행사가 개싸움으로 변질되었다”는 한탄이 자주 눈에 띄었으나, ‘강남역 10번 출구’ 활동의 본질이 인정 투쟁이었음을 간과한 언설이라 하겠다.)
그 이후에도 양 진영의 대결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소재는 다양했어도 여성들의 목소리는 분명하다; ‘여성적인 것’이라고 여겨지는 생리를 불결하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보지 말라, 노출여부와 무관하게 여성 아이돌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시선을 멈춰라, 여성을 성폭력/폭력을 휘둘러도 되는 무가치한 존재로 보지 말라. 그리고 이에 대한 문제제기의 목소리를 틀어막지 말라. 이미 최초의 메갈리아 사이트는 죽고 없고, 분화된 여러 사이트들과 새롭게 등장한 그룹들이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스펙트럼에서 외친 말들은 인정 투쟁의 일환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즉, 여성에게 부과되어 있는 부정의한 문화적 규범들의 존재를 시인하고, 여성이 그러한 무시와 경멸을 받을 이유가 없는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변화하라고 소리 높였다.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메갈리아, 강남역 10번 출구, 그리고 그 이후 일련의 활동들은 여성혐오에 맞선 인정 투쟁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그/그녀들의 요구사항이 원활하게 수용되고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와 같은 거센 반발의 원인은 무엇인가? 기득권을 빼앗길 것에 대한 공포 때문에 발생하는, 투쟁의 과정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반발인가? 아니면 반대 측의 주장처럼 요구사항을 표출하는 방식이 ‘폭력적’이었기 때문인가? 전자라면 지금대로 더 강하게 싸우기만 하면, 후자라면 표출 방식만 온건하게 변화시키면 여성해방이 이루어질 것인가? 지금의 뜨거운 열기는 분명 지난날의 고립된 고요함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만족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