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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기타

2020.5.25. 이용수님 2차 기자회견 구두발언 (녹취록)

*기자회견에서의 구두 발언 전문을 전달하는 기사를 찾기 어렵고, 간혹 있더라도 중간 생략이나 가필이 되어 있기에 만들었습니다. 급하게 녹취를 풀어서 완벽하지 않습니다. 참고만 해주세요.

*문단은 제가 임의로 나눈 것입니다.

*비언어적 표현은 소괄호 안에 적었습니다 ()

*가독성과 의미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서 제가 임의로 덧붙인 부연설명은 대괄호 안에 적었습니다 []

 


여러분 (오른손에 쥔 문서를 들어보이며)이거는, 이거는 전에, 먼저 첫 모임... {남자 목소리 : 마이크, 마이크 쓰셔야죠.} (도우미가 와서 마이크를 건넴) 첨에 기자회견 할 때, 이것이 있습니다, 있는데. 이것을 제가 읽으기는 좀 힘듭니다. 해서 여러분들이... (도우미가 마이크를 고정대에 꽂음) 이것을 전부 그, 카메라로 찍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부 배끼 없는데. {남자 목소리 : 파일로, 이건 파일로 저희가 돌리면 되니까...} (끄덕) 그래서 이것은 이따가 인제 돌려드리면 되고, 돌려 드리라고.

 

(자세를 고쳐 앉음) 제가... 두 번째 이제 기자회견을 합니다... 누구를 원망하고, , 잘못했다고 하고, 하는 거는 제가 첨에 기자회견 할 때 했고, 한데. 너무도 보니, -이 생각되 못하는 것이 나왔습디다. 그것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검찰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 정신대대책협의회입니다. 정신대대책협의회는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입니다. 그런데 공장 갔다 온 할머니들 하는 거는 정신대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마는 (안경을 올려씀) 공장 갔다 온 할머니하고, 위안부, -주 더럽고 듣기 싫은 위안부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은 공장서 일하고 했지마는 위안부 할머니는 간 데가 다 다릅니다. 잠깐 제가 갔는 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나이로 하면 열여섯 살, 만으로 하면 열네 살입니다. 저는 양력으로 돼가 있습니다. , 그때에 성을 갈지 않으면 배급을 안 줬습니다. 하기 때무로, 성을 갈아서 야스하라라고 갈았습니다. 그런데 학교도 그때는 일본학굡니다. 제가 삼, 사학년까정 다녔습니다. 하기 때미로, 가타가나를 알았습니다. 끌려가서도, 대만 신주, 가미가제 부대, 특공대 부대로 끌려가서도, 그 장교가 (글씨 쓰는 손짓을 하며)가타가나로 이래 써줘서 대화를 했습니다. 이 군인이 하는 얘기도, 피해자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처음 듣는 얘기라가지고 히가이샤[피해자의 일본어], 히가이샤가 뭔지 적어주는 걸 (작게)이럭했습니다. 이 군인이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도시꼬, 야수하라 도시꼬라고. 지어주면서 나도 도시꼬 같은, 같은 피해자라는 걸, 히가이샤라는 걸 적어줬기 때무로. 히가이샤가 뭔고! 몰랐습니다. 그 후에 겪음서 제가 생각할 때, 끌려가서 당했는 거는 말로 다 못합니다.

 

제가 쭉 삼십년 동안 해오면서 미국으로, 어디로 다니면서 이 증언을 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제가 확실하고 또 바른말하고 이러니까 정신대대책협의회라는 데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구십이년도 유월 이십오일날 신고를 할 적에 윤미향이라는 간사였습니다. 간사한테 했습니다. 이십오일날 했는데 이십구일날 모임이 있다고 해서 갔습니다. 어느 교횝디다. 교회에 갔었는데 그날 따라 일본 어느 선생님이 정년 퇴직을 하고 돈을 천엔인가 얼맨가 줬다 그러면서 백만원쓱 노나줬습니다. 그게 무슨 돈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때섬부터 모금을 하는 걸 저는 봤습니다. 왜 모금을 하는지, 그것도 몰랐습니다. 따라댕김서 모금을 하는데, 보니까 농구선수들이 (주먹 쥔 두 손을 슛하듯 위아래로 움직이며)농구를 하는데 기다렸어요. 기대렸는데, 기대려가지고 그 농구선수가 돈을 (무언가를 두 손으로 쥔 몸짓)이리 들고 모금을 하더라고요. 그 돈을 받아 오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그게 왜 그런 줄 몰랐습니다. 그게 당연한 그런갑다 했는데도 좀 부끄러웠습니다. 저렇캄 말지, 막 농구를 하면서 이길라고 애를 쓰고 이렇게 하는데 거기에 버젓이 앉아가지고 그 농구 끝나고 하면 돈을 거돴는 걸 그걸 받아가지고 나왔습니다. 좀 늦었습니다. 늦게인데, 배가 고픈데, 좀 맜있는 것 사도고 하니까, (고개를 살짝 저으며)돈 없습니다. 돈 거돠가지고. 그래도 그것이 뭐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디 가도, 또 교회 가도, 또 돈을 주면 그걸 뭐 그런가보다 생각했는데, 그래도 모르고 쭉 삼십년을 해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무엇입니까. 정신대대책협의횝니다. 그러면 공장 갔다왔는 할머니들로 해야 되는데. 말하자면, 빵으로 말하자면, 공장 갔다왔는 할머니들은 밀가루로가 반죽해가지고 만들어서 빚어놓고, 속으는 맛있고 귀하고 한 걸 넣어야 안 됩니까. 그러면 그 속으는, 위안붑니다! 그런 그걸 해도 쭉 삼십년을 해가와도, 저는 그걸 몰랐습니다. 그저께까동, 엊그저께까지도 몰랐습니다. 어저께 저녁에 가만히 생각하니, 이것은, 왜 뭐 때미로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 모임이 위안부, 생명을 걸어놓고 끌려갔는 이 위안부를 왜 즈그가! (두 손을 붙이며)정신대 할머니캉 합해가지고 쭉 이용해 나왔습니다. 저는 그것도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어저께 제가 생각하니 이럴 수가 있나! 삼십년 동안 앉아가지고 얘기하는 게 사죄해라, 배상해라, 하는데. 일본 사람이 뭔 줄 알아야 사죄하고 배상하죠. 뒤죽 섞어가지고 이거는 사죄도 하지 말고, 안 해도 된다는 거 아닙니까! 이거를 삼십년 동안 해나가면서도 사죄 배상 요구하고 그 학생들까정, 까지 고생을 시켰습니다. 그 학생들 돼지[저금통] 털어가지고 나오는 그 돈도 받아가지고 챙깄습니다. 이래서 저 어제 저녁에 잠도 한숨 못 잤습니다. ! 뭐 때미로! 정신대 문제만 하지, 즈그는 무슨 권리로! 위안부 피해자를, (주먹 쥐며)만두의 고명으로! 사용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니, 저는 자다 일어나서 막 울었습니다. (목이 메어)왜 내가 이렇게, !보 같이 이렇게 다 하면서 내가 여태까정 왜 말도 못 했나, 하는 걸 생각하니, 그래, 내일 기자회견에는 이것을! 반다시 밝혀야 되겠다. 저희가 (손짓) 사죄, 배상 요구하는 거를 막는 거 한 가지에요, 막았잖아요. ? (책상을 손으로 두드림) 위안부하고.. 정신대하고... 어떻게 같습니까! 위안부는 생명을 걸어놓고 거기 가서 죽은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데 이런 그거를 삼십년을 이용을 해가나왔습니다. 저는 결심했습니다. 내일 기자회견 할 때는 이것을 내가 반다시 밝혀야 되겠다. 일본이, 그 사람들이 바봅니까. 뭣한데 정신대대책협의회가 위안부 문제를 하는데, 거기에가 해당치도 않는데 뭣하러 그 사람들이 사죄하고 배상하겠습니까. 안 한 이유를 저는 알았습니다. 이것 또한, 무엇입니까. 사진 한 장만 모르고로 해도 이걸 법에 걸고 했는데, 이것은! 할머니로, 위안부 할머니들로 팔아먹었습니다. 팔았습니다! 내가 왜 팔려야 됩니까!

 

(목이 메어)여러분 생각을 해보세요. 아들 육형제에 딸 하나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놓으면 터질까, 불면 날라갈까, 아들 육형제래도 그 보리쌀 많이 하는데 쌀 한 웅큼 올려가지고 엄마가 처매로 감촤가지고(치마 속에 감추는 몸짓) 수야, 이리 온나, 해가지고 부엌에 정제에 가서 멕이고 했습니다. 이런 남의 집의 귀한 딸, 고명딸을... 밤에 그것도 끌고 가서... 대만 신주, 가미가제 부대를 가서, 방에 들어가재안잤노코 끌고 가서 전기 고문과 갖은, 캐가지고, 몸을 그래가지고... 이렇게 죽여놨습니다. 이런데, 그 군인이 보니까 급하게 들어가라고 (덮는 몸짓) 담요를 이래 드는데 보니까 군인이 하나 앉았는데 거 들어가라캐서 (절레절레) 안 들어간다고 (몸을 뒤로 빼며)이래 오는데, 와서는 그냥 머리를 끌고 (끄는 몸짓)질질질질 끌고 가가지고. 광 안에 자물쇠 (두 손으로 동그라미) 이래 큰 게 달렸었습니다. (잡아당기는 몸짓)그걸 팍 떼드마는 (여는 몸짓)문을 확 열드만은 (미는 몸짓)확 밀었습니다. ___에서도[녹취의 한계] 또 이렇게 해가지고 발로, 그거는 돌땡이보다 더 위험한 군화발이었습니다. 허리를 발길로 차가지고 (엎어지는 몸짓)엎어졌는데, 너무너무 배 찢어지도록 아프고 죽도록 아파가지고 저 잘못한 거 없습니다, 그런데도 잘못했다고 (손을 마주 비비며)빌면서 나 살려돌라 캤습니다. 이런데 또 머리를 잡아뜯고 앉혀가지고, (손짓) 두 팔을 한 쪽 팔 이래 놓고. 이래 동그람하니 되부르가 있는데, 거기다가 놓고 여기 하나 감고, 여기 하나 감고. 지금도 머리에, 귀에, 소리 납니다. 그때 제가 엄마라고 크-게 불렀는 저기, 귀에서 나는지 머리에서 나는지, 이것을 어린 나이에섬부터 지금까지 지금도 납니다. 이래도 이걸 왜 그런지, 누구한테라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정신대대책협의회라하면 이걸 밝혀줘야 안 됩니까, ? 할머니 어디 갔다 왔습니까, 해가지고 밝혀줘얀데 한 번도 할머니를 앉혀가지고 증언 한 번 받아준 적 없습니다. 그냥 (둘러앉은 모양을 손짓으로) 모여가 노는데, 밥 먹는데도, 어디 갔다 왔습니까 어데 갔다 왔습니까 그거 가지고 책을 냈습니다. 구십삼년도부터 서부동에 집이 있었습니다. 책을 놓고, 그 책을 육천오백원을, 오백원에 파는 걸 봤습니다. 그래도 그걸 몰랐습니다. 그런 그걸 챙기는 줄 모르고, 그것이 당연한갑다 하고 ___[녹취의 한계], 미국으로, 어디로 다니면서 제가 제 일이라고 생각하고 증언도 하고.

 

또 정신대 대책 협의회 박물관을 지을 때 서대문 형무소서 짓는다고 했습니다. 그때에 박경림씨하고 저희 큰 조카 내우간하고 저하고 가서 십오만원 받고 정신대대책협의회에서 증언을 했습니다. 이러면 박물관에든지 대표가 돼가 있습니다. 대표라 소리하지 마라, 챙피하다, 했습니다. 그러면 대표 소리는 안 해도 대표 대우는 해줘야 할 것 아닙니까!

 

하지만은 끝까지, 끝까지 삼월 삼십일날 제가 전화를 했습니다. 미향 씨, 이러면 안 되잖나, 한 번 오너라고. 안 그러면, 그렇지 않으려면 내가 기자회견 할련다, 했는데. 아주 큰 소리로 당당하게 기자회견 하라캐서, 제가 오월 칠일날 기자회견 했는 겁니다. 이런 등등을 제가 하나하나 제가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 빨리 생각이 안 납니다. 이래서 제가... 했다고 기자회견을 했는데.

 

어느 날입니다. 여기 와가 있을 겁니다! 소위 (안경 올려씀) 그 국회의원으로 나올 적에 성심성의껏 다해서 제가 도와준 건 없지만은 가보고 해야 된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저따구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느날 저녁에 나갔다 들어오니까, 들어와가지고 막 있는데 문을 열어 돌라캐서 열어주니까 윤미향 씨가 (손짓)샥 들어오는 거에요. (몸을 뒤로 빼며)제가 깜짝, 넘어갈 뻔 했습니다, 놀래서. 그러면서 와서 무릎을 꿇고, 무슨 말인지 용서? (손바닥을 펼쳐보이며)뭐를 용서를 합니까. 무엇을 가지고 와야, 무엇이든 가지고 와야 용서를 하지요, ? 하든가 안 하든가 하는데. 뭐를 용서, 용서? 보니까 엄청나드그나. 그것은 검찰에서 할 것이고. 내가 며칠 후에 기자회견을 할 테니 그때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갔는데, 나가보니까 소위 교수라카는 사람들도 있고 여러 사람이 있는데 내가 말은 안 했습니다. 밖에 뻔뻔시리, 거기에 저, , 차에 내려가지고 휠체어를 탈라카니까는 뭣이 어떻고. 도대체 뻔뻔시럽기 짝이 없어요! 이런 사람이 윤미향이를 보호를 했답니다. 뭣입니까, 이거는.

 

해서 윤미향이한테 며칠 후에 내가 기자회견을 할 테니께 그때 오라고 하고 나갔는데, 나가보니까 뭐 다 있더라고요, 있는데. 거기서 뭐 원수 진 것도 아니고 삼십년을 지내왔습니다. 했는데 한 번 안아달라고 합디다. 그래서 저는 생각에, 그래 이게 마지막이다, 하는 생각을 하고 안아주니. 저도 인간입니다. 사람 여린 사람입니다. 삼십년을 함께 했으니까 원수도 아니고 가는데 내가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너무! (콜록 콜록 기침을 함) (컵에 담긴 물을 마심) .. , . 눈물이 왈칵 나서, 제가 안고 울었는데. 이걸 가지고 기사님들, 기자님들. 좀 부탁드립니다. 명백하게! 좀 기사를 내주세요. 그걸 가지고 용서했다, 이런 기사 너무 황당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이거는 확실하고 명백히 여러분들도 책임을 다 돌아가는 일입니다. 하기 때미로, 제가 이거를 명백하게 할려고 그랬는데.

 

혼자 생각은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걸 그만둬라, 하지마라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해서 있었는데, 이 사람은 자기 맘대로 뭐든지 하고 싶으면 하고 팽개치고 하는데, 어떻게 삼십년을 같이가 했는데, 해나왔는데. 한 마디 말도 없이 맘대로 팽개쳤습니다. 저만, 했는 거 아닙니다. 우리 국민들, -계 여러분들이 그 데모에 나오십니다. 그분들도 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작게)그캤습니다. 이래놓고 자기가 사리사욕을 채리가지고 맘대로 또 국회의원 비례대표도 나갔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저한테 얘기도 없었고 하니까. 자기 마음대로 하는 거니까 제가 뭣을 용서를 구합니까. 이름도 성도 없는 용서? 자기 마음대로 했으니까 그거는 자기 마음대로, ? 하든지 말든지 하는 거지, 저한테 하든 책임을 미룰 필요는 없잖습니까. 물어볼 필요도 없잖스, 용서를, 뭣 때문에 용서를 바랍니까. ? 그거 아니라도 여러 수십만 가지들, 제가 다 말씀을 못 드립니다. 속이고, 이용하고... 재주는 곰이 하고 돈은, 예산은 받아먹었습니다. 재주, 삼십년 동안 재주했습니다. 그 돈은! (주먹으로 책상을 쾅) 예산을 받아먹었습니다. 이런 것도 모르고 뭣을 용서하라, 용서를 바랍니까.

 

해서, 저는 데모 방식을 바꾼다는 거지, 끝내는 건 아닙니다. 김학순 할머니가 시작했고, 또다시 새롭게 좀 학생들에게 교육적인, 이거를 하기 위해서 제가 이거를 바꾼다 했습니다. 그러면, 먼저도 이 얘기했습니다. (손으로 코를 만지며 큼, 큼 소리) 일본과 한국은 이웃 나라입니다. 이러면 (손짓) 이 학생들이 결국으는 그 나라 주인 아닙니까. 하니까 이 학생들이 알아야, 그러면 사죄, 배상을 뭐 때문에 사죄, 배상을 한다 카는 거를 알아야 될 거 아닙니까. 일본 아베는 서류만 나오면 마 (손을 휘저으며)불에 사라, 사라뿝니다. 그래놓고는 한국이 거짓말 한다, 그 학생들한테 물으마 한국이 거짓말쟁이다, 거짓말만 한다, 이렇게 나오니까. 그것도 몰라서 그런 거 아닙니까. 우리 학생들도 몰라서 그렇고, 일본 학생들도 그걸 모르고, 거 거짓말만, 거짓말만 카이, 한국이 거짓말만 한다는 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겁니다. 일본과 한국을 학생들이 서로 왕래하면서도. 이게 시간이 오래 갈 겁니다. 가도, 이 학생들이 알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너그 한국이 왜 일본한테 배상하고 사죄하라카노, 뭐 때무노. 그렇게 이런 걸 얘기하면, 그라면 일본 너는 왜 하지 않노, ? 그게 아니라카고 거짓말이라고 그러니까는 우리는 그 말만 들었다, 한국이 거짓말만 한다, 그렇게 그래 나오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거를 학생들에게 가르쳐가지고 시일이 가더라도 왕래하고 친해지면 속에 할 말도 있고 또 배와야 됩니다. 배와야 알지요! 제가 짧은 생각인지 모르지만은, 저로서는 그래배께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책상을 치며)대구에 역사관이 있습니다. 이것도 또한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이었습니다. 이걸 누가 했습니까. 여 대구에, 아주 유명한 최봉태 변호사가 대표로 있으면서 이걸 했습니다. 그래놓고는 지금은 윤미향이를 밀고 있습니다. 밀고 있으면서, 어느 날은 갑자기 아침에, 할머니 윤미향이 욕하지 마세요... 김복동이 할머니 존대 받고 있지 않습니까. 일본에 돈을 많이 내고 하니까. 그러면 나비 기금이라든지 하는 거, 김복동이 할머니 이름으로 됐다고 김복동이 할머니 돈입니까? 어느 날 미국을 가기로 했는데 (책상을 치며)이 윤미향이가 모금을 했어요. 모금을 육백만원인가 했는데. 저한테 하는 말이, 전화가 왔어요. 할머니, 할머니는 저 내 사람 아니라고 못 오그래요. 이것 또한 말이 됩니까! 그럼서 모금을 하라캤습니까? 제가 간다캤습니까? 이런 등등. 그뿐 아닙니다. -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삼십년간 그것만 얘기했는데 줄줄줄 나오는게 엄-청나게 나옵니다, 엄청나게. 말도 못하게 나옵디다. 그러면 할머니들 팔아가지고 그케 했으니까, 택도 없는 할머니 아닙니까. 왜 위안부 할머니를 즈그가 했습니까. 이리, 부정 아닙니까, 이것도. 죄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도. 한데, 그래도 끝까지... 사죄, 무슨 사죕니까.

 

저는 (목 메여)김복동이 할머니요. (안경 올려씀) 김복동이 할머니를, 저는 왜 김복동이 할머니만 그랬노 했습니다. 이랬는데, 그 김복동이 할머니는 한쪽 눈이 실명입니다. 저캄모 두 살 위엡니다. 실명이고, 한쪽 눈 쪼끔 보이는 이 할머니를, (끄는 손짓)-고 댕겼지요. 미국으로 어디로 끌고 댕기면서로, 내지는 회관꺼정 세와준다꼬. 있을 때 잘하고! ? 할머니 있을 때 그래야 되는데. 고생시키고 끅고 댕기면서는 할머니를 이용해먹고는 뻔뻔시리 그 묘지에 가가지고 눈물 흘리요. 그거는, 가짜의 눈물입니다. 병 주고 약 주고 하는 이런, 그것도 죈데. 죄를 모르고 아직까지 (작게)이러가는데. 그것은 다 검찰 측에서 밝힙, 힐 겁니다. 하지만은 정신대대책협의회에서 위안부를 이용해가지고 했는거는 도저히 용서 못 합니다. 이것도 또한 벌을 받아야 됩니다.

 

해서, 저는 끝까지, 제가 나이가 들다가 보니 자신이 없습니다. 한데, 우리 학생들은 올바르게 가르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과 한국과 학생들로 요러개 해가지고 서로 친하게 지내면서 올바른 역사를 공부를 해서 위안부 문제, 사죄해라 배상하는 걸 적진 않습니다. 이건 천년이 가도 만년이 가도 반다시 일본이 해야 됩니다! 이런 걸 하기 위해서, 이런 걸 알으키기 위해서는 양국 간에 친하게 지내면서로 이걸 역사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 사람들이 꼭 역사의 주인이니까 이분들을 올바른 역사 교육을 시키가지고 (목 메인 목소리로)이 억울하고 누명 쓴 우리 위안부 할머니... 이걸 해결해줄 사람은 (울먹이며)우리 이 학생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저거를 당해야 되고 내가, (격앙된 목소리로)늦게까지 살았는 게 이게 죕니까? 끝까지 이렇게 당하고 있는 제가, 너무 부끄럽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할머니들한테 내가 이렇게 해결하고 왔다, 언니, 동생들 내가 이렇게 해결하고 왔으니 나를 용서해돌라고 빌랍니다. 그래서 그거를 생각하니까 너무 제가 미안하고 한데.

 

저는 하나도 부끄럼이 없습니다. 이렇게 위안붑니다, 위안부. 위안부가, 그 두 글자가 여잡니다. 이것이 저는 세계의 여성 분들께 피해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마 너무 참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세계의 여성 여러분들, 저희가 위안부지. 하지만은 여성이라는 그 두 글자가 너무 미안하고 해서, 어떡하면 이런 것도 내가 좀 미안한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 생각을 했는데 이 기회를 해가지고 모-든 여성분들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여자이기 때메로, 이런 누명도 쓰실 것이고, 또 여자이기 때메로 여자다, 위안부는 여자다, 하기 때메로. 여러분들도 그런 소리도 들으실 겁니다. 그래서 제가 한 사람 한 사람한테 어떻게 합니까. 이런 기자회견을 통해서 세계 여성분들한테 이 확실한 위안부가 여러분들의 여자라는 두 글자가 손상을 입었다는 게 참 죄송합니다 하는 걸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거는, 제가 이 교육을 확실히 두 나라가 서로 왕래하고 친하게 지내가지고, 이 역사를 아셔가지고 이 억울하고 억울한 위안부 문제를 사죄받고 배상해야, 제가 사죄를 받아야 위안부 누명을 벗습니다.

 

제가 와 위안부고 성노예입니까! 그 더러운 성노예 소리를 왜 하냐 그라니까, 미국에 들으라고, 미국 사람들 겁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이렇게 팔아가면서 뭐를 했습니까. 그렇게 그한 줄 몰랐습니다.

 

그 안성이란 데도 보니까 쉼터를 지어놓고, 화려하게도 지어 놨습디다. 그래서 그 윤미향이 대표, 위대한 대표, 그 아버님이 사신다 카더라고요. 이런 거 엄-청나게 나왔는데 그것은 다 검찰청에서 다 밝힐 겁니다. 이 죄를 모르고 아직까지도 큰소리하고 있는 이 사람들, 죄는 지은 대로 가고 공은 닦은 대로 갑니다. 하기 때무로, 꼭 이 죄를 물어서 죄를 살리야 됩니다. 살린다고 제가 마음이 풀리는 거는 아닙니다. 고치야지요. 이후에 두 번 다시 이런 일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 벌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또 무슨 말씀이 있겠습니까. 여러분들한테 이걸 밝히기 위해서 제가 하는데, 정말 너무너무 여러분들이 오셨는데 그 장소가 너무 좁습디다. 그래서 제가 해야 되니까, 여러분들이 다 오셔가지고 안 가시도록 하기 위해서 제가 이 장소를 바꽜습니다. 여러분들, 기자 여러분들 부탁드립니다. 꼭 했는 말 그대로 해주세요. 없는 말 추측해가지고 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보 저희들을, 저를 욕뵈는 말씀입니다. 기자님들이 단단히 하실라고 오신 여러분들이고, 이것을 다 옳은 말씀으로 기자, 기사를 내주셨으면,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제가 오늘 장소를 바꽈라 했습니다. 바꽈가지고 여러분들과 같이 앉아서 마지막 얘기를 드리려고 했는데. 구구히 많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 여러분들도 너무 가슴 아파할 것이고 해서 제가 요점, 요점만 얘기를 했습니다. 하니까 여러분들이 그래 아시고. 저 지금 정-말 죽겠습니다. 너무 죽겠습니다. 그 좁은 데서 만약에 하면 이 또 코로나가 퍼졌다카는데 저는 걱정이 돼서요. 좁은 데서 하면 안 되겠다 하는 생각에 제가 여러분을 이래 큰데 모셨습니다. 그 점을 양해하시고 꼭 기사는 있는 그대로 내주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