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기타

[전시]역사를 몸으로 쓰다展

Utopian 2018. 3. 20. 00:12

역사를 몸으로 쓰다展 (~2018.01.21)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몸으로 써내려간 역사는 명시적이지 않다. 퍼포먼스로 역사적 사건을 ‘재상연reenacting’하는 것은 언어로 역사를 서술describing’하는 것과 다르다. 몸짓은 소통하는 언어활동 내에 있지만 문장으로 말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언어활동 속에서 파악되지 않는다. 조르주 아감벤Giorgio Agamben의 용어대로라면 몸짓은 ‘목적 없는 수단’으로서, 언어적이면서 동시에 언어 너머 혹은 바깥에 있고, 특정 목적으로 결정화되지 않는 ‘잠재성’의 가치를 지닌 어떤 것이다. 언어로 역사 쓰기가 역사를 재현하거나 명증하려는 정확한 목적성에 있다면, 목적없는 수단으로서의 몸짓은 언어가 가둬놓은 틀을 뚫고 나와 언어가 기입된 역사를 탈맥락화한다. 언어가 기입하지 못한 역사, 언어로 소환할 수 없는 역사, 언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트라우마와 부재의 역사를 몸짓으로 써내려 갈 수 있는 것은 몸짓이 가진 이러한 잠재성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를 몸으로 쓰는 것’은 일종의 ‘대안적이고 저항적인 역사 쓰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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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인 언어 체계가 그 빛을 비추는 곳까지만 세상이라고 믿는 데에, 그곳에 머무는 데에 실패했다면. 더 아래로, 더 주변으로, 더 어둡고 침묵된 곳으로 향할 수 있을 따름일 것이다. 랜턴을 끄고 스스로 언어를 잃어가며. 이런 움직임 속에서 때때로 모호함이 명확함보다 강력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언어를, 소통의 단초로서 놓을 수 없는 사람이고, 끝끝내 정확하고자 하는 욕구를 버릴 수 없는 사람이기에. 나의 작업이 점하게 될 위치를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다. 지금으로서는, 표현되지 못한 고통은 더 고통스러워서, 말하고자 하는 바와 대응하는 언어가 없음에도 결국 언어 앞에 다시금 소환되는 모습. 그것을 보여주는 작업에 집중해볼 작정이다. 언어의 부재, 언어의 실패, 그러나 동시에 언어의 필요성이 돋보이는 순간들에.



2018. 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