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요한 것은, 피해자중심주의의 실천태에 대한 문제제기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며, 그에 대한 근거 역시 존재하기에, 반성폭력 운동이 이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피해자중심주의는 그런 것이 아니며, 그런 오남용 사례에 대한 공격은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여성혐오자들의 반격(backlash)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예를 들어,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들에서 발생한 바 있는, 개인숭배나 기본적 인권에 대한 억압이 곧 사회주의의 본질이라는 것은 악선전이나 오해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회주의 활동가들이 준거로 삼는 사회주의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노동자계급의 아래로부터의 자기해방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사회주의 활동가들이 ‘그들이 말하는 것은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며 그런 국가들에서 발생했던 일은 변질이며 일탈일 뿐이다. 이를 근거로 한 공격은 악선전에 불과하다.’라는 말만 반복하고 실제로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발생했던 문제들에 대해선 아무런 답도 내놓지 않는다면, 누가 그들을 신뢰할 수 있을까? 애초에 그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진정한 사회주의’가 대중에게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물론 왜곡을 왜곡이라고 지적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와 별개로 문제가 실제로 발생했음을 받아들이고, 그런 문제가 발생한 원인을 진단하고, 재발 방지책을 내놓는 것이 대중운동을 건설하려는 활동가의 자세이다. 피해자중심주의에 입각한 반성폭력 운동 역시 마찬가지이다.
피해자중심주의의 실천태로 드러난 문제점의 근본 원인은 객관성 개념의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고 그 자리에 피해호소인/피해자의 이해관계를 대신 놓은 것이다. 현 사회에서 객관성이라고 포장되는 극도의 성차별, 편향성에 대한 비판과 거부는 피해자중심주의의 긍정적 의의였다. 하지만 그것이 객관성이라는 개념 자체의 가능성에 대한 비판과 거부로 이어지면서 진실을 규명하거나 사건의 성격을 합리적으로 규정하지 못하게 되었다. 민주적이어야 하는 공동체적 해결은 어느새 공동체 전체가 피해호소인의 편에 서서 피해호소인의 생각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과정으로 바뀌었다.
상당히 드문 경우인 무고가 아니라면, 피해호소인/피해자는 억압받고 상처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에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의 요구를 수용하는 길과 그 공동체가 더욱 인권 친화적으로 되어가는 길은 실제로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는 그 두 가지 길이 개념적으로 동일하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두 길은 결과적으로 일치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사건 해결에 임할 때 우리는 피해호소인/피해자의 입장 및 요구와 개념적으로 구별되는, 반성폭력 운동의 목표, 공동체의 정의(justice)가 무엇일지 질문하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정** 사건에 대한 100인위의 다음과 같은 논평은 피해호소인/피해자라는 존재 자체가 마치 반성폭력 운동의 대의 그 자체처럼 절대화되고 그 사람과 가해지목인 사이의 갈등과 대립 역시 노동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전선처럼 화해불가능한 정치적 전선으로 절대화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피해자와 가해자는 화해할 수 없는 적대적 전선에 놓이게 되며, 따라서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언어화한 순간 우리에게 남는 것은 '누구의 편에 서서 판단할 것인가' 하는 당파적 입장의 결정이다. 우리가 주장한 성폭력 개념이 아직 '상식'이 아닌 것은 분명하나, 문제는 이것을 '상식'으로 만드는 데 힘을 보탤 것인가 아니면 '상식'이 되지 못하게 하는 데 힘을 보탤 것인가이다.”
개별 사건에서 피해호소인/피해자의 편에 서는 실천은 성 평등한 관점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합리적으로 파악한 결과로서 도출될 수 있는 것이지, 피해호소인/피해자의 편에 서는 실천 자체가 올바름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피해자중심주의가 보여주었던 이러한 한계를 인정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반성폭력 운동이 앞으로 견지해야 할 원칙은 무엇인가?
1. 성 인지적 객관성은 무엇인가?
성 인지적 객관성 하에서 폭력은 권리의 침해로, 성폭력은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로 규정될 수 있다. 사회대 개정 학생회칙은 성폭력을 이렇게 규정한다. “성폭력은 상대의 동의를 받지 않은 성적 언동을 함으로써 한 인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침해하고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행위이다. 이는 일방적 신체 접촉, 성적으로 모욕적인 발언, 성적으로 불쾌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등 유무형의 다양한 종류를 포괄한다. 당사자가 한 명인지 다수인지, 피해자가 성폭력이 있었음을 아는지 알지 못하는지는 성격 규정과 관련이 없다.”
이러한 규정은 젠더 구조에 기반한 모든 행동을 성폭력으로 규정하는 ‘광의의 성폭력’ 개념에 비하면 다소 협소하며, (여성인) 피해호소인이 스스로 피해로 규정한 것이 무조건적으로 성폭력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또한 단순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나 성별권력관계에 기반하되 폭력은 아닌 행위 역시 성폭력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성폭력은 오직 피해자의 명시적 동의의 부재에 근거한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가 발생했을 때에만 일어난 것이다. “어떤 행위가 성폭력인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행위자의 의도가 아니라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었는지의 여부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우리는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방식에 있어 아래와 같이 네 가지의 방식을 구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성폭력 사건이 제기되었을 때 우선 피해호소인을 의심하고 보는 식의 남성중심적 관점이 있다. 피해호소인의 평소 행실을 비난하며 그의 주장의 신뢰도를 깎아내리거나, 피해호소인이 개인적인 목적을 이유로 “꽃뱀” 짓을 했으리라고 함부로 추측하는 것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한편 ‘성맹적 객관성’은 이렇게 노골적으로 남성의 손을 들지는 않지만, 객관성을 참칭하여 광범위한 젠더 위계의 존재와 성폭력 사건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여성에게 불공정한 결과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정규직 전환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상사의 성적 접촉을 거부하지 못한 여직원이 있다고 했을 때,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는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성폭력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관점은 권력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성맹적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주류적인 통념들에 대항하여 나온 것이 ‘피해자중심주의’이다. 피해자중심주의는 피해자의 관점에 입각하여 성폭력 사건의 서사를 재구성할 것을 요청한다. 이에 따르면 성맹적 객관성의 해석은, 자신의 정규직 전환이 걸려 있기 때문에 거부 의사를 표시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피해자의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편협한 해석이다. ‘성 인지적 객관성’ 역시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지만, 그 논리적인 경로는 다르다. 성 인지적 객관성 하에서는 ‘가만히 있는 것은 동의로 해석해야 한다’가 아니라 ‘가만히 있는 것이 꼭 동의는 아니다’가, ‘상대가 거부해야 성폭력이다’가 아니라 ‘상대가 동의해야 성폭력이 아니다’가 ‘객관적’인 전제로 여겨진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명시적인 거부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명시적인 동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권력관계를 고려할 때, 피해자의 행동을 동의로 해석할 수 없다고 본다.
이처럼 대안적인 시도를 제시할 때에는 피해자중심주의가 비판하고 극복하고자 했던 바로 그 지점, 즉 기존의 사회통념과 사법부가 전유하는 성맹적 객관성이 그 자체로 성차별을 내재하여 젠더 억압을 은폐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똑같은 정도로 거부해야 마땅하다. 피해자중심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그 어떠한 시도도 그것의 통찰과 성과를 저버리고서는 어떤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정이 어찌 되었든 간에 ‘객관성’을 표방하고 있는 성 인지적 객관성은 이러한 요구에 답하면서 스스로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요구를 우리는 우선 성 인지적 객관성의 수식어로 자리하고 있는 ‘성인지’성을 통해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성적 자기결정권의 보장에 있어 개별적인 상황과 맥락에 대한 고려 및 반영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현존하는 젠더 위계를 실제로 표면화하고 공론화하는 데, 나아가 ‘객관화’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렇기에 피해자중심주의의 실천가들이 역설해왔던 점, 즉 여성혐오의 구조가 사회적으로 확고히 존재하고 있고 그것이 개인의 사회적 지위와 문화적 통념 등 다양한 측면에서 발현되고 있다는 점이 성폭력 문제해결 원칙의 수립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수용될 것이 요구된다.
성폭력 사건에 있어 피해자의 상황은 분명 가해자의 상황과 같지 않다. 피해자는 앞서 언급한 남성중심적 관점이나 조직 보위의 논리, 혹은 단순한 무지와 감수성 부족으로 인한 숱한 편견과 2차 가해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또한 피해자는 상처입은 것 자체로 이미 취약해진 개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자가 스스로 모든 입증 책임을 떠맡고, 공동체는 그가 확실히 입증할 때까지 사실상 방관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렇듯 성폭력 상황에 있어 어느 정도 일반화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진 특수한 맥락들은 공동체적 해결의 과정에서 깊이 고려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시선은 ‘성 인지적’이라는 수식어가 수식하고 있는 대상으로 향한다. 왜 ‘객관성’인가? 그러나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잠시 미루고, 우리는 아마 대다수가 제기할 보다 구체화된 질문에 먼저 답할 것이다. 왜 또 객관성인가? 왜 수십년 동안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운동 주체들이 치열한 고민을 통해 그 모순을 폭로하고 전복하고자 해 왔던 바로 그 개념으로 다시 회귀하는 것인가? 결국 성 인지적 객관성은, 그것이 아무리 스스로의 의미의 방점을 앞의 수식어에 찍으려고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단 하나의 단어 선택으로 인해 후퇴로 규정되어야 하지 않는가?
우리는 이러한 지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성 인지적 객관성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부터 기인한다고 본다. 우선 앞서 밝힌 성 인지적 객관성의 ‘성 인지적’인 성격이 그러한 퇴보를 막고, 오히려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다만 성 인지적 객관성은 의미의 전복을 통하여 객관성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전복의 칼날을 객관성 자체에 들이대어 객관성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한다. 즉, 성폭력 당사자를 비롯하여, 고유한 맥락 속 개별적 경험을 가진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이 민주적인 토론을 통해 어떤 공동의 준거를 구성해나갈 수 있는, 또한 동시에 그 구성해나감의 시도가 쉽지 않다고 하여 그것을 무조건적으로 회의하거나 포기해버리지 않는, 그러한 새로운 객관성의 의미를 정립하고자 하는 것이다다.
서울대 사회대 개정 반성폭력회칙의 5조 해설에는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에 해당하는 사례들이 예시로 나열되어 있다. 그러나 해설에 따르면 이는 “성폭력이 되는 행위의 포괄적인 목록이 아니라 일련의 사례”일 뿐이며, 회칙에 “열거되지 않은 행동도 성폭력이 될 수 있다.” 더 추상적인 차원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개념화하고 있는 4조는 존중받을 권리, 거부할 권리, 사생활의 권리와 같은 몇 가지 “구체적인” 성적 자기결정권들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며, 그것만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의 내용을 한정하지 않는다. 이처럼 성 인지적 객관성 하에서 성폭력은 성기의 강제적 삽입, 원치 않은 신체 접촉과 같은 구체적이고 제한된 내용에 의해서 일방적이고 획일적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구체적인 수준에서 당사자들의 경험과 맥락이 포괄될 수 있을 정도로, 그리고 민주적 토의를 통하여 스스로의 내용물을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수정해나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일반적이고 추상적이다.
그러므로 성 인지적 객관성이 객관성으로 “회귀”한다는 지적은 이 개념에 함축되어 있는 성인지성과 반성성을 다소 도외시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처음의 질문은 남아 있다. 그 형태와 방식과는 상관 없이, 왜 ‘객관성’을 도입하는가? 이것은 결국 성폭력 사건의 공동체적 해결이라는 우리의 주제와 연관되어 있다. 어떤 개별 공동체든 그 나름의 원칙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성폭력 피해자를 비롯한 개별 구성원의 자의로 완전히 소급될 수 없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공동체적’ 원칙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것이 될 것이다. 피해자중심주의에 입각한 문제해결이 실제로 보여주었던 이런 “피해자 권력화”를 막기 위해 우리는 어떤 것이든 간에 공동의 준거, 객관화와 보편화가 가능한 원칙을 필요로 한다.
성 인지적 객관성 하에서는 이러한 원칙이 보편적이자 객관적인 권리인 성적 자기결정권으로 나타난다. 공동체의 기초적인 규범적 질서로서 권리는 오늘날 여전히 유효한 개념이다. 예를 들어서 모든 개별 인간이 존엄하다는 전제나 성평등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진술을, 그것들이 단지 객관성을 추구하고 보편화를 시도한다는 이유만으로 쉽사리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양한 상황과 맥락을 받아안는 객관성 하에서 획일성으로서의 객관성은 충분히 지양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공동체의 특정한 현실이 구체적인 상황 맥락 속에서 개인에게 어떻게 작용하여 결국에는 “객관적인” 권리 침해로 나타나는지를 고발할 수 있는 것이다.
보편적 기준으로서의 권리를 도입하는 데서 오는 가장 중요한 효과는 아마도 사건 해결 과정에서 드러날 것이다. 성폭력은 어쨌든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라는 객관적 기준에 의거하여 판단되기 때문에, 우선 그것의 발생 여부를 결정하는 객관적 진상조사가 공동체적 해결에 있어 보다 중요한 입지를 지니게 된다. 가/피해 구도가 미리 상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폭력 사건을 성립시키는 권리의 침해가 실제로 이루어졌는지를 가능한 한 최대한 알아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건의 성격이 피해자에 의해 자의적으로 규정되지도 않는다. 권리의 침해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는지, 기존의 성적 자기결정권 관념에 협소한 지점이 없진 않았는지 등에 대해 사건과 관련된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심도 있는 토의가 중요해진다. 해결 조치의 도출에 있어서도 피해자의 의사만이 고려되지 않으며, 구성원들 전체의 고민과 참여가 요청된다. 조치 도출은 가해지목인을 악마화하고 일방적으로 피해자의 편에 서서 싸우는 방식이 아니라, 최대한 확보된 객관적 증거를 토대로 하여, 민주적 기여를 통해, 지속적으로 보편화되는 - 원칙을 따르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만, 애초에 진상조사를 통한 사건 성격의 확실한 규명 자체가 쉽지 않은 성폭력의 특수성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 사건 해결 과정이 성 인지적이기 위해서는 이 지점을 의식하여 몇 가지의 권리들이 특별히 언급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성폭력 사건이 없었다는 결론은 경우에 따라서는 피해호소인이 무고를 했다는 뜻이 될 수도 있으므로, 성폭력이 저질러졌다는 판단 못지않게 그 반대의 판단을 내리는 데에서도 신중해야 한다. 또한 피해자의 안전과 보호가 확보될 때에만 피해자가 사건 해결 절차에서 충분히 발언하고 자신의 필요를 채울 수 있으므로, 공간분리나 대리인 선임, 제척권, 치유를 지원받을 권리 등의 일련의 권리들을 피해자에게 보장해야 한다.
따라서 성 인지적 객관성은 피해자중심주의로부터의 후퇴가 아니다. 실천의 차원에서 그것은 오히려 피해자중심주의보다 훨씬 도전적일 수 있다. 그것은 피해자중심주의가 공동체 내의 완고한 가부장적 질서라는 현실과 마주하여 공동체 속에서 공격적으로 전개해나갔던 실천들을 거꾸로 문제 해결의 실천적 전제로 삼는다. 말하자면, 성 인지적 객관성의 주체는 이미 성 인지적이다. 이 점을 현실에 대입시켜 보면, 여전히 성맹적인 상당수의 (운동) 주체들이 성 인지적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여성주의적 운동의 필요성을 발생시킨다. 그런데 여성주의적 운동이 젠더 구조를 폭로하고 전복하여 성해방을 이뤄나가는 것이라면, 젠더 구조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이는 여성주의적 운동을 가장 사적인 일상에서부터 가장 유물론적인 계급투쟁의 현장에서까지 당연히 실천해야 한다. 성폭력이 어떻게 정의되든 간에 삶의 모든 방면에서, 공동체의 모든 부문에서 젠더 구조의 억압성을 폭로하고 고쳐 나가는 운동을 열정적으로 해나가야 한다는 당위는 사실 언제나 존재했다.
그러한 당위의 상부에서 우리는 ‘공동체 내부의 성폭력 사건을 어떻게 공동체적으로 해결할 것인가’라는 특수한 문제상황에 직면하였고, 이 상황이 문제 해결의 원칙에 있어서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았다. 따라서 성 인지적 객관성 하에서는 피해자의 견해와 구별되는 공동체 고유의 규범적 질서가 재상정된다. 그를 기반으로 공동체 구성원 각각은 스스로의 모든 민주적 잠재력과 성 인지적 반성성을 최대한으로 끌어낼 것을 요구받는다. 관련자들의 사적 권리들이 침해되지 않는 한에서 최대한 철저하게 진상조사하고, 진상조사가 불가능한 영역들에 대해서도 일관성이나 타당성, 정황과 같은 다른 근거를 토대로 최대한 심사숙고하여 결론을 끌어내야 하고, 그와는 별개로 문제제기된 지점과 관련된 공동체 내부의 젠더 구조에 대해 최대한 토론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요구사항은 많은 공동체들에서는 요원한 것일 수 있다. 이러한 실천적 부담은 분명히 성 인지적 객관성의 중요한 난점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단지 현실이 절망적이라고 해서 실천을 위해 보다 올바른 원칙을 수립하기를 거부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올바른 원칙을 가질 때 운동이 더 진전할 수 있다는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물론, 그러한 원칙은 이전의 원칙과 마찬가지로 현실적인 실천 속에서만 정립되어 나갈 수 있다.
2 성 인지적 객관성이 피해자중심주의로부터 계승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점
상술했듯, 피해자중심주의는 그 과정에서 ‘비합리적’이거나 ‘피해망상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던 피해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이 관점에서 사건에 접근하도록 함으로써 성폭력에 대해 그 전에는 발견되지 않았던 많은 진리들을 인식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며, 이에 입각하여 올바른 해결을 위해 필요한 여러 원칙과 제도들을 입법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러한 인식과 원칙, 제도들 가운데 상당수가 피해자중심주의가 아닌 다른 틀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고 또한 절실히 필요하며, 원론적으로 여성의 편에 선다는 입장(여성 당사자주의적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성별에 따른 특수한 입장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모든 성에게 공정하고자 하는 입장(성 인지적 관점)에서도 필수적이다.
2.1 총론의 차원에서: 공동체적 해결 절차는 전 과정에서 성 인지적이어야 한다.
이 사회는 여성이, 또 성폭력 피해자가 불리한 위치에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다. 실질적 평등을 위해서는 기계적 중립이 아니라 이것을 보정하기 위한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성 인지적 객관성은 진공상태에서 논의가 진행되는 것을 이상적인 상태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폭력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공동체 성원들이 여성해방의 주체가 되어 기존의 남성중심적 객관성 개념을 극복하고 대안적 객관성을 세워나가는 것을 지향한다. 공동체는 평상시 성원들에게 성 인지적인 관점을 교육하고 내규 제정 등의 사업을 통해 구성원들이 대안적인 규범을 형성하고 내면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하며, 일상적으로 공동체가 얼마나 성평등하며 인권친화적인지 점검하고 토의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경우 특별한 교육이나 토론회를 열어 공동체에 성폭력에 관한 성 인지적 관점을 환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을 책임지는 주체들은 어떤 개입도 없이 진행만 맡는다는 식으로 논의를 주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이 성 인지적인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도록 이끌어야 한다. 사회적 편견을 재생산하고 문제 제기를 위축시키는 발언들은 ‘자유로운 의견’으로서 격려되는 것이 아니라 비판되어야 한다.
2.2 성폭력 사건의 진상 규명 및 사건 성격 규정에서
(1)사건의 성격은 가해자의 의도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발생한 피해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가해자에게 꼭 피해자를 해칠 의도가 없었더라도 피해자가 원치 않는 성적 언행에 노출되었다면 그것은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이다. 현재 성폭력에 관한 대부분의 규약들은 남성/가해자의 ‘조심하지 않아도 될 자유’와 여성/피해자의 ‘성폭력으로부터의 안전’ 및 ‘공동체의 성 평등’을 ‘균형 있게’ 고려하지 않으며 명백히 후자를 우선하고 있으며, 전자와 달리 후자를 공동체가 개입해서 강제해서라도 보장해야 할 권리(성적 자기결정권, 성적 평등권)로 규정하고 보호한다. 이것은 전자보다 후자가 인간의 행복과 사회 정의에 훨씬 더 중대하기 때문에 정당한 기준이며, 후자가 사회적으로 너무 광범위하게 무시당하고 유린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정치적인 원칙이기도 하다.
(2)피해자가 아니라 공동체에 입증책임이 있다
성폭력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것도, 그것이 어떤 권리의 침해인지를 논증하는 것도 지식, 정치적 자신감, 정신적 시간적 여력 등 많은 자원이 필요한 일로, 성폭력 피해를 당했을 때 피해자가 이를 혼자 힘으로 입증하는 것은 많은 경우에 아주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때문에 피해자에게 입증책임을 지우는 것은 결과적으로 숱한 사람들이 성폭력을 당하고도 침묵하게 만드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진상 규명과 성격 규명 모두의 책임은 공동체에 있다. 이것은 공동체 전체가 피해자의 말을 입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피해자 편에서 입증을 위해 힘쓸 지지자, 지원자가 있어야 하며 이것은 일부 활동가들의 선의에 기댈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 절차의 일부로서 보장되어야 한다는 즉 공동체가 대리인이나 지지모임 등 지지 세력을 피해호소인에게 조직해줄 책임을 진다는 의미이다. 진상 규명이 피해자의 진술에 많은 부분 의존할 수는 있으나, 이 진술을 채집하고 정리하고 상반되는 진술을 논박하는 일 등은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이 맡아서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물론 원할 경우 이런 과정을 직접 수행하는 것도 피해자의 권리이다.) 대리인을 선임할 권리는 이러한 책임을 제도화하는 하나의 형태이다. 다만 대리인은 기본적으로 한 사람이기 때문에, 다수의 지원자가 필요할 경우에는 충분한 대책이 될 수 없으며, 때문에 필요할 경우 대리인뿐만 아니라 피해자 지지모임이나 지원자 그룹 결성 등을 공동체에서 맡도록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활동가들은 평소 피해호소인/피해자를 지지·지원하는 이런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책임감과 연대의식을 가져야 하고, 그럴 수 있도록 교육받아야 한다.
(3)성폭력의 경우에는 보통의 경우보다 ‘약한 증거주의’를 적용해야 한다.
근대법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하기 때문에 물증 없이 진술이나 정황 증거만으로 사람을 처벌하지 않으며, 다른 사회 규범도 이런 기준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 증거 없이 사람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성폭력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많은 성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만 있는 공간에서 일어나 물증이 잘 남지 않기 때문에 성폭력에 무죄추정 원칙을 그대로 적용했을 때는 다수의 성폭력 사건을 처벌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이는 결국 많은 여성들이 속수무책으로 성폭력에 노출되는 것을 방관하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성폭력의 경우, 증거주의를 폐기하지는 않되 진술의 일관성이나 상황증거도 증거로 인정하는 등 보다 ‘약한 증거주의’를 채택할 필요가 있다. 비교적 보수적인 국가 사법기구조차 이런 지적을 어느 정도 수용하고 있다.
2.3. 피해자에 대한 절차적 보호와 배려의 측면에서
(1)피해호소인/피해자는 상처받은 개인이며, 이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젠더권력관계까지 가지 않더라도, 피해호소인/피해자는 상처를 입은 개인으로서 공동체 앞에 선다는 점에서 이미 그 자체로 취약한 위치에 있다. 따라서 대리인을 두어 절차나 소통을 대신하게 할 권리, 가해자나 아는 사람 등 피해자가 마주보기 곤란한 사람을 절차에서 제척할 권리, 가해자로부터 재차 폭력이나 위협을 당하거나 트라우마에 노출되지 않도록 공간적으로 분리될 권리, 심리적 치유를 위해 지원받을 권리 등을 보장함으로써 피해호소인/피해자의 부담을 줄이고 또다시 상처를 입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또한 피해로 인한 트라우마, 분노, 우울, 무기력, 회피 등이 일반적인 증상이며 피해자의 성격적 결함이나 개인적 정신질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공동체 구성원들이 충분히 인지하여야 한다. 물론 피해자가 그런 감정 때문에 다른 공동체 구성원에게 폭력을 가하는 등 옳지 않은 행동을 한다면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이와 별개로 감정들 자체는 비정상적인 것으로 매도당하지 않고 존중받아야 한다. 또한 상술했듯이 피해 입증은 공동체가 책임지는 것이 원칙이 되어야 한다.
(2)피해자는 사건의 당사자이며 사건 처리에 가장 많은 영향 받는 사람이므로 이에 맞는 발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사람의 의사가 꼭 최우선적으로 반영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안에 많은 영향을 받는 사람일수록 발언권, 결정권이 더 주어져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일반적인 원리이다. 피해호소인/피해자는 사건 처리 전 과정에 대해 알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고, 피해자의 의사는 최대한 반영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사건 전에 피해호소인/피해자에게 절차를 고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가 절차 진행 과정에서 수시로 진행 상황을 알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으며 그 의견이 가능한한 존중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피해호소인/피해자의 명시적 요구를 따르는 것이 옳지 않거나 불가능한 경우라도, 피해호소인/피해자가 어떤 권리를 회복하거나 확보하기 위해 또는 어떤 효과를 생각하여 이러한 요구를 제출한 것인지 최대한 물어보고 파악하여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원칙이 되어야 한다. 또 피해자의 요구가 따로 없더라도 사건을 처리할 때 고려하는 결과 중에서 피해자에게 미칠 효과가 당연히 가장 중요한 것으로 고려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효과는 단순히 피해자의 주관적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조치를 실행했을 때 피해자와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이 겪을 만한 합리적 개연성이 있는 결과를 이야기한다.)
(3)성폭력 피해자는 사회적 차별과 낙인에 노출되기 쉬우며 여기에서 보호받아야 한다.
성폭력 피해자들에게는 사회적 낙인이 따라붙는 경우가 많고,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되면 사생활이 노출되기도 쉽다. 이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피해자는 신상이 밝혀지지 않고 익명으로 남을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사건을 공론화했을 때, 공동체는 사실관계나 성격 판단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들 외에 사건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유포되지 않도록 보호할 책임이 있다.
또한 성폭력 피해자는 가해에 대한 책임전가를 당하거나(피해자유발론), 사생활 성생활에 대한 음해, 과민하다는 비난 등 2차 가해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로 인한 피해는 성폭력 사건으로 인한 직접적 피해보다 더 심각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2차 가해’를 성폭력에 준하는 중대한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단호하게 제재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 여전히 유효하고 필요한 조치이다. 또한 피해자를 2차 가해로부터 보호하고 2차 가해에 대응할 지원자들이 공동체에서 나와야 한다.
3 성 인지적 객관성이 피해자 중심주의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점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 인지적 객관성이 피해자 중심주의와 공유하는 지점들이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게 차이를 드러내는 부분들이 있다.
3.1 객관성 자체를 거부하는 경향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진정한 객관성을 확립해나간다
첫째, 성폭력 사건 해결의 전제이자 반성폭력 운동의 목표가 객관성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객관성을 확립해나가는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현재의 사회가 ‘객관성’이라는 이름하에 관철시키고 있는 가해자 옹호 및 피해자 책임론은 철폐되어야 할 대상이다. 남성/가해자 중심주의가 객관성을 참칭하고 있을 때, 이 사실을 폭로하고 대중에게 알리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객관성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고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피해자와 가해자는 화해할 수 없는 적대적 전선에 놓이게 되며, 따라서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언어화한 순간 우리에게 남는 것은 '누구의 편에 서서 판단할 것인가' 하는 당파적 입장의 결정이다.”라는 피해자 중심주의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반성폭력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여성과 남성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정의가 실현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사람들이 이 질서를 수용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별 성폭력 사건의 해결과정에서도 성평등한, 진정한 객관성을 세우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진정한 객관성이란 기존 사회의 남성/가해자 중심성에서 벗어나 여성과 남성의 시각을 아우르는 성평등한 관점을 말한다. 기계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시각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되고 기울어진 권력구조를 인지하고 있어야 성평등을 달성할 수 있기에, 성 인지적 객관성이 진정한 객관성이 될 것이다. 성 인지적 객관성은 이미 규정되어 있는 것을 단순히 지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며, 소수가 그 내용을 규정지을 수도 없다. 지금 여기서 우리들이 토론과 논의를 통해서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3.2 공동체적 해결의 최종적, 궁극적 목표는 피해자의 회복과 치유보다는 공동체의 정의와 신뢰 회복이다
둘째, 성폭력 사건의 공동체적 해결에 있어서, 제1목표는 공동체의 복원과 신뢰 회복이라는 점이다.
성폭력 사건은 기본적으로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된 것이지만, 공동체의 성폭력 사건은 공동체의 문제 또한 야기한다. 조직과 다른 구성원들에 대한 신뢰와 모든 구성원이 평등한 권리와 동등한 존엄을 누릴 것이라는 믿음이 공동체를 지탱하는 중요한 두 축인데, 가해자가 피해자의 권리를 훼손함으로써 이것이 흔들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사적인 해결이나 법적 절차를 밟는 대신 공동체 내에 문제제기하게 되는 맥락도 대부분 이 연장선상에 있다. 가해자의 처벌 그 자체보다도, 공동체 관계 속에서 성폭력 사건이 문제임을 승인받고 모종의 조치도 취해짐으로써 준거집단으로 삼았던 공동체가 정의로운 곳임을 확인받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성폭력은 사회구조적 권력관계에 의한 폭력이다. 그리고 공동체 성폭력 사건은, 이러한 젠더 구조가 공동체의 문화에 스며들어 일상적으로 행해지다가 그것이 하나의 사건으로 ‘사건화’된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성폭력 사건은 공동체의 문화가 반여성적인 지점들을 허용해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공동체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관계없이 모든 구성원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정의로운 곳이라는 본래 믿음에 걸맞게 변화/복원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의 복원은 사건 이전으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따라서 성폭력 사건의 공동체적 해결의 궁극적인 목표는 공동체의 정의를 회복하고 신뢰를 되찾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피해자의 회복 및 치유를 위하는 길일 뿐 아니라, 사회의 불균등한 젠더권력 구조와 맞서 싸우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는 피해자의 회복과 치유가 성폭력 사건의 해결 전반을 통해 추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피해자 중심주의와는 차이가 있다. 피해자 개인의 회복과 치유는 물론 중요한 부분이며, 공동체는 피해자의 안전 보호, 심리치료 지원, 공동체 구성원들로 하여금 피해자에 대한 지지적 태도를 형성하게 하기 등의 방법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공적인 해결 절차가 추구해야 할 최종목표가 피해자의 회복과 치유인 것은 아니다. 달성해야 할 목표는 ‘성 평등’이며, 이것을 공동체 차원에서 재술하자면 공동체의 복원과 신뢰 회복인 것이다.
3.3 소결: 해결 절차상의 차이점
위 두 가지 차이로 인해 성 인지적 객관성은 피해자 중심주의가 택했던 비공개주의를 채택하지 않는다. 대신, 사실관계 조사 이후의 사건 성격 규정 단계에서부터 공동체 구성원 상당수가 참여하는 민주적인 토론을 원칙으로 삼는다. 때로는 필요에 따라 대책위 모델 등도 혼용할 수 있고 제한적으로 사건 비공개 결정을 내릴 수도 있으나, 사건의 공론화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며 교훈을 얻어내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 것이다. 물론, 사건의 공개수준은 조절할 수 있으며 어떠한 때에도 실명 공개는 하지 않게 된다. (실명 공개는 그 자체로 처벌의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또한, 성 인지적 객관성은 피해자를 사건 해결절차의 중심에 두었던 피해자 중심주의와 달리, 모든 공동체 구성원을 성폭력 사건 해결의 주체로 세운다. 물론 피해자의 감정과 고통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피해자의 것이며, 타인이 규정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성폭력 피해가 일반적으로 남길 가능성이 높은 감정이나 느낌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피해자의 감정이 아니라 피해자의 특정한 주장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토론의 주제가 될 수 있다. 피해자의 주장을 포함하여 사건의 성격과 내려져야 할 조치 등에 관해서는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이 나서서 고민해야 한다. 공동체적 토론의 과정은 성폭력 사건의 해결 절차이면서 동시에 다수를 설득해나가는 과정이자 모든 구성원을 여성주의적 주체로 세우는 과정일 것이다.
공동체적 토론이 해결 절차의 일부로 포함된 이상, 앞서 2.1.2에서 피해자 중심주의가 실천적으로 안고 있었던 문제점들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사실관계 조사는 가/피해 선규정 없이 중립적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사건 규정과 조치 도출은 다수가 참여하기 때문에 자의적 규정과 비민주성으로부터 한결 자유롭다. 성폭력 사건 해결절차의 초기에서부터 토론을 필수적인 단계로 삼다보면, 2차 가해로 낙인찍힐 것이 두려워 침묵하게 되는 경향도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4. 성 인지적 객관성에서 보완이 필요한 난점들
그러나 성 인지적 객관성이 성폭력 사건을 원활하고 정의롭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보완이 필요하다. 고심을 다해 고안해내었음에도, 아직까지 한 건의 성폭력 사건에도 직접적으로 적용되어 본 적 없는 원칙이 안고 있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사안에 적용했을 때 제대로 작동할 수 있으려면 현실적인 절차와 단계를 뒷받침하기 위한 여러 장치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까지 담쟁이가 고민하여 마련해본 보완책은 다음과 같다.
(1)공동체 내 성폭력 해결 과정에서 민주적 토론이 사회통념을 승인하지 않고 성 인지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현 사회의 기울어진 젠더 권력 구조를 인지한 상태라면, 토론을 통한 공동체적 해결이 성차별적 사회통념을 승인하는 거수기가 될 위험성에 대해 경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성차별적 편견이 사회통념으로 다수의 머릿속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성 인지적인 방향으로 토론이 이루어지려면 제도적이고 실천적인 방안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첫째, 공동체적 해결의 필요성과 민주적 토론의 의의를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환류해야 한다. 어느 정도 성폭력 문제에 대해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만 참여했던 대책위와 달리, 성 인지적 객관성은 공동체 구성원 상당수가 참여하는 토론을 원칙으로 한다. 따라서 토론의 목적과 의의에 대해 설명해줌으로써 토론이 분명한 상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한다. 공동체적 해결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기울어진 젠더 권력 구조와, 그것이 녹아들어 있는 공동체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도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 토론절차가 형식적인 것으로 축소되고 기존과 같이 대다수가 침묵하며 피해자의 요구가 그대로 관철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 과정이 필수적이다.
둘째,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토론의 규칙을 합의하여 만들고, 그것을 해결 절차 전반에서 관철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피해호소인의 행실을 문제 삼는 발언을 금지하고 인신공격적 발언을 제재하기로 합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토론 과정에서 위반하는 사람이 생기면 적절한 조치-경고, 일정 시간 발언금지, 강제퇴장 등-를 취해야 한다. 규칙을 합의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집행하고 관철시키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셋째, 피해호소인에게 대리인과 지지모임을 가질 권리를 주어야 한다. 단순히 대리인과 지지모임을 둘 수 있도록 허락하는 소극적인 차원을 넘어, 자력으로 구하지 못할 경우 책임지고 조직해주어야 하며 지지모임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각종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지모임 구성원들이 경험이 미비할 경우 외부 상담기관을 연결해주어서 자문을 받게 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노력을 할 의무는 가해지목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데, 이는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호소인이 적대적이거나 열악한 상황에 당면하게 되는 현실 때문이다.
넷째, 일상적인 성 평등 교육과 실천이 필요하다. 평소에 공동체 구성원들이 성차별적인 사회 통념의 영향에서 벗어나서 성 인지적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불행히도-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 없었거나, 있었더라도 형식적인 연례행사나 다름 없었다면, 성폭력 사건이 접수된 시점에라도 성 평등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2)사건 정보의 공개수위에 관하여, 효과적 토론의 필요와 사생활 보호의 필요가 충돌하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피해자의 요청과 각 사건의 특징, 공동체의 현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공론화가 결정되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정보공개의 수준-즉, ‘어디까지 공개해야 하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효과적으로 토론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사건의 상세정보가 많이 공개될수록 좋겠지만, 사건 당사자가 노출되고 사생활이 침해당할 위험성도 동시에 높아지게 된다. 몇몇 경우에는 효과적 토론의 필요와 사생활 보호의 필요가 심각하게 충돌하게 되기도 한다.
첫째, 피해호소인에게 선택가능한 절차와 그 장단점에 대해 설명해주어야 한다. 아무리 정보공개를 최소한도로 줄인다고 해도 완전 비공개가 아닌 이상, 공론화를 한다면 당사자가 누군지 알려지게 될 위험성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위험성을 최소한도로 줄여주는 노력이 필요한 것과 별도로, 피해호소인은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와 선택할 권리가 있다. 진상조사만을 해주거나, 상담기관이나 사법기관을 연계해주거나, 가해지목인과의 화해와 중재를 돕는 등의 선택지도 유효하다. 그럼에도 피해호소인이 공동체 내의 공적 해결절차를 밟고자 희망한다면, 공론화가 불가피하며 공개 범위에 대해서 의논해야 할 것임을 알려준다. 피해호소인의 이 권리는 사건 해결절차 전반에서 보호받아야 한다. 피해호소인은 계속해서 절차 진행 과정을 보고받을 수 있어야 하며, 그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핵심적인 요소가 아닌 지점들에 대한 정보는 지우거나 변경하여 제공해야 한다. 어느 부분을 지우거나 변경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비공개 요청을 존중하되, 사건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핵심적인 요소라면 설득과 타협의 과정이 필요하다.
셋째, 공론화에 앞서 사건 당사자가 특정되는 것의 부정적인 효과(사생활 침해, 인신공격의 가능성, 가/피해 구도만 심화되고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관점이 사상되는 것 등)를 공동체 구성원들과 공유하고, 신상 캐기, 마녀사냥, 소문 퍼트리기 등에 대한 제재 방안을 합의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실제로 일어날 경우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글 삭제 요청, 정정 글 업로드 요청, 별도의 징계위 열기, 이후 절차를 통해 가해자임이 확실해진다면 징계수위 상향 조정 등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3)사건 해결 과정에서 외부 전문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해당 공동체가 문제를 해결할 만한 역량이 없을 때, 피해자는 더 고통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를 내부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긍정적이다. 다만, 외부 전문가가 모르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역할 분배와 지위 등에 관한 고민이 있을 수 있다.
일단, 필요하다면 전문가의 개입은 긍정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피해자의 심리상담가, 피해자의 대리인, 성 평등 교육의 강연자 혹은 토론의 사회자 등 다양한 지위로 외부 전문가가 성폭력 사건의 공동체적 해결에 개입할 수 있다. 그러나 외부 전문가는 성폭력 문제에 있어서는 전문가일지 모르나 해당 공동체의 사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기 때문에 정보공개의 수준이나 적합한 징계 방식 등을 논의하는 것에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외부 전문가가 전문성으로 인해 갖는 권위가 부적합하게 확장되기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
(4)반성폭력 운동이 대중에게 줄 인상; 전술적인 문제
그럼 토론만 하면 무조건 좋은 해결책이 도출되는가? 반성폭력 운동의 필요성은 더 이상 없는 것인가? 공동체적 토론이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계속해서 토론을 할 것이지 왜 반성폭력 운동이 필요한가?
위와 같은 문제제기가 가능할 것이나, 이에 대해서는 반성폭력 운동의 목표를 달리 둘 때라고 답변할 수 있다. 반성폭력 운동의 태동기에는 성폭력의 범위를 확장해서 경각심을 주고, 피해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그것조차 너무나도 힘든 목표일 뿐 아니라-시급하고 유효한 운동의 전략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가 토론을 통해 성평등한 새로운 질서를 고안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만드는 것이 반성폭력 운동이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목표라고 생각한다. 성 인지적 객관성과 공동체적 토론은 이러한 반성폭력 운동의 새로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고안해낸 두 가지 수단적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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