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도서

여성의 정체성; 인정 투쟁의 페미니즘적 전유

Utopian 2016. 7. 7. 16:52

이현재(2007) 여성의 정체성-어떤 여성이 될 것인가, 책세상




영I. M. Young과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의 주장을 중심으로 여성주의를 3세대로 구분하고 각 세대가 어떤 정체성을 여성주의적 규범으로 제시했는지.

-1세대 여성주의
프랑스 혁명 이후 줄곧 여성 평등을 외치던 여성주의자들. 자유주의, 급진주의 또는 사회주의 이론과 결합.
여성 해방을 위해 여성도 남성처럼 보편적인 인간 능력을 가진 인간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봄. 영은 '인간주의적 여성주의humanistic feminism'로 명명.
이들이 여성주의의 규범으로 삼는 인간이란 이성적이고 자율적이며 자기 통일적인 '주체'가 되는 존재.

-2세대 여성주의
1968년을 기점으로 부활하기 시작.
인간 주체라는 개념이 결과적으로 타자로서의 여성을 배제한다고 보고, 그동안 제외되고 평가절하되었던 여성적인 것의 가치를 되돌아보고자. 영은 '여성 중심적 여성주의gynocentric feminism'라고 정의.
이들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에 관심을 기울이고 여성적인 것을 토대로 하는 새로운 규범적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다시 두 갈래로 갈리는데, 첫번째는 남성과 다른 여성의 보편적 특징을 규정하고자. 초도로우Nancy Chodorow에서 길리건Carol Gilligan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관계 이론가들.
두번째는 좀 더 급진적으로, 여성이 남성과도 다르지만 여성끼리도 다르고 심리 내적으로도 다르다고 봄. 여성적인 것이란 하나로 통일될 수 없고 보편적 개념으로 파악될 수 없는 파편적인 것이라고 이해. 이리가레이Luce Irigaray, 버틀러Judith Butler.

-3세대 여성주의: 방향 제언
크리스테바는 이제 비판해야 하는 것은 '동일성'이나 '차이'가 아니라 '배제의 논리' 그 자체라고 봄. 동일성과 차이, 주체성과 타자성 중 어떤 것도 희생양으로 삼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대립적 이원론의 도식을 넘어서 동일성과 타자를 공존시키기. "병존 parallel existence"



이 공존이란 개념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인정 이론이 도입됨.
헤겔의 <정신현상학> 중 "자기 확신의 진리"를 분석함으로써 인정이론의 핵심을 밝히고 1,2세대 여성주의의 한계와 3세대 여성주의가 나아갈 방향을 설명할 수 있음.

"자기 확신의 진리"의 주인공은 의식. 

1. 의식이 제일 처음 원했던 모습은 죽음을 무릅쓴 투쟁을 벌이는 '영웅'. 헤겔은 첫 단계에 놓인 이 의식을 '단순한 대자'라고 부름. 자신에게서 모든 타자를 배제함으로써 자기 자신과 동일한 존재가 되고자 함. 전면적인 타자 부정을 통해 절대적인 자기 동일성을 확인하고자. 그러나 투쟁에서 승리해 살아남은 영웅은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경험함. 생생한 투쟁 행위도 영웅이 된 자신을 인정해줄 존재도 잃었기 때문.

-> 1세대 여성주의자가 깨달아야 할 진리. 그들은 여성을 단순한 대자로 정립하고자 했으나, 여성성을 희생양으로 삼아 배제하는 투쟁의 끝은 승리하더라도 죽음이라는 점.


2. 헤겔은 '생사를 건 투쟁' 다음 단계에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서술. 단순한 대자가 아닌 생명력 있는 대자가 되고자 하기에, 타인의 존재와 타인의 인정을 추구. 다른 의식을 주인을 위한 존재 즉 노예로 희생시켜서 그렇게 하고자.

마켈Patchen Markell에 따르면, 주인과 노예의 역할 분배가 투쟁의 승패가 아니라 인식의 차이에 따라 결정됨. 투쟁과정에서 주인이라는 존재 방식이 갖고 있는 주권의 우월성을 인식한 자는 주인이 되고자 하며 반대로 주인이라는 존재 방식이 여전히 '한계'를 갖는다는 것을 인식(주권 주장에 내재된 억압의 논리, 배제의 논리를 간파)한 자는 주인 되기를 포기한다는 것.

-> 2세대 여성주의자 역시 주인의 주권 요구가 전제하는 억압적 한계를 간파. 따라서 그들은 억압적 주인 혹은 주체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주체와 다른, 여성성 혹은 타자성 안에 머물고자 함. 


3. 그러나 주인과 노예의 비대칭적 지배 관계 또한 오래 지속되지 못함. 주인은 자신이 노예의 노동을 착취하는 만큼 노예의 노동에 종속되어 있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시켜주는 존재가 자신보다 못한 노예라는 사실을 자각. 노예는 노동 속에서 자신이 타인의 의지로부터 독립된 자주적인 방식으로 무언가를 창조해내고 있음을 알게 됨.  즉, 주인은 다시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되며 노예도 주권을 완전히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 

이때 대칭적 관계로의 전환을 더욱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노예. 주인이 경험한 것은 자신의 한계이고 노예가 경험한 것은 자신의 자주성이기 때문. 노예는 자신과 타자가 모두 대타적인 존재이면서 대자적인 존재라는 인식에 도달. 비대칭적 인정관계에서 대칭적 인정 관계로. "상호 인정"의 요구.

-> 3세대 여성주의자는 바로 이러한 상호 인정의 원리를 규범적 정체성을 위한 규범으로 삼아야 한다. 여성을 대자적이면서도 대타적인 존재로, 독립적이면서도 타자 의존적인 존재로, 나아가 주권적이면서도 한계를 갖는 존재로 정립해야. 대자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대타적인 존재가 되어야 하며 독립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타자의 인정 행위가 필요하다는 인정 이론의 논리를 깨달아야.




상호 인정의 관점에서 기존의 여성주의가 제안한 규범적 정체성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는가? 인정 이론의 관점에서 보부아르, 길리건, 이리가레이, 버틀러의 이론을 구체적으로 분석.

1.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 여성의 인간화

보부아르에 따르면, 여성도 남성과 같이 실존적 결단을 통해 주체적인 존재가 될 수 있고/되어야 한다. 여성이 결단을 지연시키는 이유는 누려보지 못한 자유에 대한 공포가 크기 때문. 이러한 공포는 사회경제적 수단의 부재와 연관. 재정적 취약성, 낮은 교육 수준 등. 따라서 사회 경제적 처지를 개선함으로써 자유에 대한 공포를 극복할 수 있다면 여성은 단호히 여성성을 버리고 자유와 주체성을 선택할 것이라고 주장.

대표적 1세대 여성주의자로서, 1세대 여성주의의 한계를 지니고 있음.

2. 길리건 - 보살피는 여성

콜버그의 발달단계 이론, 하인츠 딜레마 -> 보살핌의 윤리, 여성의 발달단계 

"나는 길리건의 보살핌의 윤리가 여성에게만 한정된 인정의 윤리로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보살핌의 윤리는 모든 사람을 위한 하나의 대안적 삶의 방식으로 읽혀야 한다. 또한 보살핌의 윤리가 갖는 독특한 상호 인정의 내용은 더욱 부각되어야 한다. 보살핌의 윤리는 자기희생을 전제로 하는 미덕이 아니다. 보살핌의 윤리는 자신과 타자를 모두 배려할 때 완성될 수 있으며 위계화의 위험, 대상화의 위험을 피할 수 있다."

3. 이리가레이 - 하나가 아닌 여성

여성은 남근 선망과 동일성 원리에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그러한 원리와 다른 것, 비동일성으로 이해되어야. 여성은 하나의 보편적인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서로 다를 뿐 아니라 개인의 심리 내적으로도 분열되어 있음. 동일성을 교란하는 여성의 말하기 방식, 담론적 저항.

"그러나 나는 여성의 차이와 비동일성을 강조하는 이리가레이의 입장이 인정 이론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녀의 이론 안에서 공존이나 상호 인정의 개념은 정초될 수 없기 때문이다. (...) 즉 이리가레이의 이론 안에서 여성적 가치는 남성적인 동일성의 원리를 배제할 때만 실현 가능한 것으로 그려진다. 따라서 동일성과 비동일성, 하나인 성과 하나이지 않은 성은 공존할 수 없다."

"과연 모든 동일성이, 모든 보편 언어가 여성의 차이를 억압하는가? 반대로 여성적 차이와 타자성은 어떤 동일성도 용납하지 않는가? 이리가레이가 말하는 성차의 윤리가 여성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여성 내부의 분열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면 적어도 '차이의 인정'을 위한 최소한의 동일성을 전제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과연 이러한 최소한의 동일성까지도 여성적 차이와 타자성을 억압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배제해야 하는가?"

4. 버틀러 - 성적 이분법 허물기

이리가레이가 여성 내부의 차이를 이야기하면서도 여전히 여성 특유의 성애와 성욕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면, 버틀러는 남성성과 구별되는 여성의 본질 같은 것은 없다고 봄. 도덕의 배후에서 그것을 영원히 참으로 만드는 실체 같은 것은 없다는 니체의 논리처럼 사회적 젠더의 배후에 그것을 고정불변의 진리로 만드는 성 정체성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수행성' 개념(젠더는 한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수행되는 성을 둘러싼 행위, 표정, 몸짓, 역할 등의 총합). 육체적 성마저 성을 둘러싼 사회적 규정과 이념을 통해 수행적으로 구성됨.

"버틀러의 이론에서는 수많은 개별자들만 존재할 뿐 여성이나 남성 같은 성적 주체는 언급될 수 없다. 만약 여성이 의미 있는 방식으로 언급될 수 없다면 버틀러의 이론을 여성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성적 경계를 허물고 개체화된 개별자들이 어떻게 여성 혹은 여성주의의 이름으로 연대하고 정치적 행위를 할 수 있는가? 버틀러의 이론에서는 이러한 물음들이 시원스럽게 풀리지 않는다." 인정 이론으로 보완해 재구성 필요.



인정 이론의 관점에서, 개별화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여성이라는 집단적 주체가 의미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될 수 있는지를 밝히고자. 나아가 개별 여성들 간의 사랑 즉 여성주의적 연대가 어떻게 가능한지.

"여성을 위한 철학은 언어를 동일성과 등치시키고 타자성에 대립시키는 도식을 벗어나 분열과 타자성을 배제하지 않는 개념과 언어를 정초할 때 성립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언어가 가능한가? 그런 언어로 새로운 주체를 표현하는 것이 가능한가? 타자성과 분열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도 '우리, 여성' 같은 말을 사용할 수 있는가?

새로운 언어 사용의 단초는 버틀러의 이론에서 발견할 수 있다. (...) 버틀러는 여성이라는 개념의 의미가 권력 체계에 의해 규정된다는 데서 출발한다. 여기서 권력 체계란 정치적 권력 체계를 비롯해 언어, 종교, 규범 등을 포함하는 문화 전반과 관련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권력 체계가 다양한 상황을 모두 통제할 수는 없을 뿐더러, 지배적인 권력 체계도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 그러므로 여성이라는 개념의 의미 역시 권력 체계의 변동과 함께 변화한다. 이로부터 버틀러는 여성이라는 개념을 "지속적 개방과 의미 변형의 현장"으로 파악하며, 어떤 동일성의 범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차이의 영역을 나타내는 언어라고 본다. (...) 즉, 여성은 타자성과 분열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여성을 아우르는 방식으로 사용되는 개념이다.

여기서 나는 여성이라는 개념이 의미 있는 방식으로 사용되기 위해서 타자성과 변화를 인정하는 태도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버틀러는 타자성과 차이를 특징으로 하는 여성 개념이 성립할 수 있기 위해서는 차이의 인정이라는 개념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점은 보지 못했다. 따라서 나는 버틀러의 우리, 여성에 대한 분석에 인정 이론의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여성주의 철학의 초석을 마련하고자 한다."


How? 딘Jodi Dean의 논의를 인정 이론과 접목함으로써 답변.

(1) 타자를 협동적 행위자로 인정하라

(2) 관습적 연대의 한계를 의식하라

(3) 낯선 자들과 반성적으로 연대하라

(4) 소란함의 미덕



"인정 논리를 실현하는 여성의 세기가 온다면 여성은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차이와 타자성 때문에 고통 받거나 갈등하지 않아도 된다. 인정의 패러다임 안에서 여성이라는 개념은 차이와 변형이 유희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타자성은 오히려 연대의 조건이 되며 다양성은 환영받고 대접받는다. 타자성과 차이를 인정하는 여성주의적 연대 안에서 여성은 자기 안의 분열이나 여성 간의 다름을 비극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새로움의 원천이자 자기실현의 기회로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로써 여성은 타자성을 배제하지 않아도 되는 동일성의 기반을 찾게 될 것이며 나아가 동일성을 배제하지 않고도 타자성과 차이를 말할 수 있는 연대의 공간을 찾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여성의 세기가 조용하고 고요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타자의 차이를 인정하는 여성주의적 연대는 조용한 유토피아가 아니다. 차이를 인정하는 여성주의자는 자신과 타자의 차이를 소란하게 드러내는 데 열중할 것이다. 이제 차이는 은폐되거나 배제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유감없이 표현될 것이고 표현된 차이에는 다양한 반응이 따를 것이다. 서로의 차이는 여전히 우리를 당황스럽게 하고 때로는 불쾌하게 하겠지만 이제 차이는 소란스럽게 교차되고 교감되며 어긋나고 상응한다. 그리고 이러한 소란은 여성을 분열시키는 만큼 묶어줄 것이다. 이렇게 소란스럽게 차이를 말하는 한 우리는 최소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연대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 즉 인정 이론의 패러다임 안에서 여성은 비로소 배제의 논리, 희생의 논리를 극복하고 타자와 상호 작용하며 이를 통해 진정한 연대에 도달하게 된다.

여성주의적 연대 안에서 여성주의자는 또한 다양성을 배제하거나 동일화라려는 규범 폭력을 비판해야 한다. 보편적 규범의 이름으로 다른 규범의 존립 기반을 뿌리째 뒤흔드는 정책과 문화적 실천을 비판해야 한다. 보편적 규범의 이름으로 여성적 문화를 평가절하하거나 보편적 여성의 이름으로 특정 여성 집단의 생각을 폄하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보편적 여성의 이름으로 이슬람 여성의 삶의 방식을 비난하거나 숭고한 사랑의 이름으로 성매매 여성의 삶의 방식을 섣불리 낙인찍기보다 오히려 이들의 목소리를 원천적으로 거세하고자 하는 규범 권력을 비판해야 한다. 여성주의적 비판은 무엇이 옳으냐가 아니라 무엇이 차이의 인정을 원척적으로 봉쇄하느냐를 중심으로 수행되어야 한다."