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특수하며 가장 보편적인 해방의 지식, 해방의 정치 ―『흑인 페미니즘 사상』 3부: 흑인 페미니즘, 지식, 권력
『흑인 페미니즘 사상』 (패트리샤 힐 콜린스)
3부 흑인 페미니즘, 지식, 권력
10. 초국가적 맥락에서 본 미국 흑인 페미니즘
미국 흑인 페미니즘은 ‘교차성 패러다임’을 제시함으로써, 흑인여성의 경험을 새롭게 해석하는 지평을 열었다. 이 새로운 패러다임은 또한, 지배가 조직되는 방식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함으로써 지식과 힘기르기(empowering)의 관계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지배 매트릭스’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이는 서로 맞물려 작동하는 여러 억압이 한 사회적 위치에서 취하는 역사적으로 특정한 형태의 권력조직을 지칭한다. 따라서 시기별로 국가별로 조직된 방식의 실제적 차이는 존재할 수밖에 없으나, 여러 억압이 서로 맞물려 작동한다는 점에서는 보편성을 띤다. ‘지배 매트릭스’는 이 같은 보편성과 보편성이 구현되는 통로로서의 지역성을 포착한 개념이다. 흑인여성성에 대한 관찰은 젠더가 모든 여성에게 동일한 영향 미친다는 가정이 오류이며 인종과 계급도 중요하다는 점을 짚어냈고, 이는 인종, 사회계급, 젠더, 섹슈얼리티의 체계가 상호형성적인 사회조직을 구성한다고 보는 ‘교차성 패러다임’을 이끌어냈다. 이는 미국의 지배 매트릭스와 흑인여성의 개인적, 집단적 행위주체성을 설명하며, 지배와 저항의 사회적 관계를 재개념화한다.
⦁민족, 민족주의/국민주의
국민국가의 권력을 쥐고 있는 지배집단과 억압에 도전하기 위해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사용하는 종속집단 모두에서, 여성은 중요하다. “여성은 어머니가 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여성은 민족주의의 세 요소, 즉 1)섹슈얼리티와 출산능력, 2)모성 3)민족의 상징에서 모두 핵심(Yuval-Davis 1997)”인 것이다. 국가권력의 양쪽 편에 있는 두 집단이 이런 방식으로 여성을 취급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흑인여성은 잘못된 인종의 자녀들을 낳는다는 이유로, 나쁜 가족구조에서 자녀를 키우기 때문에 그들을 제대로 사회화시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또 미국 애국주의의 제대로 된 상징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깊숙이 자리잡은 이데올로기를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국민국가인 미국의 국가정책이 미국의 ‘국가적’ 이해라고 말해지는 것들이 사실 특정 집단의 이해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때문이다.
⦁초국가적 맥락에서 본 흑인여성
콜린스는 미국의 흑인 페미니즘이 “미국 흑인공동체가 발전하도록 노력하면서 백인에게 동일시하는 이상한 존재가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흑인여성의 공통적 관심과 우려사항을 거론하며 ‘대륙을 가로지르는 흑인여성 의식운동’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적는다. 여러 장애물들로 인해 많은 미국 흑인여성이 초국가적 연결을 보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젠더화된 전지구적 아파르트헤이트에서 흑인여성들은 흑인 민족주의로부터 영향이라든지 서구 중산층 페미니즘에 대항하여 페미니즘을 정의하는 패턴 등 공유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은 접근은 또 하나의 이항대립을 강화시키는 것이긴 하지만, 이러한 대항적 언어와 이견의 진술을 한데 모아 살펴보면 흑인여성이 발전시킨 다양한 페미니즘이 어느 지점에서 합류하는지를 알 수 있다. 미국의 흑인 페미니즘은 미국 페미니즘, 흑인 디아스포라 페미니즘, 초국가적 여성운동을 포괄하는 양립적both/and 입장을 띤다.
흑인여성의 빈곤은 1980년대 미국의 외교정책과 국내정책은 제3세계의 “개발문제”와 제1세계의 “사회문제”가 동전의 양면임을 보여준다. 그와 동시에 인종과 젠더가 어떤 방식으로 그러한 국제질서 변화의 영향받는 정도를 다르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예를 들어, 1980년대에 제3세계 국가의 부채위기를 경감시키기 위해 도입되었던 구조조정정책은 유색인종을 그 과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극도로 ‘인종화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서비스 부문의 정부지출을 줄임으로써 소비를 감소시키는 것과 생산을 증가시키는 것이라는 두 목표가 가정에서 여성의 일, 노동력으로서 여성의 일을 둘 다 가치절하시켰다. 이러한 점에서 젠더화된 조치이기도 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초국가적 맥락에서 조명할 만한 또 다른 소재로는 흑인여성과 모자가정이 있다. 미국의 도심지역에서 살아가는 모자가정은 도시에서 남성의 실업과 사회복지국가의 지원이 부재하거나 약화되면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집단, 연대, 횡단의 정치
“미국 흑인여성의 집단적 경험이 지닌 복잡성은 부유한 백인남성을 전지구적 억압자로, 빈곤한 흑인여성을 힘없는 피해자로 그리고 다른 집단을 그 사이에 배치하는 단순한 위계질서에 도전한다. 인종, 젠더, 계급, 시민권상의 지위, 섹슈얼리티, 연령이 초국가적 지배 매트릭스에서 한 집단의 사회적 위치를 결정한다. 이러한 위치가 해당 집단이 광범위한 행동에 참여하는 범위를 결정한다. 다른 입장에 놓인 집단은 권력을 다른 방식으로 표출하기에, 집단마다 지배와 저항을 형성하는 데 참여하는 고유한 패턴을 지닌다. 다양한 집단적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횡단의 정치를 발전시키는 새로운 토대가 된다.
이탈리아 페미니스트가 처음 명명한 횡단의 정치transvesal politics라는용어는 ”정치적 행위자“의 구체적인 입장을 고려한 연대를 강조한다. 니라 유발-데이비스Nira Yuval-Davis에 따르면, “횡단적 대화는 뿌리내림rooting과 전환shifting의 원칙을 바탕으로 한다. 즉, 자신의 경험에 중심을 두면서도, 서로 다른 입장에 있는 상대에게 감정이입하여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 대화가 이루어지는 경계는 대화자가 아니라 대화 내용에 의해 결정된다” (1997, 88) 횡단의 정치에서, 흑인여성이나 여러 다른 집단은 “정치적 행위자”이며, 흑인 페미니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화자”가 된다. 횡단의 정치에서 참여자는 자신의 특정한 집단적 역사에 “뿌리”를 두는 동시에, 다층적 차이를 넘어선 대화를 하면서 자신의 중심으로부터 나와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한다.”
횡단의 정치는 첫째로, 세상을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데 이용되어 온 기존의 인식틀을 근본적으로 재사고할 것을 요청한다. 이항대립적 사유모델을 거부하고 둘 다를both/and 사유하라는 것이다. 이는 맥락에 따라 개인과 집단은 어떤 상황에서는 억압자가 될 수도 있고, 다른 상황에서는 억압받는 자가 되며, 동시에 억압자이자 피억압자일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둘째, 사회집단이 어떻게 조직되고 유지되는가를 규명하였다. 집단을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이며, 유동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시각을 가졌다. 셋째, 집단의 내부기제와 관련해서도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연대의 구축을 위해서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입장을 인식하고, 자기 집단이 처한 사회적 위치가 어떻게 다른 집단과 연결되어 형성되어 왔는지 보아야 함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넷째, 집단의 역사를 관계적으로 보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다섯째, 집단적 역사는 (넷째에서 말했듯)상호의존적이기는 하지만 동등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부 집단과의 연대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여섯째, 집단경험의 비등가성은 연대의 역동성을 낳는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흑인 페미니스트 지식과 횡단의 정치는 교차성 패러다임에 의존한다. 이 두 가지는 지식을 생산하고 연대를 구축하는 데 필수적인 협력과 대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11. 흑인 페미니즘 인식론
인식론epistemology란 지식에 대한 전반적인 이론을 말한다. 누구의 말을 믿으며, 왜 믿어야 하는지 결정하는 방식이 인식론의 주요 의제이기 때문에, 당연한 귀결로서 인식론은 권력관계의 문제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엘리트+백인+이성애자+미국 시민권자+남성이 사실상 지식인증절차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흑인 페미니즘 사상은 억압당했다. 전문가 집단이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지식으로 보는 미국문화의 전반적인 풍토에는 흑인여성이 열등하다는 생각이 만연하기 때문에, 이 근본적 가정에 어긋나는 새로운 지식주장은 예외적으로 여겨지곤 하는 것이다. 또한, 유럽중심적 인식론의 대표격인 실증주의적 접근법은 흑인여성의 삶과 충돌한다. 실증주의 방법론은 대상과의 거리를 유지하고, 연구과정에서 감정을 배제하며, 윤리와 가치를 연구과정에서 배제하고, 지면 혹은 구술 상의 적대적 토론을 통해 진실을 가린다. 그러나 이는 흑인여성으로 하여금 자신을 대상화하고, 감정적 삶의 가치를 깍아내리고, 흑인여성의 지식을 발전시키려는 동기를 약화시키며, 자신보다 사회적, 경제적, 직업적 권력이 더 많은 사람들과 적대적 관계에 놓이게끔 한다는 점에서 대안적 인식론이 요청된다.
흑인 페미니즘이 주창하는 새로운 인식론은 우선, 체험lived experience을 의미의 척도이자 지식주장의 평가 방식으로 사용하는 흑인여성들의 방식에 주목할 것을 제안한다. 흑인여성은 지식과 지혜를 구분하고, 후자를 중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지혜가 없는 지식은 힘 있는 자에게 적합할지 몰라도 지혜는 종속된 자의 생존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둘째, 대화를 통해 지식주장을 평가하자고 제안한다. 흑인여성은 공동체의 다른 일원들과 대화를 통해서 지식을 발전시키는데, 이 때의 대화는 적대적 논쟁과 다르다. 콜린스는 이를 부름과 응답call-and-response라고 개념화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상호 네트워크적 의사소통을 의미한다. 셋째, 보살핌의 윤리이다. 보살핌 윤리의 핵심요소는 다음과 같다; ①개인의 고유성에 대한 강조(개인적 표현성) ②대화를 통한 감정 표현이 적합(감정의 가치) ③공감능력 키우는 것(공감능력). 넷째, 개인적 책임의 윤리이다. 많은 흑인은 사적인 견해를 파고드는 것은 토론의 범위에서 벗어난다는 지배적인 통념을 거부한다. 대신, “모든 표현된 견해와 행동은 핵심적인 믿음의 집합에서 나온다고 보고, 핵심적인 믿음은 사적인 것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Kochman 1981, 23).” 이러한 대안적 인식론에서 지식인증절차의 중심에는 가치가 놓여있고, 지적인 탐구는 항상 윤리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네 가지 측면을 정치적인 사회정의 기획에 연결할 때, 우리는 흑인 페미니즘 사상과 실천을 위한 틀을 형성할 수 있다.
⦁지식인 주체인 흑인여성
흑인여성 지식인은 핵심집단의 상호 모순적인 인식론적 기준에 맞부딪힌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은 보통의 흑인여성에게 인정받아야 하고, 흑인여성 학자들의 공동체에서 인식론적 기준을 만족시켜야 하고, 아직도 여러 지식인증기제를 통제하고 있는 지배집단의 인식론적 기준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흑인여성은 실제로 존재하는 대안적 흑인 페미니즘의 앎의 방식을 목격하고 소중히 여기고 활용하기 위해서 이러한 지배적 인식론의 헤게모니 권력에 저항할 방법을 찾아야만 하는 어려움에 처해진다. 콜린스는 이를 다층적 해석 공동체에 연루됨으로써 생기는 어려움이라고 규명하고, 인식론의 차이를 넘어 번역할 수 있는 보편적인 지식주장을 찾아내려고 애쓰는 대신 흑인여성의 관점을 다시 정교화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낼 것이라 주장한다.
⦁진리를 향하여
흑인여성의 관점과 이에 따른 인식론을 전체 지식담론의 어디에 위치시켜야 할까? 콜린스는 이것들이 백인, 흑인남성 등 다른 집단과 어떻게 다른지를 강조하기보다는 흑인여성의 경험이 다수의 인식론과 연결되는 지점을 탐구하는 구체적인 사회적 입장으로 보는 것이 더 유용할 것이라 말한다. 그녀는 각 집단의 진리, 즉 부분적이고 아직은 미완성 상태인 지식은,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교류될 수 있다고 본다. 각 집단은 자신의 관점의 고유성을 희생하거나 타 집단의 부분적 관점을 억누르지 않고, 다른 집단의 관점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자기 자신의 입장을 온전히 소유하지 않은 채 지식을 주장하는 개인이나 집단은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지식주장을 하는 집단보다 신뢰성이 떨어진다.
대안적인 인식론을 생성하는 것은 대안적인 지식의 생성보다 기존 지식에 더 큰 위협이 된다. 대안적 지식은 흔히 무시, 폄하되고 기존의 패러다임에 흡수되거나 주변화된다. 그러나 힘 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지식주장의 인증과정에 대항하면, 기존의 지배형식에서 인증받았던 모든 지식이 의심받게 된다. 따라서 흑인 페미니스트 인식론은 현재 진리라고 여기는 것뿐 아니라 진리에 이르는 과정 전체에 질문을 던진다.
12. 힘기르기empowering의 정치를 향하여
콜린스는 미국 흑인 페미니즘 사상이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하여 실천되려면, 권력과 힘기르기를 재정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작업은 권력에 대한 두 가지 주요 접근법 – 변증법적 접근, 주체성을 중시하는 접근 – 모두에 바탕을 두지만, 동시에 이를 넘어설 수 있는 권력에 대한 언어를 생성하려는 것이다. 특정한 지배 매트릭스를 단일한 권력체계의 틀로 보거나, 교차하는 억압의 틀로 보든 간에, 그것은 서로 긴밀히 연결된 권력의 네 가지 영역을 통해 조직화된다. 억압을 조직하는 구조적 영역, 그 억압을 관리하는 훈육적 영역, 억압을 정당화하는 헤게모니적 영역, 매일매일의 체험과 개개인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대인관계적 영역이 그것이다.
⦁권력의 구조적 영역
사회제도가 오랜 시간에 걸쳐 흑인여성의 종속을 재생산하도록 어떻게 조직되었는지에 대한 영역을 권력의 구조적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 맞물리는 대규모 사회제도를 강조하기에, 권력의 구조적 영역 안에서는 총체적 사회제도가 변하지 않고서 개인과 집단이 힘을 기르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영역의 변화는 주로 대규모 사회운동, 전쟁, 혁명에 의한다. 미국에서는 법률 개정을 통한 개혁적 변화도 꾀해진 바 있지만, 변화는 빠르게 기존질서 속으로 편입당했다. 흑인여성을 사회적 배제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점점 더 흑인 여성에게 불리하게 이용되는 식이다. 페미니스트 법학자 킴벌리 크렌쇼가 지적한 색맹 수사가 그 예이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유의미한 차이를 부정하는 젠더 중립성의 수사처럼, 색맹 수사는 인종 간에 내재하는 어떤 차이도 없다며 개개인을 평등하게(똑같이!) 대우한다. 이는 구조적 영역 안에서 흑인여성이 취한 중요한 저항전략 – 차별적 대우로 인한 인종 혹은 젠더 차이 거론하기 –을 무력하게 만든다.
⦁권력의 훈육적 영역
권력의 훈육적 영역은 관료적 위계와 감시 기술에 의지하여 지배하며 권력관계를 관리한다. 흑인여성의 경우,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적이거나 성차별적인 사회정책을 통해서라기보다는, 조직을 운영하는 전반적인 방식을 통해서 지배받는 것을 말한다. 이에 저항하는 가장 핵심적인 전략은 관료제 내부로부터 저항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허락된 지위를 활용하여 사회정의를 추구하도록 해줌과 동시에, 권위직에 진입하기 위해 훈육적 통제에 크게 노출되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적 위계를 더욱 공고하게 할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권력의 헤게모니적 영역
권력의 헤게모니적 역역은 권력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의 정당화를 목적으로 한다. 이데올로기와 문화를 교묘하게 다루며, 구조적 영역의 사회제도와 훈육적 영역의 조직적 실천, 대인관계 영역의 일상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처럼 생각의 힘이 중요해지는 상황에서는 과거 흑인여성의 자기정의를 위한 투쟁이 그러했듯, “자유로운 사고의 힘”을 되찾으려는 노력이 저항의 중요한 측면이다. 서로 맞물려 작동하는 여러 억압이 개개인의 주체성의 다양한 측면을 조종하려는 흐름을 뒤집는 것이 저항의 주요 목적이다. “헤게모니적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일은 필요하지만 그런 비판은 기본적으로 반작용에 그치(Collins 1998a, 187-96)”기 때문에, 저항은 변화된 의식을 ‘만들어내는’ 데에 이르러야 한다.
⦁권력의 대인관계적 영역
사회조직의 미시적인 수준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처럼 일상화된 매일의 실천을 통해 기능하는 권력의 측면을 권력의 대인관계적 영역이라고 부른다. 이 같은 실천은 실천은 체계적, 반복적, 너무나 친숙해서 존재 자체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이다. 저항전략도 수많은 형태를 가진다.
⦁힘기르기의 정치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권력을 네 가지 영역이 상호의존적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억압에 반대하는 피억압집단끼리 갈등하는 현 상황을 타개할 길이 보이게 된다. 각 집단은 근본이라고 가장 편하게 지적할 수 있는 억압을 내세우고, 나머지 다른 모든 종류의 억압은 그보다 덜 중요한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는 지배 매트릭스 안에서 순수한 피해자와 억압자는 오직 극소수라는 점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프레임을 통해 보면, 각 개인은 모든 이의 삶을 틀짓는 다층적 억압 체계 안에서 각각 다른 정도의 불이익과 특권을 부여받는다.
이에 따라 흑인 페미니즘이 사회정의 기획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흑인여성은 어떤 억압의 형식을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거나, 운동의 특정 방식을 다른 것보다 더 급진적인 것으로 쉽게 이름붙이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은 또한 힘기르기에 대한 복합적인 개념화로 이어진다. 억압이 복합적인 만큼, 힘기르기를 위한 저항 역시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항의 과정에서 흑인여성 조직에서 주변성의 가치가 영원한 것처럼 여기면서 그것을 과시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내부의 외부인 지위가 상품화될 때, 흑인여성의 힘기르기는 오히려 저해될 수도 있다. 각 개인은 자신의 개인사에 따라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야 하지만, 그 개인사가 본인이 생각하는 것만큼 고유한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콜린스는, 흑인여성의 힘기르기를 위해서는 대상화, 상품화, 착취를 영속시키는 지식을 거부해야 한다는 점과 초국가적 맥락에서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여러 기획으로 다시 살려내야 한다는 점을 다시금 강조하며 글을 끝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